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에 대하여
2.6 킬로그램. 나는 작디작게 태어나서 유년기 내내 쭉 입맛이 없었다. 어린 내가 잠들면 엄마가 입천장에 붙은 밥알을 긁어내야 할 정도로 밥을 삼키지 않는 요망한 어린이였다. 8살 난 아들을 키우며 우리 엄마가 왜 내 이마에 그렇게 꿀밤을 매겼는지 깊이 통감했다. 밥 안 먹는 어린이란 부모로 하여금 열받음과 속상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주는 아주 고약한 존재여서 나는 그 일로 꽤 많이 혼났다. 그렇게 쭉 말랐으면 좋았을 것을, 열 살에 아빠손에 질질 끌려간 태권도장에서 주 5회 운동을 하니 없던 입맛이 돌았다. 나는 차근차근 통통해져서 검은 띠를 딸 때 즈음엔 호빵맨같이 볼에 광택이 흘렀다. 그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데 하필 내 유전자에 지방이라는 것이 주로 아래쪽으로 붙게끔 설계가 된 모양이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나는 내가 뼈가 굵은 하체비만임을 알게 됐다. 그것은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일자로 쭉 굵어서 살을 빼봤자 별로 드라마틱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내가 살쪘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뭔가를 먹을 때 자제력은 없었지만 죄책감은 나와 늘 함께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적당히 먹을 줄은 모르면서 이걸 먹으면 살찔 텐데 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괴로웠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365일을 만나도 만날 사람이 넘치던 그 시절의 나는 다이어트 같은 것은 꿈도 못 꿨다. 대신 나는 어떤 모습이든 소중해라던가, 현세대의 미의 기준에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식으로 정서적 위로를 얻고자 했지만 미디어에 마르고 예쁜 여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은 내가 마인드 컨트롤 좀 한다고 쉽사리 바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세상에 예쁜 옷들은 말라야 예쁘고, 말라야 들어가고, 통통한 여자가 핫팬츠를 입는 것 따위는 용인되지 않았다. 못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내 로망은 늘 흰색 스키니 혹은 청 핫팬츠를 입는 거였다. 심지어 소녀시대 열풍으로 내 20대 내내 스키니팬츠가 유행했기 때문에 나 같은 하체비만은 설 땅이 없었다. -뭘 입든 남들 신경 좀 덜 쓰게 된 지금에서야 와이드 팬츠가 유행하다니! 시대를 잘못 태어나도 한참 잘못 태어나 버렸다.- 인생이 어찌어찌 흘러서 29살에 독일에 와보니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뚱뚱한 여자는 아니었다. 다리는 좀 뚱뚱했지만 내 다리에 관심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나보다 더 뚱뚱해도 비키니도 입고 핫팬츠도 입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우주에서 가장 큰 것 같던 내 엉덩이는 그네들에게 비하면 빈약했다. -물론 가슴은 거의 없다시피 한 거였다. 나는 여전히 독일에서 나한테 맞는 브라를 찾을 수가 없다- 허리와 영덩이의 불균형이 너무 심해서 한국에서는 바지를 살 수 없던 나는 늘 치마에 롱부츠를 신었는데-이것도 다리에 들어가는 게 없어서 늘 주문제작을 했다- 여기 오니 힙 사이즈와 허리 사이즈 그리고 다리 길이까지 따로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래서 선진국이구나! 유레카!! 나도 바지를 살 수 있어!! 그것도 잠시, 신혼여행 때 임신을 해버리는 바람에 원래도 묵직했던 나는 매우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몸무게를 웃도는 숫자와 곧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 임신하면 뭐 어쩔 수 없지! 애가 나오고 수유를 하면 다 빠진다더라, 육아가 힘들어서 더 마르기도 한다더라 여러 카더라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곧 그것은 대학 가면 다 빠져와 같은 맥락의 카더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개월간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지만 남편은 3개월 내내 늦잠을 잤다. 그래서 나는 출산 직후 3개월을 하루에 2끼만 먹으며 수유했는데 개뿔 살은 1킬로도 빠지지 않았다. 나와 같은 2.6킬로그램의 아들을 낳고 양수무게까지 빠져서 고작 5킬로 빠진 게 다였다. 내 인생 최대 몸무게로 1년을 보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수유티만 입으며 우울하게 보낸 시절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내 근육량을 급격히 감소시켰고 내 몸은 아주 적은 칼로리로도 체지방들을 차곡차곡 저축하는, 매우!! 시대를 역행하는 효율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에 태어났더라면 빙하기쯤 거뜬히 이겨낼 효율성이라니! 정신없이 독박육아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식사는 라면이나 햄버거 따위로 때우기 일쑤였고 몸은 상했다. 아들이 18개월이 됐을 무렵 어린이 집에 가면서 자연히 5킬로가 빠졌다. 내 살들은 내 신체와 정신에 여유가 좀 있어야 빠지는 모양이었다. 5킬로가 빠져봤자 나는 좀 날씬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몸무게였고 예쁜 옷 따위는 꿈도 못 꿨다. 31살 한창 예쁠 나이였는데 주구장창 헐렁한 티에 고무줄 바지만 입고 다녔다. 그렇게 정신없이 8년간 육아와 살림, 그리고 남편과 싸우며 보내다 보니 젊고 살쪘던 나는 보이프렌드진을 스키니 하게 소화하고 엉덩이가 가려지는 패딩만 입는 살찐 아줌마가 됐다. 그러다 며칠 전 드디어 일이 터졌다. 바지 엉덩이가 터지고 만 것이다. 이 사건에는 두 가지의 의심 가는 정황이 있는데 하나는 살찐 내가 옷이 사기 싫어서 입던 옷만 주구장창 입어서 옷이 낡아빠지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엉덩이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앞에 이유가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터진 바지 사건 이후로도 나는 뚱뚱한 나에게 크고 헐렁한 바지를 사주기 싫어서 터진 채로 입고 다녔다. 남편과 아들은 놀려댔고 바지는 점점 더 터져서 엉덩이가 수박 쪼개지듯 쪼개져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그 바지.. 완전히 엉덩이가 열린 그 바지를 이제는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됐다. 너무 슬펐지만 현실을 마주하고 바지를 사야 했다. 당장 입을 바지는 세 개가 다인데 그중에 두 개도 이제 낡디 낡아서 언제 그 꼴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나는 바지를 주문하면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물론 당일은 실패했지만! 다음날 다시 결연하게 일어섰다.- 그래 나는 어차피 아무리 살을 빼도 늘씬한 다리 따윈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또, 살을 “아무리” 빼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자주 실패하고 자주 자책할 테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오늘 실패하면 내일 다시 시작하는 다이어트를 해야만 한다. 더 이상 아가리어터가 아니라 진짜 다이어트에 성공한 유지어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