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의 연등
코로나로 한참 힘겨운 고국에 비해 뉴욕은 조용하기만 했다. 평화로운 고요함이 아니라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었다. 고국은 방역시스템이 자리 잡히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로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듯 보였다. 반면 뉴욕은 정부의 통계조차 없어 서로를 의심하며 이방인 대하듯 피해 다녔다. 오다가다 만나면 누구에게나 “굿 모닝!”, “하이!” 하던 이웃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원을 갈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서로 눈을 피했다. 불과 한두 달 사이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낯설고 이상한 나라에 와있다는 느낌, 불안과 두려움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어머니를 뵙기 위해 전부터 비행기표를 구매해 두긴 했으나 떠나기로 예정된 일정이 다가오면서 고국의 판세는 첩첩산중이 되어갔다. 그즈음 코로나 유무와는 관계없이 귀국하면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지침이 내려졌다. 도리가 없었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각오하고서라도 고국에 가야 하는 나는 마음을 단단히 매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위에서는 상황을 조금 지켜보다가 떠나라고 만류했지만, 왠지 어서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뉴욕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맨해튼 상점들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고 관광객은 물론 비행기들도 운항 횟수를 줄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완전히 갇힌 신세, 서둘러 뉴욕을 떠나기로 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다본 뉴욕은 침묵 그 자체였다. 침묵이 주는 불안함. 세계 금융과 유행을 선도하던 도시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무심한 바람만 불어대던 사막 같던 뉴욕 케네디 공항, 사람도 비행기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국적기만 대견스럽게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운 고국! 어쩌면 다시는 미국 땅을 밟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날을 알 수 없을 때는 목표를 멀리 두지 않기로 했다. 그저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만 기도했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날개를 내렸다. 검역확인증을 받아 입국 심사를 마친 후에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국의 공항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공항에서 주선해 준 택시를 타고 양재역쯤에 이르니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고 있었다. 왠지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다. 식당과 커피숍에도 많은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삭막한 뉴욕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었다. 아! 여기는 고국. 반갑고 가슴이 뛰었다.
자가격리 일주일이 지났다. 발이 묶이고 지정된 공간에 갇혀 있는 현실은 물리적 불편보다는 심리적 불안을 더 키웠다.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는 다시 폐쇄공포증에 휩싸이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그래도 이 기간을 잘 견디어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아주 낯선 일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창밖 석촌호수에는 어느새 벚꽃이 만개하고 있었지만 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종일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코로나 뉴스, 잡히지 않는 사월의 하늘, 걸을 수 없는 벚꽃길, 우울만 덩그렇게 앉아 있는 놀이동산의 기구들. 모든 것이 사월을 울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매일 숫자로 주검을 말하고, 매장할 곳이 없어 시신이 방치되고 있는 뉴욕 하트섬을 생각하면 발이 묶여도 고국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자가격리 2주를 보냈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석촌호수로 달려 나갔다. 날아갈 것 같았다. 지상에 두 발을 딛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눈물 나도록 감격스러웠다.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호수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표정만은 밝아 보였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껏 살아온 이전의 생활방식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만, 이만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고국이 자랑스러웠다.
돌아보면, 사는 일은 기다림이고 또 기다림이었다. 비즈니스가 자리 잡히기를, 영주권을 무사히 받을 수 있기를, 만 불을 저축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이륙과 착륙의 아스라한 기억 속의 사월. 카뮈의 ‘페스트’와 생떽쥐베르의 ‘어린 왕자’를 읽으며, 단절된 사회와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되짚어 보았던 닫힌 공간 속의 사월. 계절은 우리를 잔인하게 내쳤어도 결국은 꽃을 피웠던 사월. 저마다의 기원과 기도를 담은 꽃등이 마치 붉은 감처럼 열렸던 사진 속 송광사까지. 우울과 위로의 사월 풍경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진/부처님 오신 날을 맞은 순천 송광사 마당(조선일보, 김영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