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의 고어 영상을 보고 깨달은 그들의 계략
어느 날, 우연히 봐서는 안 될 영상을 봤다.
한 소년이, 눈앞에서 아버지가 참수당하는 것을 본 뒤
차례로 심장이 꺼내지며 죽어간다.
그는 단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죽었다.
그는 울었고, 패닉에 빠졌고,
나는 그 장면을 본 뒤, 세계를 혐오하게 되었다.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은 더 이상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보다 강한 무력과 자금력을 가진 실질적 통치 구조이며, 정계와 경찰, 언론까지 매수하며 공포를 지배의 도구로 삼는다.
그들은 공포를 ‘경험’이 아닌 ‘콘텐츠’로 설계한다.
죽음은 메시지고, 고문은 연출이며, 피해자의 절규는 선전물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연출의 한가운데엔 언제나 죄 없는 사람들, 선택조차 하지 못한 희생자들이 있다.
공포를 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공포에 굴복한 자를 통해 또 다른 폭력을 퍼뜨리는 것.
그들은 그렇게 ‘살인’이 아니라 ‘확산’을 실행한다.
매일, 지금도.
내가 본 영상 속엔 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들의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참수당했다.
소년은 울었다. 패닉에 빠졌고, 온몸을 떨었고, 죽고 싶지 않다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소년의 가슴을 칼로 여러 번 찔러 후벼팠다.
복부의 피부를 갈랐고, 지방층을 걷어냈으며, 근육을 자르더니 마지막엔 심장을 꺼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의식이 남아 있었다.
몸이 움찔거렸고, 고통에 떨었고,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을 본 뒤, 세상이 붕괴되는 소리를 들었다.
인간은 이토록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토록까지 ‘계산된 악’을 실행할 수 있는가?
그들은 단지 살해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을, 고통을, 죽음을 ‘연출’했다.
나는 그 장면 이후로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해
다시 묻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이건 악 그 자체로 이루어진 시스템이었다.
그를 죽인 건 죄가 아니라, 아버지의 입이었다.
이건 단지 멕시코 어딘가에서만 일어난 잔혹한 사건이 아니다.
그곳에서 죽은 아이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가족이었으며, 단지 ‘지켜보는 눈’이 없었기에 그렇게 죽어갔다.
우리가 그 영상을 외면하는 순간, 세계는 점점 더 잔인해진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같은 인터넷을 쓰고, 같은 SNS를 보고,
같은 플랫폼에서 같은 알고리즘을 소비하며
그들이 유포한 공포를 ‘소비’하고 있다.
알고도 외면하는 것, 그건 더 이상 ‘모르는 자의 죄 없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계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사라진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안전한 외부자’가 아니라, 무력한 공범자로 남게 된다.
그 영상을 본 뒤, 나는 며칠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였다.
‘이런 일이 지금도 존재하는 세계에
무슨 의미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오했고,
동시에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참기 힘들었다.
인간은 이런 걸 “계획”할 수 있는 존재였다.
단지 충동이 아니라, 연출하고, 녹화하고, 편집하고, 유포할 수 있는 존재.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악은 광기가 아니라 전략이었고, 고통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으며, 죽음은 한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 전체의 침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의 일부였다.
그래서 나는 혐오하기로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단지 잔인해서가 아니라, 이런 일을 보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매일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는 그 무감각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니다. 세상은 원래 이랬고, 나는 이제서야 눈을 떴을 뿐이었다.
내가 그 영상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만약 그 영상 속의 소년이 내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면?
혹은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살해당했고, 그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는 걸 내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면?
나는 거의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그들과 싸우는 조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생각하는 순간 깨달았다.
그들은, 바로 그걸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러 남의 가족을 죽이고, 그 장면을 고의적으로 촬영하며, 그 영상이 공유되고 회자되도록 유포하는 이유.
그건 단지 공포를 퍼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 고통을 ‘개인화’시키고, ‘복수의 대상’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세계에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피로 맺은 인연, 공포와 분노로 세뇌된 채 끌려오는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새로운 식구를 만든다.
자발적인 희생자. 자발적인 살인자. 자발적인 공범자.
나는 섬뜩해졌다.
만약 나였다면, 나는 그들에게 완벽하게 먹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년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넌 세상을 파괴해도, 우리가 할 말 없다.”
이것은 면죄부가 아니다.
이것은 기억이다.
그리고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