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고려연방 (165)

마지막 보고서 7

by 맥도강

정 씨 왕국을 창업했던 제1대 통치자의 유리관 뚜껑부터 조심스럽게 치워졌다.

오랜 세월 참으로 답답했을 유리관을 벗어난 죽음이 자연의 향기가 배어 있는 나무 관으로 옮겨졌다.

그 순간 강력한 방부제에 의지한 채 억지로 유지되던 피부의 탄력은 자연의 산소를 만나게 되자 이내 자연의 모습으로 변색되었다.

이제야 마네킹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있었고 자연의 일부가 될 준비를 서두르는 듯했다.


숙련된 기술자들의 작업속도는 대단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변색된 시신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였다.

어느새 제2대 통치자의 시신도 나무 관으로 옮겨졌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목관을 둘러싼 붉은 천에는 목란과 무궁화가 사이좋게 수놓아져 있어 한반도의 절반이 아닌 통합된 대고려의 대지에서 영면에 들것임을 예고했다.


상윤과 규태가 혹시라도 정 위원장이 다른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닌지 진숙을 다그쳤을 때도 진숙은 일관되게 정 위원장의 마음은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큰소리쳤다.

진숙이 곁에서 지켜본 정 위원장의 고민은 통일을 후회하는 그런 류의 고민이 아니었다.

통일된 이후로도 화학적인 결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연방내부 문제의 극복을 위한 대승적인 고민으로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진숙의 마음 한편에서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두 대통령이 관사를 다녀간 후 정 위원장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던 진숙은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진숙의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안도의 마음으로 급변한 것은 바로 이 문양을 보고 난 직후였다.

대고려연방의 국화가 새겨진 무명천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목관을 감싸자 진숙의 모든 두려움이 일거에 해소되었다.


두 개의 목관을 실은 차량은 극비리에 오봉산 봉사사업소에 도착했다.

화장장의 몇몇 필수인력들만이 입구에서부터 정 위원장 일행을 맞이했고 번잡한 절차들은 일체 생략되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목관을 실은 이동용 기구 두 대가 충분히 달구어진 시신 소각장을 향해서 천천히 이동했다.

관속에 누워있던 두 죽음은 그들이 남긴 명성에 비해서는 말도 안 되게 소박한 절차 속에서 칠백 도를 상회하는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죽었지만 산자의 모습으로 참으로 고단한 시간을 보냈던 죽음이었다.

이제라도 이승에 남겨두었던 마지막 흔적을 대자연으로 되돌려주려는 엄숙한 의식이 시작됐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 때 거추장스러운 육신은 모두 태워졌고 미세한 가루만이 항아리 속에 남겨졌다.


정 위원장과 정숙이 각자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뼛가루가 담긴 항아리를 하나씩 받아 들고 차에 올랐다.

동이 트기 직전의 가장 어두운 시각,

이 비밀스러운 행사에 참석했던 이들은 몇 대의 차량에 분산되어 달려가고 있다.

그곳은 바로 그들의 정신적 고향 백두산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먼지 펄펄 날리는 갑무경비도로를 따라서 거침없이 달려온 차량의 행렬은 장군봉아래 주차장에 당도하고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차량에서 내린 일행들은 대고려연방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이번에는 정 위원장의 자녀들이 각자 자신들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고이 모셔가고 있었다.

하늘에선 청명한 하늘 사이로 새하얀 구름들이 춤을 추며 지나가는 듯했다.


장군봉에 오른 정 위원장이 그의 큰 딸이 전해주는 항아리를 받아 들고 백두산을 향해서 소리쳤다.

“수령님! 이제 백두산의 정기가 되셔서 이 나라를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대고려연방으로 하나 된 이 나라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목청을 드높여서 외치던 정 위원장이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항아리의 방향을 과감하게 아래로 바꾸었다.

그러자 때마침 장군봉에 휘몰아치던 바람에 실려서 백두산의 온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 아래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일행들은 날아가는 유골들을 향해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제1대 통치자와의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정 위원장의 얼굴에는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이번에는 미안함이나 슬픔이 아닌 온통 감격의 눈물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백두산과 온전하게 하나가 되어버린 할아버지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다.


비워진 항아리에는 정 위원장이 손수 장군봉의 흙을 쓸어 담았다.

장군봉의 흙으로 가득 채워진 항아리를 직접 들고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품에 고이 안고서 정 위원장의 곁을 지키던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서 내려왔다.


일행들은 향도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고 다소 기운을 회복한 부인이 진숙의 부축을 받으면서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자신의 오른팔을 잡고 있던 진숙의 손바닥을 어루만지면서 고마움을 표시하자 진숙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던 십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진숙은 이제야 정 위원장의 결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 위원장은 지금 뼈를 깎는 심정으로 대고려연방의 안정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고 있었다.

북쪽 다섯 개 주 전역에 걸쳐 강력하게 남아있던 정 위원장 집안의 그림자를 하나씩 걷어내는 작업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정 위원장이 천지를 향해서 걸어 내려갔다.

천지의 물가에 다다르자 또 다른 유골함을 그의 아들로부터 건네받았다.

항아리를 가슴에 고이 안은 채 멍하니 드넓은 천지를 바라보던 정 위원장이 갑자기 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갔다.


이 모습에 깜짝 놀란 일행들이 순간적으로 멈칫했지만, 이내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릎까지 물속으로 들어간 정 위원장의 발걸음이 멈추었던 것인데 들고 있던 항아리를 높이 들더니 장군봉에서처럼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장군님을 진작 여기로 모셔왔어야 했었는데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갑갑하셨습니까? 이제 장군님이 태어나신 이곳 백두산에서 편히 쉬십시오,

장군님만큼은 저의 결심을 격려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또다시 항아리의 방향을 아래로 향했다.

천지에서 불어 치던 세찬 겨울바람이 이번에도 항아리 속의 유골들을 더 넓은 천지로 날려 보냈다.

일행들은 장군봉에서와 같이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며 제2대 통치자와의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비어진 빈 항아리에 천지의 물을 담으면서 나지막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

앞으로 어디서 살아가든 아버지의 뼛가루가 녹아든 천지 물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면서 살아가렵니다”

정 위원장이 항아리를 들고 물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신기하게도 바람이 멈추었고 천지를 희미하게 가리던 안개구름들이 저 멀리 사라져 갔다.

이것은 자신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 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격려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모처럼만에 정 위원장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예전처럼 여유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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