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십 년 프로젝트
팔월도 어느새 끝자락, 그 뜨겁던 여름 볕도 잠 못 이룬 열대야도 곧 그리운 이름이 되어 추억 속에 머물게 될 것이다. 시간은 늘 그렇게 우리 곁을 빠르게 빠져나가 저만큼에서 손짓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면 해놓은 일 하나 없이 떠밀려간다는 생각에 가끔은 우울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상을 뛰쳐나와 공원에서 호흡을 가다듬곤 한다.
얼마 전에는 큰마음먹고 올림픽공원을 걸어보기도 했다. 올림픽공원의 9경인 세계평화의 문, 엄지손가락과 대화 조각 작품. 88 호수와 들꽃마루를 지나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 홀로 나무까지. 문득 이 공원도 하늘이 내게 준 큰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은 내게 참 많은 것을 선물했다. 특히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해외에서 살던 시절, 사는 일이 버거워지면 무작정 공원으로 나갔다. 런던의 하이드파크(Hyde Park), 시드니의 센테니얼파크(Centennial Park)도 사랑했지만 아무래도 뉴욕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를 가장 많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800 에이커가 넘는 거대한 규모의 센트럴 파크. 호수와 연못은 물론 아이스 링크와 동물원, 레스토랑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예술 프로젝트는 물론, 여름에는 뉴욕 필하모닉 공연과 메트 오페라 공연이 그리고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까지 언제나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딱히 그런 행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사시사철 다른 풍광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공원에 나가 하늘과 바람과 나무에게 주저리주저리 내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를 섭섭하게 한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하기도 하고, 보고 싶은 친구를 향해서는 조용히 이름을 불러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공원은 늘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산책로를 몇 바퀴 돌고 나면, 미움은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그리움만 고요히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 공원은 그렇게 때로는 푸르름으로 때로는 벌거벗은 채로 생활에 찌든 영혼을 위로해 주던 곳이었다.
어느 날 공원의 허리께를 걸어보고 있었다. 세일러복을 입은 아이들이 팔월의 태양이 흘러가는 호수에 모형 세일링 보트를 리모컨으로 조종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대야에 물을 채우고 종이배를 띄우고 놀던 추억이 생각났다. 대도시에 나가본 적 없었지만, 작은 대야 속에서 하늘을 바다 삼아 대륙을 맘껏 떠돌았다. 더 넓은 세상이 어딘가에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었다. 막연한 동경, 그것이 그 시절에는 유일한 꿈이기도 했다.
저 아이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걸까? 미래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세계 일주를 꿈꾸고 있을까?
‘얘들아! 바람을 잘 타야 바다를 건널 수 있어. 바람이 없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거야.' 아이들이 조종하는 보트에 괜한 참견을 해보았다. 세상을 건너가려면 드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도 배워야 할 것이다. 아직은 실패를 모르는 나이, 아니 실패해도 좋은 나이. 참 좋은 시절이다. 보트가 바람에 잡힐 때마다 어-어-하는 아이들 걱정이 뜨거운 하늘을 건너가고 있었다.
나만의 소박한 10년짜리 프로젝트를 세워 틈나면 나가서 즐겼던 센트럴 파크.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를 찾아 걸어보기, 센트럴 파크에서 아침 먹기, 가을날 단풍놀이하기, 여름 공연 보기, 아이스 링크에서 코코아 마시기. 이제는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림들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특색 있는 공원이 많다. 잠실 한강공원, 올림픽 공원, 아시아 공원, 오금공원, 그리고 동네 작은 근린공원들. 계절마다 다른 그들만의 매력을 찾아 걸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국에서도 다시 10년짜리 공원 걷기 프로젝트를 세워봐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팔월이면 언제나 뉴욕의 센트럴 파크 호수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