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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16)] 오랜 친구를 만나다

2022년, 부산에서 만난 오랜 친구

by 고미사
"야, 딱 봐도 니인 거 알겠다!"


12년 만인가?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자세히 이야기하면, 중학교 입학 때 처음 만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창 시절 절친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천주교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이 친구와 연락이 끊겼었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 천주교 신부가 되는 사제서품을 프랑스에서 받고 휴대폰으로 친구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첫 미사 봉헌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드디어 이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사목 하며 지낸 지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 2022년의 한국은 2018년의 한국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부산으로 내려와 친구와 동래역에서 만나며 서로 놀라 말했다.


"야, 딱 봐도 니인 거 알겠다!"


정말 그랬다. 친구는 학창 시절 때 좋지 않던 피부가 하얗고 뽀얀 피부가 되어있었고 몸도 운동을 했는지 좋아 보였지만, 얼굴은 고등학교 때의 기억 그대로였다. 친구를 만나자마자 12년 동안 쓰지 않았던 경상도 사투리도 자동으로 나왔다. 친구의 집 근처에서 만난 거라 단골 중식당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친구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수도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자유를 느끼고자 수도 사제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다른 삶의 길 위에서도 사람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서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었다. 친구와 나는 중학교 때 만났을 때부터 티격태격했다. 특히 어렸던 중학교 시절에는 서로 종교가 달라 서로의 종교를 비난하는 철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어른이 된 후,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서로의 삶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있다는 것이 참 큰 든든함으로 느껴졌다.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야... 니 중학교 때부터 신부 되고 싶어 했다 아이가.. 근데 니 진짜로 신부 됐네. 신기하다. 니 알제? 지 꿈 이룬 사람들 별로 없디. 진짜 축하한다".


친구로부터 이 말을 듣자, 너무 기뻤다. 나의 꿈을 알고 나를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도 꿈이 있었지만 본인이 말하길,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 했지만, 인간관계 문제나 돈 문제일 것이 뻔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끼리의 수다는 점점 무르익었다.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짬뽕도 먹으니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친구가 추천해 준 짬뽕은 프랑스에서 맛보기 어려운 메뉴였으니 탁월한 선택이 따로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친구네 집에 갔다. 친구는 결혼 상대로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어서 집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댔다. 여자친구를 맞이해서 둘이서 지내기에 괜찮은 크기의 집인지... 몇 년쯤 뒤에 조금 더 큰 집으로 어떤 동네로 이사를 할 수 있을지... 고민 섞인 질문들을 내 앞에서 혼잣말처럼 늘어놓았다. 수도원에서만 지냈던 나는 경험이 없어서 명쾌한 조언을 해주지 못했다. 다만 친구의 고민을 들으며 '정말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손수 커피를 갈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려주었다. 여자친구가 커피를 좋아해서 배운 거라 하고, 집안의 조명들도, 가구들도 여자친구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구경을 실컷 하고 이야기 꽃을 계속 피워갔다. 이야기는 추억이라는 꽃을 피워댔고, 그 향기는 향기로웠다. 시간은 흘러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고, 함께 걸어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역 입구 앞에서 친구가 놀라듯 말했다. "야! 사진 안 찍었다!" 우리는 급하게 지하철 입구에서 사진을 찍곤 헤어졌다.


"다음에 또 보자!"


'다음'은 언제일까?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의 '다음'은 12년이었다. 과연 우리의 '다음'은 몇 년일까...? 드넓은 지구에서 작은 땅 한국에서 같은 시기에 태어나 같은 학교를 다니고 오랜 시간 친구로 남을 수 있는 확률은 아주 작을 것이다. 이런 확률을 뚫고 한 명의 친구가 있다는 것에 나는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 글을 빌어, 나의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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