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자연에서 배우는 인생수업
시골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던 그해 봄
남편은 기간제 교사로 다시 출근하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자신의 모교이기도 하니 발걸음도
가볍게 출근하게 되었다.
.
그는 퇴직하기 이전의 삶으로 이어졌지만
시골에서의 나는 하루 종일 홀로 집에
남아 있게 되었다.
마음에 고독과 외로움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했다.
더군다나 15년 함께 살았던 애완견
'베이'가 그해 3월 어느 날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외로움과 슬픔 그리움은
눈물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려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가슴이 아리고 아파 왔다.
짠하고 불쌍하다 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베이는 반려견이 아닌 가족이었다.
배 부분(유방)과, 오른쪽 다리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던 베이는 자궁이 비대해지고 염증으로 인해 2차 수술을 받았다.
그 후 3년을 더 하여, 15년을 나랑 살았다.
그런 베이가 내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노환으로 이별했다.
(동물병원 진료받으러 갔는데 그냥 편히
보내라고 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슬퍼해야 했을까?
꼭 그래야 만 했을까?
그러나 나는 슬픔을 참아내지 못하고
홀로 울었다. 아니, 삭혀 내지 못했다
이해하여 주니 못하는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베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짠한 마음에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렀다.
나의 친구이자 딸 같은 베이의 죽음이
나로 슬픔을 견디지 못하게 했다.
아들 세 녀석이 대학진학 하고 둥지를
떠날 때처럼, 군 입대할 때처럼,
그렇게 울었다.
그때 그 어릴 때의 아들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마음에 짠하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모두가 다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는 자식들
인데 그때 그 어릴 적 아들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애완견 베이를 그렇게 그리워하며 못 잊어
하고 있다.
베이(반려견>를 떠나보내고 2개월 후
5월 어느 날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한라산 중턱 산책 길 데크 위를
일행과 함께 걸었다.
" 까악~까악~ "
" 어머 ~! 웬 까마귀야 ~!"
길들여진 까마귀들은 먹이를 얻어
먹을 결심으로 산행길 사람 주위를
뱅뱅 돌고 있다.
하지만 까만 털에 주둥이와 이마에 하얀
털을 입고 있던 베이가 생각났다.
무엇을 봐도 즐겁지 않고 애잔한 마음은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날 저녁 호텔 숙소에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나 홀로 소리 내어 울었다.
남편은 일행들과 함께 밖에 나가 있었다.
" 내가 이래도 되는 거야?"
순간 나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지금 뭔가 잘못되었다"
"울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게
울었었나?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니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모님 모시고 4년을 살았다.
그때도 이렇게 슬피 울었나?
어머님은 연세에 비해 빠른 노환이
찾아왔다. 돌아가실 때의 어머니 모습은
참 평안해 보였다. 도란도란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었다.
시누이와 삼 형제 손아래 동서가 그리고
나와 함께 어머니 머리맡에 앉자
어머니 얼굴을 마주 보며 어머니의
임종을 자식들과 함께 지켜드렸다.
" 네가 이렇게 잘해줄 줄 몰랐다."
" 흐칸(하얀) 옷 입은 사람이 데리러 온다"
어머니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찬송가를 불러드렸다.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은 천국으로 화하도다'
시모님은 곱고 고운 모습으로 운명하셨다.
모두가 이별의 아쉬움으로 슬프게
울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임종하셨는데 그 임종을 지켜 드리지 못해
마음 아파 마음깊이 통곡하였다.
세월이 약 이라더니 슬픔도 잊혀 갔다
아~!
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이러면 안 되지
사람의 도리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양심이 나를 훈계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정신을 차려야 해. 자칫하면 우울증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 수 있어, "
"그만 일어나야 해
한 마리의 강아지일 뿐이야!"
지금 나의 슬픔과 고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마침 큰아들이 보내온 제페란 테스를
화단에 옮겨 심었다.
논에 묘목으로 심었던 철쭉을 캐어내
마당가로 옮겨 심었다.
남편이 꽃을 구해다 주면 열심히 꽃을
심기 시작했다. 이제 정원을 가꾸며
고독이 즐거움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바꿔지기 시작했다.
자연과의 교감은 나로 희망을 꿈꾸게 하고
마음의 평화를 불러오게 하였다.
자연이 내게 주는 기쁨
꽃이 피어 나는 모습을 보면
꽃들이 나를 보고 웃어 주는 것 같다.
나의 시선이 꽃에 닿을 때 그 충만함을
어찌 표현할까?
'내가 계획을 세우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아니하면 이룰 수 없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잠언 16:1>
꽃과 함께 감사의 마음이 매일매일
진행되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