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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엘로 Jul 18. 2024

연하남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을 줄 알았다. 직장인이 대부분인 모임의 모임장이었으니까. 난 5년 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니 잔뜩 긴장해 얼은 상태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는 익숙하게 모임에 관해 설명한 뒤 본인 소개를 했다. 나보다 2살 어린, 미국에 유학 중인 대학생이란다. 내가 알던 2살 어린 친구들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 모임은 영어로 수다 떠는 모임이었는데 그가 있는 조는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종종 같은 조가 되곤 했다. 좋아하는 계절, 추천하고 싶은 여행 같은 가벼운 주제에서도 뚜렷한 가치관이 느껴졌고, 가족이나 행복과 같은 깊은 주제에서는 상당히 진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화가 즐겁고 자꾸만 시선을 끄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남모르게 같은 조가 되고 싶었던 건 이제야 인정하는 사실이다.


 모임에 들어간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저녁 식사 뒤풀이에 따라갔다. 한참 대화하고 허기진 사람들이 고른 메뉴는 닭갈비. 그는 종종 차가 없는 사람들을 식당까지 태워줬는데, 그날은 우연히도 내가 그의 차 조수석을 차지했다.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못하는 8년 차 면허 소지자인 나와 달리, 능숙하게 핸들을 돌렸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앞으로 튀어 나가지 않도록 조수석부터 챙기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운전이 너무 매끄러워서 내 등은 등받이에서 떨어진 적조차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의 집에 가는 길에 우리 집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그는 노래방까지만 갔다가 집에 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노래방이라면 빠지지 않는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노래방만 가면 항상 부르는 내 애창곡 ‘Like my father’을 예약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유학생 앞에서 팝송을 부르려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꼭 불러야 했다. “가사 진짜 좋네요.” 노래가 끝나고 그는 내 귀에 속삭였다. “제가 그래서 이 노래 좋아하잖아요.”


 내가 집에 가는 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우리는 동네를 두어 바퀴 헛돌았다. 근처에 늦게까지 하는 카페라도 있으면 갈까 했지만, 조용한 동네에 있을 리 만무했고 한 번 더 헤맨 끝에 집에 도착했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내 아쉬움이 우리의 발을 묶어뒀던 걸지도 모르겠다.


 집에 들어와 얼추 정리하고 책상에 앉으니,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는 잘 도착했어요! 내일 같이 저녁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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