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찬사가 필요한 달
‘Christmas Dream Moments’
백화점 정문에는 어느새 이런 장식 문구가 붙어있다. 그러나 누구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 어서 오기를 재촉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나처럼 더디 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11월, 아직은 눈부시고 황홀하다.
뉴욕에서 잠시 나온 선배와 함께 점심을 하고 옥상정원으로 올라갔다. 하늘이 보이는 정원에는 자작나무 몇 그루가 11월을 맞이하고 있었다. 생채기를 드러낸 얼굴들이 마치 부처의 미소를 닮은 것 같았다. 문득 웅장한 사암의 절벽도 거대한 협곡의 절경도 아닌 작은 몸짓으로 심장을 강타했던 유타주州 산등성이의 자작나무 숲이 떠올랐다. 무리 지어 서서 늦은 계절을 배웅하던 나무들. 그리고 그해 11월의 시간이 풍경 안으로 들어왔다.
그해 11월, 그가 큰 수술을 받았다. 휠체어를 탄 채 희미한 손을 흔들다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라운지, 무슨 말도 아직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지 않음을 알기라도 한 듯 모두 피곤을 눈 감고 있었다. 문득 의자 너머 기도를 올리고 있는 두 눈과 마주쳤다. 그 작은 눈도 나와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수술방의 파란불은 들어오지 않고 낡은 전등만 천정에서 간간이 흔들렸다. 병원 밖은 어느새 새벽어둠을 지나온 정오 햇살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창밖 거리는 힘차고 당당해 보였다.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걸음걸이가 부럽기도 했다. 맞은편 코너에 언젠가 뮤지컬 상자를 샀던 파피루스 가게가 보였다. 진열장에는 온통 세일, 세일이라 붙여 놓았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성탄 선물을 ‘세일 세일’에서 살 수 있듯, 이미 놓쳐버린 시간을 할인판매 하는 곳은 없을까 생각했다.
오후 무렵에야 회복실 방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그의 한쪽 눈은 붕대로 감겨 있고 다른 한쪽 눈은 초점을 읽은 채 회복실로 이동되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저 오렌지 향기 나는 오후 햇살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 아닌 기도만을 되씹고 있었다. 다가올 화려한 12월 그늘 밑에 쓸쓸히 서 있던 11월, 그해 11월은 참 많은 위로가 필요했던 달이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소비와 축제를 부추기는 광고들이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아직 계절을 건너오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버거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어둠을 밝히는 크리스마스트리도 평화를 기도하는 미사 송가도 11월의 서른 밤을 건너지 못하면 당도할 수 없는 축제. 느린 걸음으로 달려오는 작은 것들의 소리를 기다려주는 11월 앞에서는, 잠시 쉬어 가도 좋겠다.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달인 미틈달 11월.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경의를 표하고 싶은 달이다. 잘 버티어온 발걸음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달이다. 11월은 남은 시간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싶은 달이기도 하다. 아껴가며 천천히 쓰고 싶은 달이다.
11월은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 성월’이기도 하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앞서간 영혼을 위로하고 싶은 달이다. 사고와 참사로 가족을 먼저 보낸 이들과 함께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Nimrod)’를 듣고 싶은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