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삼일특공대 3
연방국회가 통과시킨 헌법개정안의 국민투표 일자가 6월 15일로 확정되었다.
개정내용은 딱 두 가지였다.
옥상옥의 불필요한 존재로 지목되었던 제6장의 헌법재판소를 폐지하는 안과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에서 단서조항이 삽입되었다.
‘단, 대고려연방을 분단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한 자는 연방의 국민이 누리는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고 반통일죄로 처벌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조항이었으나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연방대통령의 뚝심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였다.
드디어 대고려연방의 명운이 걸린 2035년 3월 1일의 태양은 동해바다의 수평선을 뚫고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이른 새벽부터 남북의 모든 고속도로는 평양을 향해서 달려가는 관광버스의 행렬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신일진회와 북조선재건회의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참여자들에게 고가의 일당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삼십만 원부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백만 원으로 까지 인상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국회를 통과한 헌법개정안의 영향으로 어지간한 반연방주의자가 아닌 이상 집회에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칫하면 반통일 분단주의자로 낙인 찍 일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에서부터 올라가고 내려오는 인파의 물결이 족히 이십만은 넘어 보였다.
그만큼 골수에 사무친 토착왜구와 토착땟놈들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요소요소에 광범위하게 숨어있었다는 반증이다.
이제 그들이 단체로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한 곳을 향하여 모여들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대고려연방을 무너뜨려서 다시금 과거의 분단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믿는 자들이 그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부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예정되었던 열한 시가 다가오자 금수산태양궁전 앞 중앙광장은 좌편과 우편으로 나뉘어 각 진영당 십만 이상의 거대한 인파들이 운집했다.
양 진영의 무대에 설치된 대형 확성기에서는 과거 분단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랫소리와 정치적 구호들이 난무하면서 집회의 분위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삼일특공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백 대의 연방경찰버스는 광장의 좌우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지만 정작 광장 안에서는 버스너머의 상황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정복차림의 연방경찰들이 느슨하게 양 진영의 한가운데를 가르면서 질서를 유지했다.
수백 장도 더 되어 보이는 현수막들이 삼만 평 규모의 드넓은 중앙광장을 둘러치고 있었다.
대부분 통일을 후회하는 내용들과 또다시 분단을 촉구하는 허접한 문구들 일색이다.
그중에서도 애드벌룬에 매달린 채 공중에서 펄럭이고 있던 저들의 메인 현수막 두 개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평양 대진격의 날’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돼지로 사느니 총집결하자 백두로!’였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사용한 문양의 표식이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태극기와 인공기가 아니었다.
한쪽은 화려한 벚꽃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붉은색 큰 별과 나란히 선 작은 별의 문양이다.
주석궁 앞의 중앙광장이 족히 이십만도 더 되는 인파로 꽉 들어차게 되었을 때 좌우의 단상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확성기소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를 원색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마치 상호 간 충돌시각을 합의라도 했다는 듯 충돌직전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째깍째깍 곧 터질 것 같은 세기의 특종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세계에서 몰려든 언론사 카메라들도 초긴장 상태다.
행사를 시작하고서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양 진영의 무대 단상에서는 거의 동시에 나 회장과 박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듯 대고려연방에 대한 끝 간 데 없는 저주의 독설을 쏟아냈다.
그런데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 소리가 서로 상충하는가 싶더니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다 같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그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자 서로가 상대에게 마이크를 끄라며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양 진영을 갈라놓는 안전장치라고는 정복차림의 연방경찰들이 서너 발작마다 한 명씩 줄지어 선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 회장이 물을 마시기 위하여 잠시 마이크를 내려놓았을 때였다.
간간이 들려오던 북조선재건회의 박철대표의 연설이 갑자기 쩌렁쩌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경애하시는 우리 총사령관님께서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 줄 아십니까?
며칠 전에도 제가 찾아뵈었는데 피눈물을 흘리시면서 통일을 후회하고 계셨습니다!
남조선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울분을 토로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인민군대까지 다 내어준 판국에 우리 인민들은 남조선의 개돼지가 되었다고 치를 떨고 계셨습니다!
혹시 여기 모이신 분들 중에서 통일된 지금의 세상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 저기 몇 분이 손을 드셨는데요,
저 사람들은 틀림없이 남조선에서 올라온 역당들이 맞을 겁니다,
남조선 역당들은 손을 내리라우! 당신들한테 물어본 게 아니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남조선의 개돼지로 사느니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떨쳐 일어나 이 더러운 세상을 확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십만 인파의 열광적인 함성 속에서 박철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였다.
기회만 엿보던 나 회장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거의 빛의 속도로 마이크를 잡았다.
“반역죄요!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라도 된답디까?
도무지 안 맞는 사람들하고는 굳이 모여서 살 것이 아니라 헤어져서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수가 있어요,
여기 북한사람들하고 우리는 과거 한차례 전쟁도 치렀던 관계라 회복할 수 없는 구원의 찌꺼기도 남아 있단 말입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행복하게 잘 살면 장땡이지 뭣 때문에 기어이 하나가 못 돼서 이 야단들인지 난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남쪽과 북쪽은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여기 평양만 해도 도대체 무슨 놈의 동상이 저리도 많은 겁니까?
정 씨 왕조 폭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런 흉측한 동상들이 버젓이 서 있단 말입니까?”
나 회장의 이 말과 동시에 좌측편의 일십만 군중들이 일제히 흥분하면서 우측편의 군중들을 향해서 거칠게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손에 쥔 물병을 던지기도 하고 정복경찰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나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 위원장 그 작자도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람이에요!
과거의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법정에 세워서 단죄해야 합니다!"
나 회장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금수산 태양궁전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한껏 목청을 드높였다.
“저기 저 안에 누가 잠들어 있는 줄 아십니까?
두 독재자가 금칠을 하고서 호사스럽게도 드러누워 있다고 합니다,
모두 끄집어내어서 부관참시를 해야 합니다!”
이쯤 되자 이제는 정말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중간지점을 느슨하게 지키던 정복경찰들도 줄을 지어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중과부적인 상황이라 지금 피하지 않는다면 자칫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어 취해진 조치였다.
그런데 이 장면은 모두가 원하던 장면이었다.
신일진회도 원했고 북조선재건회의도 원했고 심지어는 연방경찰버스 뒤에서 대기하던 삼일특공대도 간절히 바라던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