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에 관하여
한 남자가 신에게 물었다.
“ 안녕하세요 “
“…”
“ 처음 뵙겠습니다, 제법 제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다르시네요. “
“…”
“ 묻겠습니다, 저는 죽었습니까? ”
“ 그렇다. 너는 죽어있다. ”
“ 맞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체입니다. 영혼이 없는 빈 껍데기입니다. 저는 평생 남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
“…”
“ 저는 왜 태어났습니까? 끝없는 업화 때문입니까? 무한에 가까운 희박한 확률과 경우의 수 속에, 저는 왜 태어난 것입니까? 그것에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까? “
“…”
“ 왜 스스로 태어남을 선택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생을 마감해선 안 되는 겁니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 또한, 왜 저는 자유롭지 않습니까? 저는 과거의 업화 때문에, 우연과 우연의 확률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겁니까? “
“…”
“ 저는 죄인입니까? 시지프스라도 되는 겁니까? 세상은 왜 이렇게 부조리한 겁니까? 왜 바위를 계속 굴려야 하는 겁니까?
당신은 왜 우주와 저희를 잉태하신 겁니까? “
“…”
“ 무덤 속에 파묻혀있는 제 친우와, 가족과, 선생과, 인연들은 왜 그렇게 빨리 데려가신 겁니까? 왜 저에게 백가지 고난을 주시고, 하나 남은 사랑을 앗아가는 것입니까? “
“…”
“ 무엇이 저를 이끌고 있습니까? 저는 시체입니다. 살아갈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알던 모든 것들은 거짓이었고, 제가 외면한 모든 것들은 진실이었습니다. 저를, 우리를, 무엇이 이끌고 있는 겁니까? 그저, 그저 다들 무언가에 취해있습니다. 그 취기가 깨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
“ 이건 여정입니까? 성지로 가기 위한 고난입니까? 그 끝에 구원이 있습니까? 다들 잠에서 깨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는 잠에 들어있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잠을 깨우려 하면 다들 측은한 표정으로 깨거나, 도로 잠에 들거나, 잠을 깨운다고 화를 냅니다. 저도 잠에 취해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
“…”
“ 아닙니다, 어쩌면 다 제 망상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도, 잠에서 깬 것도, 모두 하룻밤 지나면 잊혀질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참을 수 없는 기시감은 어떡하면 좋습니까? 저는 이 가려움을 참지 못해, 해답을 찾지 못해 제 살갗을 계속해서 찢어발기고 있습니다. “
“…”
“ 잠에서 깰수록,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살아가던 의미가 하나씩 사라집니다. 저는 지금 잠에서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남아있는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살아가는 의미를 저에게서 다 앗아가셔놓고, 저를 시체로 만들어 버린 당신은 시체인 저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까? 왜 저는 잠에서 깬 겁니까? “
“ …“
“ 압니다. 누군가는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고, 누군가는 사선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받아내고, 정말 행복하길 바라는 가족이 갑자기 사고가 나버리는 것을,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삶을 간절히 염원하고, 기도하고, 내일이 찾아오길 바란다는 것을.
그런데 어떡한단 말입니까? 저는 부끄럽게도, 민망하게도, 수치스럽게도 그들처럼 삶을 염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통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제가 사라지고 그들에게 몸뚱이뿐인 이 시체를 주고 사라지고 싶습니다. 제 친우들이, 제 가족이, 모두가 제가 사라지는 것을 모른다면, 저는 이 시체를 그만 버리고 싶습니다. “
“…”
“ 이 시체는 안락함과 여유 속에 살고 있습니다. 되려 이것은 부끄럽게도, 수치스럽게도 저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경주마처럼 달린 저는 권태와 무망감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경주마로 한번 달리기 시작했다면, 그 삶은 계속 달리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까? 그렇게 달리다가, 관절이 녹고 뼈가 으스러지면 고깃덩이가 되면 되는 겁니까?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고깃덩이는 훈장이라도 되는 겁니까? “
“…”
“ 저를 선택하신 겁니까? 왜 저에게 끝없는 고난과 두려움을 주시는 겁니까? 제가 무엇을,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제가 받은 사명이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이상과 현실은 잔혹하게도 너무나도 다릅니다. 저는 그 간극을 메꾸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기엔 너무나도 지칩니다. 저는 다리를 잃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다리를 내어주실 수 있습니까?
“…”
“ 저는 죽어있습니다. 저는 시체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저는 때로는 당연하게도, 때로는 탐욕스럽게 더 원하면서 누리고 있습니다. 시체인 제가 이럴 자격이 있습니까? 시체는, 시체답게 썩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
“…”
“ 시체, 시체가, 시체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저는 시체입니다, 시체..”
“…”
“ 시체, 시체, 시체, 시체… “
그가 중얼거리는 단어는, 공명하며 울리며 장송곡처럼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