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허전한 마음 / 반짝이는 순간들

by 시미황


2014년 2월의 마지막

당일 아침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고

햇빛은 뿌연 하다

4차선 아스팔트 길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 낀 아침처럼 마음도 덩달아 답답하다.

나의 감성은 갈길을 잃어버린 철새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 여보 ~! 짙은 안개로 앞이 희미하니

운전하기 힘들겠어요"


앞차의 깜빡이도 보이지 않는다.

승용차들은 속도를 줄이며 서행하고 있다.

38년 몸 담고 있었던 교단을 떠나는

마지막 .

우리는 광양에서 목포 도교육청 회의실, 정년퇴직자들의 기념식장으로 가는 길이다

기분이 묘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운전하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마음 어때요?"


" 괜찮아요 "


"여보 ~ 그런데 난

마음이 좀 이상 야릇해요.

텅 빈 마음, 마음이 먹먹하고 뭔가 나의

소망을 차단시키고 기쁨을 소멸케 하는

이 기분은 뭘까.?!

퇴직은 당신이 하는 건데

말이에요"


" 이 마음 뭐지?"


외로움도 아니고 쓸쓸함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닌 마음, 자꾸 갈길을 잃어버린

철새 같다.



마음이 가라앉은 이유...


독백을 하듯 중얼거리는

나를 향하여

남편의 대답이 이어졌다.


" 음...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요.

아마 교직에 30여 년 이상을 몸담고 있다가 이젠 교단을 떠난다는 허전함 때문에

그럴 거예요"



우리 가족 스토리가 차창밖의 풍경과 함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여보 ~!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왔네요."


" 수고하셨어요 "


" 고마워요 "

공립에서 제철사립 초등학교로 옮긴 까닭?


삼 형제가 중1, 초5, 초 3년이

되었다. 아이들의 진학 문제로

고민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때 마침 사립학교 제단인 포항, 제철 교사채용

공고가 떴다. 채용고시 공고를 본 남편은

먼저 광양제철 초등학교를 방문해 보자고

하였다.


90년대 광양제철 단지는 제철소와 더불어

개발단계였지만, 학교와 이파트와 주택은

왠지 유럽에 있는 어느 마을 풍경을 연상케

하는 듯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지붕은 빨간 기와에 아파트가 아닌

연립주택 형식이었다.


광양제철소에 주택단지는 산을 옮겨 바다를 메꾸어 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곳은 지반이 약해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주위에 형성된 조경과 계획된

정원은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무를 이식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잔디며 나무들이 풍성해 보이진

않았지만 머지않아 숲이 될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시골학교에서 근무할 때 집(사택)이 없어

고생했던 때를 생각하니 완전 신세계란

생각이 들었다.

유럽 어느 마을로 여행 온 느낌이 들었다




" 와~ 이런 곳도 있구나

완전 신세계야 ~! "


당시 고) 박태준포항 광양제철회장님께서 학교제단 이사장님이셨다.

초등학교도 금당, 금호 두 곳이 있었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아트홀이 있고

학교시설 또한 생애 보지 못했던 건물

이었다. 이렇게 건물이 좋은 학교는 처음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이곳으로 이사 와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여보! 만약에 공립에서 이곳 사립으로 옮기게

되면 승진은요?"


그가 말을 받는다.


"아이들을 위하고 우리 부부의

삶을 위해서는 승진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 생각해 봐요~

내가 공립에서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벽지점수를 쌓아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해요. "


"게다가 아이들의 교육문제도 생각해 봐요.

초등학교 교사 봉급으로는 아이들 셋

대학까지 보내려면 빠듯해요."


남편은 계속 조목조목 조곤조곤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 만약 이곳으로 (사립제철재단) 옮긴다면

아이들 대학까지 학자금 문제가 해결돼요.

제철장학재단에서 지원받게 되고

교직 제철수당도 있게 돼요."


남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 나는 승진의 미련을 놓겠어요

그리고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온 마음을 기울일 거요."


남편의 뜻이 숭고하게 다가오며 내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다.


" 아 그렇구나!

자신의 명예와 승진 직위에 대한 꿈을

내려놓고 가정을 택하는구나!"



광양제철 초등학교를 지원하다.


남편은 공고채용, 면접을 보고 합격하였다.

당시 포항제철 초등학교 근무를 권유

받았지만 고향이 가까운 광양제철

초등학교를 지원하여 근무하게 되었다.


" 여보 고마워요.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의 그런 결단이 없었다면

아들 삼 형제를 어떻게 키워

냈을까요?"



"자식의 은혜를 알게 되다."

.

이제 생각하니 큰애가 동생

들에게 은혜를 끼쳤네요.

셋째가 큰형 덕을 봤어요."


" 맞아요. 큰 녀석이 제철 장학금 받고

법인 지원금은 셋째에게 넘겨줘서

우리가 힘들지 않았어요."

자식의 은혜를 알게 되니 참 기특하고

행복하단 생각이 마음으로 가득 내려왔다


" 대학 장학금 받고 , 제철장학금 받으니

법인 지원금은 셋째의 몫으로 남게 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지요"


큰애는 당시 모의 수능 시험에서 점수 99.8 전국 3위를 기록했다


" 너 의대 가면 어떻겠니?"


씨알도 안 먹히는 아들..


"너 고생할 건데 "


" 그러니까 한번 해보고 싶어요."

결국..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코스를 마치고 훗날 싱가포르 난양대학 이공계 연구원으로 공부하면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둘째는 고대수학 교육과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싫어서 콘텐츠 기획 회사에서 근무한다.


셋째는 순천향대를 나와 물리교사 자격증

기계공고 교사자격증이 소지하였으나

현재 학원원장으로 일하며 , 투잡으로

학생들 경제교육 출장 강의를 하고 있다.



잠시 추억을 더듬어 보면

빛나고 행복했던 추억이 소환되어

반짝임으로 찾아온다.



감사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빛처럼 스며든다.

아침안개 걷히듯 답답하던 마음이 환해진다. 새롬, 새날에 맡겨 보기로 하다.



남편은 2014년 2월 28일

목포 전남 도교육청 회의실에서 있었던 퇴직교원 훈장전수식에서 녹조근조 훈장을 수여받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퇴직 이후 기간제 교사로 3년을 더 근무하게

되면서 이 기간 동안 내 마음을 추스르며

남편의 퇴직을 머리에서 마음으로 받아

들이며 퇴직자의 아내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마음이 힘들 때 말씀으로 위로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잠언 1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