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자책으로 돌아온다. 아직 괜찮다고, 조금 더 머물러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내렸던 그 허락이 어느새 나를 느슨하게 붙잡고 있다는 감각으로 바뀐다. 나는 지금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앎이 오히려 나를 더 가만히 서 있게 만든다.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서서히, 거의 감지되지 않는 속도로. 마치 얼음 아래에서 흐르는 물처럼 움직임은 분명한데 표면은 여전히 굳어 있다. 이 느림 앞에서 조급함은 숨을 고르게 하지 못하고, 체념은 너무 쉽게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나는 그 두 감정 사이에서 삶을 붙들고 서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압력과 이 상태로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서로를 밀어내지 못한 채 같은 자리에서 점유한다. 그 틈에서 나는 나의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본다. 그 삶 안에는 여전히 짙은 갈망이 남아 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라기보다 다시 살아 있고 싶다는 더 근원적인 갈망. 그리고 그 갈망의 곁에는 언제나 관계의 이면들이 따라붙는다.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다가가지 못했던 순간들, 지켜내고 싶었지만 끝내 놓쳐버린 장면들.
이상하게도 삶을 빛나게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사랑, 가능성, 기대, 신뢰 그리고 꿈같은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상처의 형태로 남아 나를 붙잡는다. 달아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깨닫고 나면 언제나 조금 늦었다. 그 늦음은 결정적인 실패라기보다 발목을 잡는 방식으로 계속 나를 현재에 묶어둔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이 상태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하나의 질문에 오래 머문다.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정말로 이렇게 계속 살아가게 되는 걸까. 이 질문은 협박처럼 날카롭지도, 희망처럼 밝지도 않다. 다만, 삶이 기울이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무게로 남는다.
나는 아직 결단하지 못했고, 완전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고뇌의 기울기 위에서 더는 무감각해지지 않으려 한다. 조급함에 나를 밀어붙이지도, 체념에 나를 맡기지도 않은 채 이 불편한 압력과 함께 오늘을 통과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변화가 아니라 이 기울기를 끝까지 느끼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망치지 않고, 미루지 않고 삶이 나를 어디로 밀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태도.
이 태도가 아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안다. 이 고뇌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