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in 무더위 & 폭우
올해도 어김없이 덥고 습하다. 매년 겪는 여름이건만 매번 이리도 새로울 수 있을까. 8월에 태어난 딸아이는 이번이 태어나서 세 번째 여름이지만, 병원과 조리원 기간을 빼면 진짜 여름은 두 번째라고 볼 수 있겠다. 작년 장마때는 이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금년 장마는 육아가 왜이리도 힘든 것인가.
태어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는 딸아이는 집 밖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롭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흥미롭다. 심지어 벌레조차 흥미롭다. 놀이터는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 거실의 중문을 열고 본인의 신발을 들고선 나가자고 조른다. 그 모습을 애써 못 본체하면 굳이 찾아와서 양손에 신을 들고 눈에 띄려 이리저리 소리를 내며 뛰어다닌다. 그래, 아빠도 너를 데리고 나가고 싶다.
그런데 지금 장마라고.....
휴대폰에 있는 날씨 어플은 전부 비, 비, 비, 비, 비, 비, 비 울고 있다. 단 하루도 해님이 없다. 비는 한번 왔다 하면 쏟아붓는다. 나갈 수가 없다고. 나도 울고 싶다고 그녀에게 호소해도 듣질 않는다. 각종 장난감과 책으로 시간을 보내봤자 1시간을 못 넘긴다. 이 좁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에는 판도라의 상자를 리모컨으로 깨워서 그녀에게 4차원의 세계를 보여준다. 뽀로로, 베베핀, 타요로 이어지는 빌드업은 부모에게 있어 버티기 힘든 유혹이다.
잠시 비가 그쳤을 때는 외출을 한다. 기상청 분들이 많이 고생하고 계시지만, 최근 한국 장마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각종 방수 장비(유아차 레인커버, 우산, 우비, 장화)를 가지고 나간다.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놀이터에 가면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놀이기구가 촉촉한 것을 넘어서 축축하다. 물웅덩이가 가득한 미끄럼틀을 한번 타면 하의는 이미 사망이다. 신나서 달리다가 넘어지면 상의도 사망이다. 괜찮다, 예상은 했으니까.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한다. 아, 이건 예상 못했다.
오랜만에 구름 사이로 햇살이 보인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아서 딸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오후 5시임에도 불구하고 34도를 넘는 폭염과 나의 살갗을 도려내는 UV의 공격. 한 발자국 내딛자 쏟아지는 땀은 정수리에서 생성되는 것인가 이마에서 솟아나는 것인가. 이런 악조건 속에서 딸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를 가본다. 예상외로 많은 아이들과 곧 탈수증이 올 것 같은 얼굴의 보호자들 사이로 딸과 함께 달려본다. 준비해 온 스포츠타월을 이마에 묶고 딸아이에게 이끌려 구름다리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술래잡기를 하니 어느새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이 부끄러. 가야 할 시간이야. 더 있으면 아빠 돼지는 수육이 될 거예요.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치우며 그녀는 만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 즐거웠으면 됐다.
집에 사람이 있으면 에어컨은 항상 돌아간다. 거실에 있는 스탠드형이 돌아가느냐, 침실에 있는 벽걸이형이 돌아가느냐 차이다. 저녁식사와 샤워를 마치면 9시에 이른 잠자리에 든다. 도저히 에어컨 없이 잠들 수 없는 열대야에 아이 혼자서 재울 수 없어 퀸 사이즈 침대에 셋이 같이 잔다. 설거지를 마친 아빠가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누워". 어디서 그런 말을 또 익혔을까. 엄마가 가르쳤니? 그냥 일상대화에서 캐치했겠지. 엄마 아빠와 같이 누워 기분이 좋은 아이는 낮에 불완전 연소한 에너지를 아빠 배위를 넘어 다니며 소비한다. 뛰지만 말아줘.
덥고 습한 하루. 밖에 나가지 못해 짜증도 부리고 겨우 바깥에 나가 얼굴이 호빵이 되도록 뛰어다니다 밤에는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서 스르륵 잠이 든다. 딸아이가 잠이 들면 육아 퇴근을 하는 엄마와 아빠는 맥주 한 캔에 스스로를 달래야 하지만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 이 방의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 습식 사우나라는 것을 알고 있거든. 게다가 너무 지쳤다. 그렇게 장마 육아가 하루 지나간다. 겨울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