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벚꽃을 찍었다
올해는 벚꽃 개화가 조금 늦었다. 벚꽃축제를 준비하는 지자체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내가 사는 송파의 명실상부한 호수벚꽃축제는 지난 일요일에 벌써 끝을 맺었다. 벚꽃 없이 사람도 별로 없이...
작년에는 축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벚꽃이 지는 바람에 큰 낭패를 보았는데 올해는 벚꽃 없이 축제를 올렸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 우리가 큰 잘못을 했다는 반성 등이 들려왔다. 꽃을 피우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요 하늘의 뜻임을 올해도 실감했다.
어제는 월요일이었지만 왠지 일요일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일요일에 근무를 해서일까?
날씨는 화창하고 왠지 모를 불안과 무료함에 생각만 이리저리 굴러갔다. 집 앞에서 긴 노선버스를 타고 2-3시간 한 바퀴 돌고 올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휙 남한산성에 올라볼까? 그러나 시간이 참 어중간했다. 그냥 볕이 좋아 발길 닿는 대로 집을 나왔다. 동네 장지천길 벚꽃이 석촌호수벚꽃보다 더 보기 좋고 풍성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장지천벚꽃길로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봄꽃 구경하러 나와있었다. 여기는 지금이 한창인 듯싶었다.
옅은 핑크빛 꽃나무 아래 누군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녀는 춤을 추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마치 벚꽃이 배경이고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주인공 같은 사진.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춤을 추며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잠시 쉬는 사이, 말을 걸었다.
'지금 오디션 영상 찍어요?' '네. 틱톡에 올릴 거예요.'
'아 그래요? 춤 예쁘게 추네요.' ' 아 감사합니다.'
'집이 여기예요?' '아니요. 여의도예요.'
'근데 여기까지?' '거긴 아직 벚꽃이.... 그리고 아는 사람 없는 데서 찍으려고요...'
'응원할게요. 잘 되세요!' 두 손으로 파이팅을 보냈다.
발길을 돌리다 다시 가서 물었다. '근데 몇 살?' 틴에이저는 아니었다.
어려 보이는 모습과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는 순진한 모습이 벚꽃보다 싱그러웠다.
이전 같으면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한데 내가 요즘 모임에서 안무를 배우는 중이라 춤추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사는 일은 그렇다. 관심 있게 애정을 가지면 눈에 보이고 감동도 다가오는 것. 나와는 무관하다 생각하고 외면하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이 내게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은 오늘도 흘러가고 나는 그런 세상을 조금 다르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소녀는 벚꽃 같은 춤을 추고 나는 말을 걸었던 장지천의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