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심까!’
일이 끝나고 데리러 온 그의 차에 타면서 인사를 건넸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 데다가 사적으로 단둘이 만난다는 게 어색하기도 해서 더 밝은 목소리로 이상한 인사말을 던졌다. 물론 걱정은 왜 했나 싶을 정도로 신나게 떠들었지만.
저녁 메뉴를 고민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도, 저녁을 먹으면서도, 밤 산책을 하면서도 우리는 입을 한시도 가만두지를 못했다. 이미 이야기 소재가 고갈되어 같은 말만 반복할 만큼 긴 시간인데, 우리의 대화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전화하며 자기 전까지도 계속되었다. 30년을 수다쟁이로 살면서 1시간만 떠들어도 눈에 초점이 흐려지는 사람 참 많이 봤는데, 처음과 같은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이 친구가 신기했다. 우리는 매일 연락하며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혼자 여유롭게 카페를 즐기던 날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지 한참인데 연락이 없어 확인해 보니 이미 읽은 상태였다. 바쁜가 보군,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여나 연락이 왔을까 휴대전화 화면을 수시로 두드리느라 눈앞에 펼쳐진 책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4시간 만에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가 오더니 답장 안 한 줄 몰랐다며 아주 미안해했다. 우리는 연락 문제로 서운할 사이가 아니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의아하면서도 묘하게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상사가 시간 괜찮으면 퇴근하고 남으라는데 빠져나올 핑계가 없단다. 그럼 나랑 약속 있다고 하고 나와. 장난 반 진심 반 툭 던졌고 그는 곧바로 낚아챘다. 이렇게 시답잖은 이유를 붙여 자주 만났고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멀리 분위기 좋은 카페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이 정도 연락과 이 정도 만남이면 관심 이상이 아니었나? 썸은 원래 설레는 말도 오가고 간질간질한 관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우린 더 이상의 이성적 진전 없이 밥 친구, 노래방 친구처럼 편안한 놀이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따금 설렘을 느낀 나와 달리 그 친구는 그저 즐거워만 보였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아주 달라 보이지도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내 모습에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기 위해 그저 도끼병이었다고 스스로 세뇌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