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머묾의 기준점

by 나잘스프레이

잠시 작은 세계에 머물면서 기울어진 채로 바라보는 것을 택한 요즘이다.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안쪽을 다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줄이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빛과 어둠은 대립이라기보다 같은 표면의 다른 결처럼 닿는다. 삶과 죽음 역시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한쪽이 기울면 다른 쪽이 드러나는 얇은 경계에 가깝다. 그 경계 위에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머무는 감각을 배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듯 보였던 것들이 이미 오래전에 식어 있었고, 죽어버렸다고 여겼던 감정은 아직 잔열을 품고 있다. 그 잔열 앞에서 스스로를 위한 애도인지, 끝난 무언의 관계를 위한 애도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한동안 서 있다.


어쩌면 애도란 사라진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그 안에 묻혀 있던 나 자신의 일부를 인정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일부를 나는 오래 외면했고, 이제야 그것이 죽어버린 관계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무한한 세계에 갇힌 마음은 아주 과장된다. 끝없는 가능성, 끝없는 상상, 끝없는 불안. 그 무한함은 자유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채 확정되는 감각에 가깝다. 그 안에서 하염없이 불안과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지금을 과도하고 탐닉하며 모든 의미를 부풀리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그 욕망이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절멸은 한순간의 붕괴가 아니라 과잉된 기대와 끝없이 증폭된 생각이 서서히 자신을 삼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기준점을 생각하게 된다. 삶을 살아가며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어디까지인지. 무엇을 붙잡아야 하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하는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선 하나를 마음 안에 그어보려 한다. 지금의 시대에, 지금의 내가, 살아나아갈 수 있는 기준은 아마도 과도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 위치. 빛을 좇아 어둠을 부정하지 않고, 어둠에 기대어 삶을 포기하지도 않는.


아직 나는, 그 기준을 명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작은 세계 안에서 기울어진 채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허공 속에 떠 있지 않다. 머묾은 도피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재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스친다.


무한을 좇지 않고, 감당 가능한 만큼만 살아보려는 시도. 아마 지금의 나는 그 정도의 철학 위에서 다시 하루를 맞이하려고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둡고,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여전히 기울어져 있지만 적어도 이 세계와 나 사이에 작은 기준 하나를 세우려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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