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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Apr 28. 2022

소북소북과 공산성의 봄

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봄놀이 가요

"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봄놀이 가요"


단톡방에 올라온 P의 제안에 순식간에 댓글이 달리고 30여 분만에 코스까지 정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잠잠했던 밤마실과 바깥나들이에 다들 굶주리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P의 톡에 빛과 같은 속도로 반응하며 폭발적인 성원을 보냈다. 지난날, 늦은 새벽까지 깔깔거리며 정신없이 웃어대던 밤수다가 우린 늘 그립고 간절했다. 밤수다를 위해서라도 코로나가 하루 빨리 종식되기를 기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는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봄소풍 이야기가 나온 지난 금요일부터 약속한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두근거림을 안고 일주일을 보냈다. 소풍을 앞두고 행복한 기다림으로 가득 차 올랐던 어릴 적 나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색색의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 듯 설렘으로 가득 찬 내 마음도 팡팡 터져 나갈 것처럼 들썩인다.


 분홍빛과 다홍빛 철쭉이 만개한 4월의 끝자락, 소북소북과 함께할 소풍날이 다가왔다. 집안일은 엄두도 못 내고 두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급하게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봄꽃처럼 화사해지고 싶은 마음에  볼에 우더를 톡톡 두드리고,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하고, 새로 산 하늘색 점퍼를 걸치고, 진달래빛을 머금은 마스크를 썼다. 그녀들을 만나러 가는 길, 바람결에 흩날리는 봄꽃처럼 내 마음도 살랑거리며 춤춘다.

 

 세종에서 공주로 내내 차 안은 활기찬 웃음과 말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끊임없이 할 말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우리 안에는 말을 담아놓는 커다란 화수분이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해 보게 된다. 평소에도 높은 텐션을 자랑하던 나는 오늘따라 더 말이 많고 목소리 톤까지 높아다. 지금 내 두뇌는 쾌락 중추가 활성화되고 도파민이 마구마구 분출되는 지극히 흥분된 상태임이 분명하다.  




 오랜만에 찾은 공산성,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짙은 분홍빛 철쭉이 화려한 자태로 우릴 반긴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송이도, 미처 터져 나오지 못한 꽃망울도, 파릇파릇한 이파리도 활 핀 꽃만큼이나 어여쁘다. 때로는 늦게, 때로는 좀 더 일찍, 저마다속도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은 자신만의 모양과 빛깔들 한껏 뽐내고 있다.


짙은 분홍빛으로 물든 공산성의 철쭉

 입구에서부터 거센 바람이 온몸으로 부딪쳐 달려온. 세찬 바람을 타고 제멋대로 날뛰는 머리카락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도 우리는 쉼 없이 재잘거린.

"오늘 아침부터 열심히 구르프 말고 왔는데 바람이 장난 아니네. 내 머리 다 망가져 버렸어."

"날씨 보니까 오늘 바람이 강도 7 이래."

"이제 우리 나들이 올 때 바람 세기도 체크해야 되는 거야?"

"그러게. 바람이 아주 태풍급이네. 나 날아가는 거 아냐?"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크크크"

성벽 외곽을 따라 세워진 깃발도 무서운 기세로 나부낀다. 송산리 6호분 벽화의 사신도를 재현했다는 황색 깃발에는 동서남북 방향을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져 있다. 우렁찬 소리를 내며 펄럭이는 깃발의 움직임 속에서 그 먼 옛날 백제인의 기세 등등한 호기로움이 느껴진다.



 좁은 외길로 이어진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울타리도 없이 높게 솟아오른 성곽길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아찔한 긴장감을 준다. 성곽 위에 올라 내려다보니 유유히 흐르는 금강 너머로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서서 품 안에 들어올 듯 작아진 세상 풍경을 지그시 바라다본다. 바쁘게 움직이던 세상도, 정신없이 흘러가던 시간도 잠시 멈춰 선  평화롭다. 아등바등 동동거리며 시간에 쫓겨 살던 나에게 잔잔한 여유로움이 찾아든다. 자연이 마련해준 아름다운 고요 속에서 무겁게 짓누르던 일상의 짐도 살며시 내려놓아 .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우리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걸어가는 뒷모습, 그림처럼 멋진 풍경, 혼자 또는 함께인 너와 나의 모습.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을 계속해서 사진 속에 담아본다. 어느 자리에서 누구와 사진을 찍든 나무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에 서서 우릴 바라보고 있다. 모든 사진 속에는 저마다의 자태로 푸르름뽐내는 나무들이 함께하고 다.


 공산성에서의 시간은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고 서있는 수많은 나무들과 가까워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복잡했던 마음은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은 나무를 바라보며 그들이 살아온 긴긴 시간을 더듬어 본다. 햇빛과 바람을 머금었던 시간의 길이만큼 나뭇잎 색깔도 더 깊고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덩치가 큰 고목일수록 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들이 뿜어내는 연둣빛, 초록빛이 더없이 영롱하고 싱그럽다. 요즘은 2억만 화소의 카메라까지 나왔다는데 몇 억이 넘는 화소의 카메라를 들이댄다 한들 총천연색을 머금은 자연의 을 어찌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자연의 색은 카메라 렌즈가 아닌 두 눈으로 담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지만 오감을 다해 한껏 가슴에 담아 느끼고 사진으로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다.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서일까? 아침밥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슬슬 배가 고파온다. 른 점심을 먹기 위해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내려 갔다. 잠시 쉬어 가는 길, 우리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360도 회전 동영상을 한번 찍어보기로 했다.

"빨리 모여봐 봐. 이렇게 제 자리에서 천천히 도는 거야"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시작할게요. 자, 이제 돌아 돌아"

"악! 이게 뭐야?  얼굴 다 잘렸잖아. 크크크"

"하하하, 우리 진짜 웃기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에휴, 너희들은 정말 안 되겠다.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얘들아, 그게 아니고 제 자리에서 이렇게 돌아야지"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난리법석 속에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동영상. 흔들리는 화면에 얼굴까지 잘려나간 실패작이 되었지만 덕분에 크게 웃었으니 그거면 됐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니까. "크크크큭큭" 해맑은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져 여기저기로 퍼져나간다. 다음에는 회전 동영상 촬영을 성공해보리라 다짐하며 공산성을 내려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잠자리에 누워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백장이 넘는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소북과 함께했던 시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공산성을 가득 메울 듯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 없이 피어오르던 이야기꽃, 공산성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 맛있었지만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던 메밀국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어진 유쾌한 수다. 즐거웠던 오늘 이 순간 자주 생각나고 그리워질 것이다. 초록빛을 내뿜던 무성한 나뭇잎싱그러움과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들려오던 나무들의 속삭임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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