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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엘로 Jul 11. 2024

프롤로그

연애는 왜 하는 거야?

 에스컬레이터 한 칸 아래 서 있는 친구에게 예쁘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예뻐 보이려면 에스컬레이터 딱 한 칸 높이만큼 키가 큰 남자를 만나야겠단다.


 가끔 생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예뻐 보이기 위해 키가 큰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는 친구는 예쁨 받기 위해 연애하는 걸까, 사람들이 연애하는 이유는 뭘까, 그렇다면 나는 연애를 왜 하고 싶은 걸까, 이렇게 말이다.


 연애가 궁금하긴 했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대학교 졸업반에 올라갈 즘에야 호기심에 첫 연애를 시작했다. 나도 그도 처음인 연애였다. 서로 배려하는 방법을 몰랐고 상대의 의견보다 내 생각이 중요했기에 자주 다퉜다. 그리고 게임에서 죽을 때마다 사라지는 하트처럼, 우리가 싸울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 그려놓은 하트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하트가 다 지워지면 게임 오버. 그렇게 첫 연애가 끝났고 더 이상 연애가 궁금하지 않았다.


 취업과 동시에 두 번째 연애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콩깍지였다. 사소한 공통점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콩깍지를 꼼꼼히 씌워나갔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고치려고 노력하고 내가 움직이면 내 발끝이 향하는 곳으로 먼저 달려가는 모습에 콩깍지는 점차 단단하게 익어갔다. 그런데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달라졌기 때문일까, 콩깍지에 가려져 있던 원래의 모습을 외면해 왔던 걸까, 혹은 나의 예민함이 점차 날카로워진 걸까. 시간이 갈수록 함께하는 동안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나는 짜증을 냈고 나의 짜증에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불만을 삼키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그렇게 짜증과 화로 가득한 나에게 지친 두 번째 남자 친구는 떠났고 나는 단단하게 씌어있던 콩깍지에서 벗어났다.


 나는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나를 좋아해 줄 사람, 내가 좋아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마음 한편에 작은 의심이 자리를 잡을 때쯤,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이 나타났다. 반장, 조별 과제 조장, 학생회장, 회사 대표님 모두 겪고 나서 리더십은 허울 좋은 단어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믿음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사람이었다. 행동도 말투도 특별하게 남들과 다른 게 아님에도 사람들을 끄는 무언가를 가진 그에게 호기심, 아니 관심이 생겼다. 집 방향이 같은 나를 집에 바래다준 날부터 그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가벼운 일상 이야기부터 남들에게 좀처럼 털어놓기 힘든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우리의 공백 없는 대화는 웃음과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또 너무 진솔한 이야기에 내 모든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은 나머지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곯아떨어지곤 했다. 언젠가부터 핸드폰만 붙잡고 그 사람 연락만 기다리는 내 모습에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먼저 고백했다.


 나의 일상, 생각, 감정,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 하하 호호 즐겁게 이야기하다가도 뜬금없이 나온 나의 작은 고민에 진지한 태도로 고쳐 앉아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친구. 나는 이런 친구를 갖고 싶어서 연애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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