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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Jun 30. 2022

핑클과 링귀걸이

그 시절 우리는 이효리처럼 되고 싶었다


 1990년대 S.E.S와 함께 걸그룹 양대산맥을 이룬 핑클은 밀레니엄으로 떠들썩하던 2000년, 정규 3집 <NOW>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음악방송에서 핑클의 컴백을 지켜보았다. 사랑스러운 윙크를 날리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핑클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멋진 슈트 자락을 휘날리며 보이쉬한 매력을 발산했다. 강렬한 사운드와 파워풀해진 안무에 우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열심히 따라 불렀다.   

 

came in to my life (ye)
make me fly again (ye)
늘 바라왔던 상상처럼 (love out)
always be with you (ye)
are the one for me (ye)
내게 눈이 먼 것처럼 (love out)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람에 펄럭이는 슈트 자락도 아니요, 신나는 노래와 멋진 춤도 아니었다. 바로 그녀들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조명 빛에 반짝이며 달랑거리는 은색 링 귀걸이었다. 90년대 여자 연예인들은 내기라도 하듯 점점 사이즈의 링 귀걸이를 하고 나타났다. 만원 버스를 탔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커다란 링 귀걸이가 버스 손잡이인 줄 알고 잡았다가 귀가 찢어졌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들려왔다.


 연예인들이 하고 나오는 링 귀걸이를 볼 때마다 우리는 귀를 뚫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많은 여고생들의 우상과도 같았던 핑클 언니들은 안 그래도 귀를 뚫고 싶어 안달 난 우리들의 열망에 불을 지폈다. 핑클 무대를 볼 때마다 빛나는 링 귀걸이가 우릴 유혹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걸 하고 말리라 다짐했다.



     

 귀를 뚫게 되면 구멍이 완전히 아물 때까지는 금이나 은 귀걸이를 하고 있어야 덧나지 않는다. 하지만 복장 규제 엄격하기로 소문난 우리 학교에서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는 것은 대놓고 '선생님! 제발 저 좀 혼내주세요'라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귀걸이 등교 시간에 교문 앞을 지키고 서있는 선도부한테 1차로 걸릴 것이고, 2차로 학생부 선생님한테 끌려가 몽둥이찜질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아! 귀도 뚫고 귀걸이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귀걸이를 너무도 하고 싶었던 우리는 일단 겨울방학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방학하면 우선 2주 정도 다음 보충수업을 시작하고 방학 동안에는 복장 단속이 느슨하니 어떻게든 요령껏 버텨보자는 심산이었다. 장에라도 핑클 언니들처럼 링 귀걸이 달고 멋들어지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came in to my life ye!' 를 외치고 싶었지만 두 달만 꾹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겨울방학이 돌아왔다. 방학식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과 시내로 달려가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까마귀 같은 시커먼 교복은 책가방에 대충 쑤셔 넣고 주얼리 가게로 달려갔다. 막상 귀를 뚫으려고 하자 겁이 났다. 귀 잘못 뚫으면 신경을 건드려서 실명이 될 수도 있다더라, 귀 뚫으러 갔던 사람이 갑자기 앞이 캄캄해져서 정전이 된 거냐고 물어봤다더라 하는 괴담이 은근 신경 쓰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인배로 통하던 미희는 내 주변에 그런 사람 단 한 도 못 봤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앉기나 하라며 팔을 끌어당겼다.


학생! 움직이지 말고. 살짝 따끔할 수 있어요.

무심한 표정의 직원은 몇 초도 안 되는 사이에 양쪽 귀를 뚫어주고는 기계적으로 주의사항을 읊어주었다.

“완전히 아물기 전까지는 귀걸이 계속 착용해 주시고요. 당분간 소독도 매일 하고 연고도 발라주세요. 아물기 전에 귀걸이 빼시면 다시 막힐 수도 있는 거 아시?

 양쪽 귀에 박혀 앙증맞게 반짝이는 귀걸이를 보자 친구들과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너무 예쁘다며 유난스럽게 서로를 칭찬했다. 직원이 말한 주의사항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자는 귀걸이 하면 1.5배는 더 예뻐진다는데 진짜 그런가 봐. 나 좀 더 예뻐진 것 같지 않냐? 우리 이제 빨리 링 귀걸이 사러 가자."


 귀가 아물려면 한 달 가까이 기다려하는데도 우리는 귀 뚫은 기념으로 뭐라도 하나 사야 한다며 길거리 좌판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마음에 드는 귀걸이가 너무 많았다. 이것도 귀에 대보고 저것도 대보고. 당분간 고이 모셔두기만 해야 할 링 귀걸이를 하나씩 사들고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집에 왔다. 링 귀걸이를 연신 귀에 대보고 어울릴만한 옷들까지 코디해 보며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다. 양쪽 귀에 매달려 별처럼 아름답게 빛날 링 귀걸이를 상상하며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귀 뚫은 곳이 덧나 귀걸이를 못하게 될 불상사가 일어나면 어쩌나 매일매일이 조심스러웠다. 머리 감는 횟수도 줄이고 혹여나 물이 들어갈까 신경 쓰며 소독과 연고 바르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귀찮아서 상처에 후시딘도 안 바르던 내가 링 귀걸이를 해보겠다고 양쪽 귀에 온갖 정성을 쏟았던 것이다. 다행히 내 귀는 염증 한번 나지 않고 잘 아물어가고 있었다.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시내에서 링 귀걸이를 대보며 '이제 귀걸이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주간의 짧은 휴식이 끝나고 겨울방학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머리는 무조건 묶어야 하는 학교 규정 때문에 친구들과 나는 행여 귀걸이가 보일 세라 최대한 느슨하게 머리를 묶고 귀까지 목도리를 칭칭 감고 교했다. 학교 안에서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목도리는 절대 어놓지 않았다. 첫째 날, 둘째 날...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했던 일주일이 무사히 넘어갔다.

