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린 Aug 07. 2023

고래, 개망초꽃

이야기의 힘

 

 아침형인 나는 저녁 시간이 되면 에너지도 딸리고 집중도 잘되지 않는 편이다. 할 일 없이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얼마 전 <고래>가 나의 저녁 시간을 탱탱하게 잡아주었다. 사실 <고래>를 쓴 천명관 작가는 내게 조금 생소한 작가였으며 소설책도 우연히 독서 모임에서 웰컴 키트로 신청한 책 중 하나였다.      


 소설 <고래>는 이미 2004년에 출간되어 58쇄에 이르렀고,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세대에 걸친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보다는 배경적 묘사와 작가의 독특한 유머가 탄탄한 집필력과 함께 잘 엮어진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마치 라틴아메리카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현실을 마술 같은 상상력과 결합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칠고 힘든 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건 사실인가 허구인가, 꿈인가 현실인가 아니면 착각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촘촘하게 엮어 단숨에 읽어버리게 만들었다.   

   


 1부 부두는,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가, 방화범으로 형을 살다 27세에 석방되어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춘희 엄마인 금복의 성장배경과 춘희의 출산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뚱뚱하고 말을 못 하는 춘희. 그녀의 기구한 현실은 어쩌면 첫날 소박을 맞고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가던 노파의 저주 혹은 복수극일지도 모른다. 춘희는 몇 날을 걸쳐 기억에만 의지하며 폐허가 되어버린 옛 벽돌공장을 찾아간다. 


 2부 평대는, 홀아버지와 산골 마을에서 좀 더 큰 바다가 있는 마을로 도망쳐 나온 금복의 파란만장한 생을 담고 있다. 모녀의 평대마을로의 입성, 국밥집 성공, 금복의 남성 편력과 스캔들, 고래 모양의 극장 개관과 대화재에 관한 내용이다. 동생을 낳다 죽은 엄마를 본 후 금복을 지배해 온 것은 죽음의 공포다. 그래서 인생의 절대 목표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 후 바다마을에서 물을 뿜은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금복은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다. 결국 두려움 많은 산골 소녀는 고래의 거대함에 매료되어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다.      


 3부 공장은, 감옥에서 석방되어 벽돌공장으로 돌아온 춘희의 삶에 관한 내용이다. 춘희는 13세 때 이미 100kg을 넘었고 점차 커지는 육체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괴물로 취급당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도 전혀 받지 못했으며 단지 점보라는 코끼리와만 소통하며 지냈다. 혼자 공장으로 돌아온 춘희는 마치 벽돌 굽는 일이 삶의 목표라도 되는 듯 혼자 온 힘을 다해 벽돌을 굽는다. 

 그녀가 죽은 지 20년이 지나서야 한 건축가가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대극장을 짓기 위해 벽돌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구워낸 붉은 벽돌을 찾아낸다. 죽은 이후에야 대극장의 벽돌을 구워낸 주인공으로 이름을 전한 춘희, 건축가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2부 금복의 서사도 파란만장했지만, 3부 춘희의 마지막 생에 대한 묘사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와 생이라는 초라한 현실이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았다. 춘희는 보통 사람과 다르기에 고독했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 결국 세상에 벽돌을 남겼을 뿐이며 벽돌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림을 남겼을 뿐이다. 

 평생 말을 하지 못했던 그녀가 벽돌에 남겼던 그림들은 어쩌면 그녀가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그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생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인정받지 못했던 춘희는 보통 사람처럼 평등하게 대해지지 않았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춘희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불평등과 무관심과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소설을 읽었지만 나는 아직 이 질문들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을 때, 심사위원회는 <고래>가 ‘사악한 유머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했다. <고래>에 대해 ‘카니발레스크(Carnivalesque: 전통적인 문학을 유머와 무질서로 전복시키는 양식)’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변사처럼 풀어내는 작가의 소설형식은 이미 기존의 소설을 거부한 ‘책의 폭동’이라고 평가받았으니 결과가 기대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고래>는 수상작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기존의 소설형식을 거부하고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나를 홀린 이 소설은 신선한 자극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주변에 무수히 피어있는 개망초꽃을 볼 때마다, 춘희와 같은 감방에 있던 여죄수의 말과 춘희의 유일한 친구였던 점보의 말을 생각해 본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죽음이란 별것이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     

 ‘우리는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사는 일과 죽는 일은 이런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수다가 그리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