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말의 의미
미국에서 살려면 유능한 변호사와 치밀한 회계사와 신뢰 가는 의사를 알아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아프지 않고 돈을 벌려면 이들의 현명한 안내와 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세 번의 자잘한 교통사고, 열 번의 주차위반 딱지, 두 번의 인스펙션 문제 등 숱한 사건이 많았다. 때로는 영어가 서툴러서, 때로는 서두르는 바람에 주황색 슬립을 잘 읽어보지 못한 불찰의 결과였다. 벌금을 낼 때마다 외국에서 사는 인생 수업료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사건 사고보다는 사람관계가 더 힘들었지 싶다. 종업원들은 대부분 중국계였다.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주부, 유학생-이 있었으나 이제는 네일 일에서 몸을 뺀 지 오래다.
언어가 다른 이들과 주인과 종업원이라는 관계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가 아는 중국어는 겨우 '콰이 콰이(빨리빨리)', '츠 판 러(점심 먹었니?)' 같은 일하는데 꼭 필요한 몇 마디뿐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영어도 손님에게 서비스하는 정도로 극히 제한적이었다. 우리는 언어로 소통되지 않는 것은 한자를 써가며 전달하기도 하고 그도 통하지 않으면 신체언어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답답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일은 말도 없이 일을 나오지 않거나 기술자가 되고 난 후 다른 샵으로 가버리는 일이었다. 기술이 없는 우리가 대신 서비스를 할 수도 없고 속수무책이었다. 직원모집과 인터뷰 그리고 임금 결정까지 적당한 사람을 구하려면 시간적 여유도 필요했다. 어쩌면 종업원이 그만둘 때가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돌아보면 처음 샵을 열었을 때 마치 주인을 골탕 먹이려는 듯 작정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심성이 착하고 순진했다. 제니, 크리스티나, 린다, 루시, 앤, 샤론, 제임스, 제이슨, 데이비드......
수많은 종업원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처음 올 때는 서먹서먹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져 갔다.
팁을 많이 주는 손님을 채가려고 나서지도 않았고, 단골손님 이외에는 손 빈 사람이 손님을 맞게 되어있는 룰을 어기지도 않았다. 며칠씩 샵을 비우고 여행을 다녀와도 매출 정산은 언제나 정확했다.
그들이 보기에 '기술이 없는 주인이 오롯이 종업원에 의지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참 고생한다는 생각, 그러니 자신들이 잘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착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하면서 믿고 의지했다.
특히 크리스티나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함께 한 동료다. 중국계 미국시민권자라 우리와는 영어로 다른 종업원들과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십 대 후반에 결혼해서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종업원과 손님이 마찰이 생길 때도 중간에서 상대방을 서로 이해시켜 주는 일, 영업과 관련한 문제가 생겼을 때도 관리감독관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등 종업원이라는 위치를 떠나 우리에게는 든든한 동지 같은 아이였다.
아직까지도 가끔 소식을 주고받는 코니는 필리핀계다. 그녀는 "나이만 많이 먹었지 기술자는 못 되니 초급으로 일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래도 붙임성은 있어 코니를 찾는 손님도 점점 많아졌다. 종업원들은 우리를 "오빠", "언니"라고 불렀는데 특히 코니는 늘 살갑게 오빠, 언니를 불러주었다. 함께 나이 먹어가던 코니. 주말이면 내 손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해 주기도 하고 청순하게 보이는 프렌치를 해주기도 했다. 돋보기를 쓰고 매니큐어를 하던 모습, 지금도 일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과 마음으로 함께 했던 그 순간만큼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