'이제 일주일, 딱 일주일만 지나면 귀도 다 아물 테고 링 귀걸이도 할 수 있어. 제발, 일주일만 잘 버텨보자'


 그렇게 간절히 염원했건만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놓나와 미희는 담임한테 딱 걸리고 말았다. 담임은 검정 테이프로 칭칭 감은 매를 손에 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너 자식들 누가 이 딴 귀걸이 하고 다니라 그랬어? 공부도 안 하는 멍청한 것들이 하지 말라는 짓들만 골라서 한다니까. 이 딴 거 할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 이 놈들아! 이건 압수다!" 선생님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독한 말들을 쏟아내며 우리 손바닥에도 마음에도 시뻘건 상흔 남겼다. 벌레 쳐다보듯 멸시 어린 눈빛과 쯧쯧거림, 기어코 머리통을 한 대 갈기며 끝까지 모멸감을 느끼도록 해야만 했던 선생님의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열이 뻗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들이 당시에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명목하에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그때는 매를 맞으면서도 온통 링귀걸이 생각뿐이었다.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링귀걸만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까짓 아픔은 기꺼이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링귀걸이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뺏긴 귀걸이는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고, 미처 다 아물지 못한 두 귀는 이제 막혀버릴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끝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던 우리는 며칠 후에 담임 실내화 한 짝을 몰래 쓰레기 소각장에 던져버리는 소심한 복수로 링귀걸이 사건을 털어냈다.


 귀걸이를 넣다 뺐다 하는 동안 결국 두 귀는 꽉 막혀버렸다. 링 귀걸이를 하고 시내를 활보하고 싶었던 꿈도 산산조각 다. 나와 미희만 빼고 다른 두 친구는 귀가 빨리 아물어 링 귀걸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적어도 나와 미희 앞에서는 귀걸이를 하지 않았다. 우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보여준 셈이다.

고3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또다시 귀를 뚫었지만 그땐 링 귀걸이를 하고싶은 간절함이 꺼진 불씨처럼 사그라든 후였다. 처음으로 샀던 서랍 속 링 귀걸이는 귓구멍에 단 한 번도 매달려 보지 못하고 귓불에 대었다 떼었다만 반복하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녹이 쓴 것처럼 변색이 된 링 귀걸이는 어느 왕조의 오래된 유물처럼 나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야구 모자를 쓰고, 세미 힙합 바지를 입고, 황토색 워커를 신고 귀걸이까지 하나 딱 해주면 나도 이효리처럼 멋진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공짜로 줘도 안 할 링 귀걸이를 그때는 그거 하나 해보겠다고 왜 그렇게 용을 쓰고 마음 졸였는지 모르겠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의 나는 귀걸이를 통해서라도 1.5배 예뻐진 수박이 되고 싶었다. 열여덟 청춘은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어른 흉내도 내보고 싶고, 하지 말라는 것은 어떻게든 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그런 나이인가 보다.


그때는 너무도 속상하고 쓰라렸던 기억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화되는 걸 보면 시간의 힘이란 실로 대단한 듯하다. 그깟 귀걸이 하나 했다고 '멍청한 것들'이라는 말도 모자라 손바닥이 빨개 질 때까지 맞았던 아픈 기억보다 친구들과 함께한 즐거운 기억이 훨씬 더 큰 걸 보면 기억은 지극히 불완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완전한 기억 장치 덕분에 힘들고 아팠던 것보다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삶의 기억들이 많아지는 것도 뭐 나쁘지만은 않다. 지나온 시간을 모두 기억하고 사는데 한계가 있다면 슬픔보다는 기쁨을, 불행보다는 행복한 시간을 안고 사는데 더 낫지 않겠는가?


 한때 우리의 워너비 스타였던 효리 언니도 마흔을 넘긴 중년이 되었다. 멋진 슈트를 입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은빛 링 귀걸이를 달랑거리던 그녀도 나처럼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나의 청춘스타 이효리. '댄스 가수 유랑단'이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그녀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한 링 귀걸이의 추억이 떠오른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 이십여 년 만에 핑클의 <NOW>를 다시 들어본다.  핑클 멤버를 하나씩 맡아-나도 이효리를 맡고 싶었는데 미희한테 뺏겼다-열창을 하며 어설픈 춤을 추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 내게도 연둣빛 사과처럼 그렇게 풋풋했던 날이 있었지.


I know you miss me I'm crazy now
뜨거운 너의 품에 쉴 수 있게
꿈꿔왔던 satisfaction
모든 내 사랑을 다 주고 싶은 나





*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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