소설 대고려연방 (154)

잊혀진 독재자의 도발 1

by 맥도강

윤 소장은 출근에 앞서 민 대통령의 서울 성북동 자택을 찾았다.

언제나처럼 민 대통령은 윤 소장이 건네는 5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정독하면서 붉은 사인펜으로 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표라던가 타원형을 그리기도 하면서 공감의 뜻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장을 넘겼다.

“마침 다음 달 초 국정자문위원회가 예정되어 있어요,

정 위원장을 만나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논의를 해봐야겠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연방의 지속적 안정을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남쪽의 진보정당과 통합하게 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가 있어요,

대단히 훌륭한 생각이에요”

“그런데 대통령님! 불길한 소식도 있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남쪽에서도 신일진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일진회를 이끌고 있는 나 회장이란 자가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전국의 여러 극우세력들을 규합하고 다닌다 합니다,

최근에는 전국의 각 지부들마다 떠들썩하게 모임들을 가지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범상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전쟁 때 피난 나온 이산가족들의 2세 3세들을 불러 모아놓고 무슨 조상 땅 찾기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선동을 하는 모양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자들의 모양새로 볼 때 조만간 큰 사고를 한번 칠 것 같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온다는 듯 민 대통령이 안경을 벗으며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윤 소장을 바라봤다.

“그 소식은 나도 듣고 있었어요,

친일세력들이 세력을 모으고 있다면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 같고요,

독도문제가 불가역적으로 종식되고 나니까 그 패배의식을 이런 식으로 되갚고 싶었겠지요,

그럼 이제 우리 연방을 분열시키기 위한 저들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인가요?

그동안 윤 소장 팀에서 우려했던 일들이 북에서도 남에서도 현실화되기 시작했군요!

그런데 조상 땅 찾기 운동이라면?”


내용자체가 다소 뜬금이 없다는 듯 민 대통령이 윤 소장에게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아마도 1946년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실시했던 토지의 무상 몰수조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몰수 이전의 상태로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회복시키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이것의 실현가능성과는 별개로 이러한 시도자체가 북쪽의 다섯 개 주에 몰고 올 파급력은 그 어떤 것보다도 막강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 문제는 결코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대단히 심각한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민 대통령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고 또다시 안경을 벗었다가 눈을 깜박이면서 다시 썼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잇던 윤 소장의 얼굴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어쩌면 대고려연방 전체를 큰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같은 문제로 독일사회도 통일 초창기 큰 홍역을 겪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정 위원장님이 받게 될 상실감이 문제입니다, 감당하시기가 …”


이때 민 대통령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

“그렇지가 않아요! 내가 아는 정 위원장은 대고려연방을 이간질하려는 작자들의 간계에 휘둘릴 만큼 품이 작으신 분이 아니에요,

우리 윤 소장이 너무 과한 걱정을 하는 거예요,

암요! 정 위원장께서 능히 잘 풀어 나가실 거예요”

정작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민 대통령도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연방을 혼란에 빠뜨리고자 하는 세력들이 노리는 것도 자명했다.

정 위원장을 비롯한 북쪽사회의 상실감을 부추겨서 통일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단코 저들의 계략에 휘말게 할 수는 없었다.


제법 완연한 가을 냄새가 느껴지는 시월초의 오전 시각,

민 대통령이 벼르고 있었던 국정자문위원회 정기회의가 새로 입주한 연방정부청사 내 국정자문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국정자문위 수석 부위원장인 민 대통령이 오늘은 작심을 했다는 듯 시종일관 회의를 주도했다.

“통일독일 사회의 전례에 비추어볼 때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안건이 있습니다,

1946년 북쪽지역에서 실시되었던 토지 무상 몰수조치의 효력에 대한 법제화를 시급하게 서둘러야 합니다!

과거 독일이 이 같은 문제로 큰 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는데 우리도 1946년의 조치를 무효로 하는 토지반환소송이 제기될 경우 독일 못지않은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이미 일주일 전, 정 위원장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민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던 터라 대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던지 정 위원장의 표정에선 여지없이 불편한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민 대통령은 이참에 이 골칫덩이를 완전히 뿌리 뽑을 태세로 밀어붙였다.

“첫째는 1946년의 토지 무상 몰수조치에 따른 법적 효력을 인정하고 일체의 토지건물반환소송이라던가 피해보상에 따른 소송은 연방정부를 상대로만 제기할 수 있다고 못을 박아야 합니다!

둘째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결과는 현재의 부동산 소유권자에게는 일체 미치지 않는다고 이 역시 대못을 박아야 합니다!

오늘 제가 이 같은 안건을 제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독도를 침범했던 다케시마 수복결사대라는 일본의 극우단체가 신일진회라는 우리나라의 괴 단체를 은밀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신일진회라는 반연방 매국단체에서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사회문제화 시킬 태세라고 합니다.

깊이 헤아려보지 않더라도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단박에 알 수가 있습니다,

대고려연방을 또다시 남과 북으로 분열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일본뿐만이 아닙니다!

중국도 이미 이와 유사한 활동을 개시했다는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중국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보다도 한 발 앞서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응징해야 합니다!

두 번 다시는 이따위의 허접한 반통일 짓거리를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경고를 보내야 합니다!”


민 대통령의 격정적인 연설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당사자격이라 할 수 있는 정 위원장이었다.

국정자문위원장인 정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특유의 느긋한 자세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다른 위원들도 다 같이 기립하여 박수에 동참했다.


이 안건은 지체 없이 연방정부에 통보되었고 연방정부는 신속한 입법절차를 위하여 의원발의 형식으로 입법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부동산 문제로서 부동산과 관계된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일진회를 중심으로 남쪽의 여러 극우단체가 참여한 ‘조상 땅 찾기 운동본부’가 결성되어 광화문광장에서는 연일 대규모의 반연방집회가 열렸다.

그들의 목적은 이 민감한 부동산문제를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부각해서 다시금 연방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단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대고려에는 연방의 통일을 실질적으로 기획해 낸 삼일특공대라는 걸출한 브레인집단이 있었다.

이들의 한 발 앞선 진단과 처방전은 곧바로 국정자문위원회에 보고되었고 정 위원장과 민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엄청난 무게감으로 연방정부와 연방의회에 넘겨졌다.

연방의 이러한 작동방식은 갓 통일을 달성해 낸 신생의 통일나라로서는 대단히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국가운영 시스템이었다.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연방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반통일 분열세력이 의도했던 전면적인 부동산 소송 전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원천 봉쇄되고 말았다.


그러자 친일 분열세력들이 선택한 방법은 연방 헌법재판소에 법률의 위헌성을 가려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으로 싸움의 방식을 변경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신일진회와 손이 닿아있던 몇몇 종편방송에서는 연일 수준 낮은 토론자들을 등장시켜서 제정된 연방 법률이 곧 위헌판결이 날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다.

오랜 세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던 남쪽의 여섯 개 주에서는 부동산문제만큼 위력을 발휘하는 핫한 사회이슈도 없었다.

비록 그것이 87년 전의 오래된 일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멀쩡한 사유지를 일방적으로 몰수당한 후손들의 억울한 사정들이 타당한 논리가 되어서 사회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그나마 국정자문위원회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법제화로 대비를 하였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연방이 또다시 절단날 수도 있는 대단히 위중한 상황으로 변해갔다.

사유재산권의 문제는 그 어떤 이념이나 사상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아직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북쪽으로서는 연방정부차원의 법률적인 보호막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대고려연방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