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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Jul 06. 2022

맘마북, 마침표를 찍다

"맘마북과 함께한 우리를 위하여!"


여섯 개의 술잔이 한 데로 모아져 쨍하고 부딪쳤다.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는 마치 끝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들린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술자리가 즐겁기도 하지만 오늘이 맘마북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어쩐지 첫 술잔은 쓰다. 한 상 맛있게 차려진 음식들을 씹어 삼키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 씁쓸함이 가시고 목구멍까지 기분 좋은 포만감이 올라온다. 화기애애한 수다와 웃음소리로 가득한 토요일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방 안 가득 채워진 웃음 뒤에는 끝을 향한 아쉬움과 섭섭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술자리를 끝내고 늦은 밤 집에 돌아왔다. 녹초가 되어버린 몸과 연이어 터져 나오는 하품 속에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팟티 맘마북에 들어가 보았다. 올해 1월 이후로 그림책은 더 이상 업로드되지 않고 멈춰있다. 손님이 끊긴 어느 한적한 가게처럼 맘마북도 더 이상 찾는 이가 없는 듯하다. 몇 달 전과 다름없는 구독자수(어쩌면 줄었을지도 모른다)와 조회수가 맘마북의 끝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정체되어 있는 숫자를 보니 한약을 먹고 난 뒤 입안에 감도는 쌉싸름함이 느껴진다. 그림책 한 권을 클릭하자 멈춰진 조회수에 1이 더해졌다.


"엄마, 책 먹자!"

경쾌한 음악과 함께 들려온 사랑스러운 아이들 목소리는 그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인트로(intro)를 녹음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녹음기를 앞에 대자 아이들 얼굴은 강제로 무대 위에 세워둔 것처럼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얘들아! 하나, 둘, 셋 하면 말하는 거야. 알았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들은 신호에 맞춰 일제히 "엄마, 책 먹자" 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이들 목소리는 맘마북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이후로 우리는 종종 아이들과 그림책을 녹음했고 아이들은 맘마북 준회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어느 날은 말썽꾸러기 남자아이가 되어,  어느 날은 걸음마를 뗀 돌쟁이와  아웅다웅 다투는 형제자매가 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다. 맘마북은 함께했던 아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어느 한순간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 쉽게 책을 읽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목소리 기증을 해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불씨가 되어 그림책 읽어주는 팟캐스트까지 만들게 되었다. 목소리 기증 봉사는 일정 조율이 어려워 무산되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좀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2018년 5월, 책모임 회원들과 그림책 읽어주는 팟캐스트 맘마북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밥을 짓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 그림책을 읽어준다는 의미에서 '맘마북'이라는 그럴싸한 이름도 지었다. 회원들은 맘마북 이름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며 두고두고 우리의 작명 실력을 칭찬했다.


그림책 전문가를 모시고 공부도 하고, 그림책 읽는 연습도 하고, 다양한 그림책도 읽어보며 열심히 팟캐스트를 준비했다. 많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호기롭게 팟캐스트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때의 우리는 열정에 불타오르는 무모한 선인(善人)들이었다. 절대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던 말이 무색하게 회원들은 구독자수와 조회수가 높아질 때마다 단체톡에 구독자수 캡처 사진을 올리며 기쁨을 나누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하는 사람 중에 구독자수에 신경 쓰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성장과 발전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숫자에 집착하는 우리 행동을 정당화했다. 숫자의 높고 낮음에 우리는 일희일비했고, 어느 날은 구독자수와 조회수가 낮아진 원인을 파악해보려 애를 쓰기도 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감동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익명의 청취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역할을 정해 함께 녹음할 때면 마치 대본을 보고 마이크 앞에서 연기하는 성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날은 웃음보가 터져서, 띠리링 핸드폰 소리가 나서, 또 어떤 날은 외부에서 들리는 소음이 심해서 녹음이 중단되고 NG가 나기도 했다. 한없이 초라했던 녹음본이 편집 과정을 통해 매끄럽게 잘 다듬어져 나올 때면 우리는 편집자의 금손과 디지털 문명을 찬양했다. 편집의 힘은 고도의 화장 기술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었다.


변변한 녹음실이 없어 도서관 공연장에 있는 협소한 기계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핸드폰으로 녹음을 했다. 회원 두 명이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을 넣고 우리 목소리를 자르고 이어 붙이며 내보이기 부끄럽지 않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편집 변신술을 통한 그럴싸한 완성물보다 부대끼며 함께했던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들은 서로를 통해 매우고 채웠던 시간과 우리가 나누었던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다.


맘마북의 성장은 보일 듯 말 듯 미미했으나 오디오북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대형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QR코드를 찍으면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는 그림책들을 확대해 나갔다. 점차 강화되고 있는 저작권법으로 출판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원하는 그림책을 녹음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팟캐스트 하나가 어떤 그림책을 녹음한들 누가 관심이나 있겠어? 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릴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정정당당하게 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판사에 일일이 메일을 보내 저작권 허락을 받으려 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는 이를 거부했다. 출판사는 아무리 영리 목적이 아니라지만 팟캐스트에서 책 전문을 읽어주면 누가 책을 사겠냐 했고 자체의 오디오북이 있는데 애써 저작권을 허락해 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이 허락된 몇 개의 출판사 책들로만 녹음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떤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의 사기도 열정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차갑게 식은 우리의 열정보다 더 빠르게 구독자수와 조회수도 떨어져 갔고 언제부터인가 꾸역꾸역 구멍을 메꿔나가듯 녹음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팟티는 2022년 7월 10일 오후 5시부로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안내문을 올렸다. 회원들 사이에서 작년부터 맘마북을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막상 팟티에 공지된 안내문을 보니 강제 종료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주 일요일이면 그림책 읽어주던 맘마북도, 맘마북이 몸 담았던 팟티도 쓸쓸히 퇴장한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은 사람들 기억 속에 맘마북을 붙잡아 두지 않을 것이다. 곧 시간 속에 묻히고 잊힐 테다.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닿지 못한 그 어디에선가 맘마북이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에 귀 기울인 누군가가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우리가 쌓아놓은 소중한 추억들이 있으니 5년의 시간은 특별했다고, 그러니 더 이상 아쉬워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눈물이 난다. 붙잡아 두고 싶지도 않고 미련이 남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쏟아진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 내쳐진 것 같아서, 우리의 선한 마음을 폄하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서 자꾸만 슬퍼진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살던 곳이든, 무엇이든 떠나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쉽지 않겠지만 오늘 맘마북과 이별이 아닌 작별을 해야겠다. 이별은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이라 고, 작별은 제 힘으로 힘껏 갈라서는 헤어짐이라 했다. 그동안 맘마북과 함께한 회원들과 아이들,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웃으며 이별이 아닌 작별을 전한다.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모두 행복하세요. 안녕!



마침표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 믿는다. 맘마북에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회원들과의 인연은 책모임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세상에 많고 많은 그림책을 만날 것이고, 누군가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장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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