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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리 Feb 20. 2023

지구에서 여자로 살기 2

나의 엑스 연애

이십 대 후반에 나는 목욕탕도 함께 갈 수 있다고 우기던 남사친과 결국 연애를 했다. 아마 거짓말 내지는 허세였던 것 같다. 그는 이전부터 꽤 내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여서 연애 기간에도 잘 맞았고 행복했고 많이 사랑했다. 그치만 대학원생과의 연애는 군인보다 쉽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의 연애는 고단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는데 그와 만나려면 나는 새벽이나 야밤에 그를 서울의 끝과 끝으로,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다주는 시간이어야 가능했다. 당시에 나는 일을 해서 작은 경차를 몰았는데 그 시기, 내 차의 주행거리는 중고로 팔지 못할 만큼 늘어났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소모적인 연애였는데 그걸 다 퉁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잘 맞았고 나는 그를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2년이 넘어가며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결혼으로 그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나는 그에게 휴식을 선언하고 1년간 독일로 떠났다. 그게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도 모른 채, 만약 그와 결혼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음...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더 행복해졌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겠지, 나는 그와 헤어지고 독일에서 만난 지금 남편과의 결혼 전 후로 약 반년씩 1년간 매일 그의 꿈을 꾸었다.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그랬다. 어쩌면 사랑이란 게 완벽하게 한 사람만 향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가 보다. -혹은 불안하고 불행한 내 미래에 대한 복선이었던 걸까?- 남편과 결혼 전 10개월쯤 같이 살았는데 남들이 아마 신혼이라고 말할 것 같은 5개월을 지내고 현실감이 밀려올 무렵부터 나는 평생 처음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내 별명은 잠만보로 맘만 먹으면 36시간도 잘 수 있는 인간이라 밤에 자다 깨는 일 따위는 평생에 없었는데 뜬눈으로 매일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일 년을 그의 꿈을 꾸고 나서 나는 서서히 일주일에 서너 번, 한 달에 서너 번, 분기에 서너 번, 이렇게 그의 꿈을 꾸는 일이 줄어들었다. 요즘은 일 년에 서너 번 그의 꿈을 꾼다. 꿈에서 그는 언제나 도도하고 따듯했다가 서늘하고 언제나 마지막에 잡히지 않고 나에게서 멀리 가버린다. 그를 차버린 건 난데 이제는 내가 차인 기분이 들 지경이다. 바보 같은 꿈, 내가 멍청이 같다는 것도 알고, 이런 내가 참 별로인데 뭐 이마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서서히 흐려져 가서 다행이지. 아주 가끔 인스타에서 그의 피드를 본다. 아이 둘 낳고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잘 살기를 바란다. 이놈의 오지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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