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나라 63. 서역

63. 서역

by 정완기

63. 서역(西域) (634)


당의 서남 변에선 전운(戰雲)이 감돌기 시작했다.

양신은 에몬과 더불어 서역 행정 준비를 마쳤다. 영지를 비롯해 구려촌 도장 출신 중 검술 실력이 가장 뛰어난 여구(余坵), 선수만(扇修万)을 동행을 시키고 말 10여필에 식량과 천막을 싣고 떠났다.

화살 생산은 이미 착수를 했으나 판매처를 서둘러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마침 당이 토욕혼 공략에 나서자 그쪽의 전쟁터를 둘러볼 필요성에 에몬이 길 안내를 맡기었다.

당의 국도에서 서역의 입구인 돈황(敦煌)까진 7천 여리나 되었다. 난주(蘭州)까진 평탄한 길이나 무위(武威)부턴 달라졌다. 남쪽에 기련산맥을 끼고 주천(酒泉)까진 험로만 계속 이어졌다.

일행은 길을 떠난 지 1달 만에 주천에 당도했다. 그곳엔 당의 대병력이 집결 중이었다. 분위기가 살벌하고 어수선해서 그곳에선 하룻밤도 묵지를 않고 지나치려고 야간 행군을 계속했다.

안서(安西)에 당도하자 거기엔 더 많은 군인들로 뒤덮여졌다. 그런데 군인들은 당으로 들어갈 서역의 대상들을 막았다. 위험한 전쟁터라는 이유를 댔지만 돈을 받으면 통과를 시켰다.

"대인, 이젠 돈황 쪽으로 나가게 됩니다. 거긴 서역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거기서부턴 목적지에 따라 남북으로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돈황까진 며칠이나 걸리게 되오?"

"닷새 가량쯤 잡으면 충분할 걸로 생각합니다."

"에몬님은 혹시 돈황에 있다는 을내아란 사람을 아시오?"

"을내아는 지금 그곳에 없고 하미에 있는 걸로 압니다."

"그 자는 당나라의 군인이 되었다는데 어떤 직책을 맡고 있소?"

"전엔 오위직에 있었으나 지금은 무뢰배 두목일 뿐입니다."

에몬은 그런 대답을 하고 을내아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을내아는 처음에 대상들을 괴롭히는 도적떼를 퇴치한다는 명분을 세워 부랑자들을 모았다. 그런 뒤 당과 서돌궐의 지원을 얻어 무리를 키웠다. 그런 뒤 하미국(合密國)에 근거지를 두고 대상들을 상대로 통행세를 뜯었다. 응하지 않을 경우 해코지를 일삼아 악당으로 소문이 났다.

"양신님은 그 자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 자는 동돌궐의 백호장으로 당의 뇌물을 먹고 조국을 배반해 멸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소. 하미국은 어떤 나라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악당을 용납하다간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르겠군!"

"하미국은 처음엔 서돌궐에 예속되었으나 서돌궐이 내홍과 분열 상태에 빠져들자 당에 붙었는데 을내아한테 휘둘리고 있는 처지입니다."

에몬은 그런 대답을 하고 서돌궐의 사정을 더 들려주었다.

서돌궐의 동아설(同娥設) 가한은 동돌궐의 멸망으로 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을내아는 당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서돌궐을 무시하듯 투르판 진출을 꾀하고 있었다.

양신은 언제고 을내아를 꼭 손볼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을 후원해 줬던 흑발에게 독이 든 술을 먹여 살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돈황으로 향하는 길은 삭막하고 이질적인 풍광만 계속되었다. 갈색의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져 죽음의 땅과 같았다. 어쩌다 황토물이 고인 데를 만나면 쉬면서 말들에게 목을 축이게 했다.

안서를 떠난 지 이레 만에 돈황에 당도했다. 황금빛 모레 언덕을 이룬 언덕 밑자락에 보기 드물게 큰 오아시스가 있었다. 반달형의 호수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지고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풍광(風光)이라 모두는 감탄을 자내고 말았다.

"이런 별천지가 있을 줄이야!"

"이제야 살 것만 같네!"

일행은 객줏집으로 들어가서 여장을 풀었다. 모두는 오래간만에 고기와 술을 푸짐하게 사 포식을 했다. 양신은 모처럼 여독을 풀 수가 있는 밤이 오자 에몬과 따로 앉아 얘기를 나눴다.

"에몬님, 서역에 가게 되면 나에 대한 호칭을 바꿔 주시오."

"대인, 어떻게 말씀입니까?"

"나는 서역 땅에서 말갈국의 대장군으로 행세를 하겠소."

어느덧 40대 중반인 양신은 행동거지엔 위엄이 있었다.

"예, 대장군님으로 받들겠습니다."

"에몬님은 나의 대장군 행세에 어떻게 설명을 하겠소?"

"대장군님은 서역에선 잘 알려져 설명을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내가 서역에 잘 알려졌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서역 땅에선 대장군님이 이미 영웅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영웅으로 알려졌다는 말이요?"

"고수 전쟁 때문입니다."

에몬은 그런 대답과 함께 설명을 덧붙였다.

수국이 백만 대병을 동원해서 고구려를 침공했던 어마어마 한 전역(戰役)은 서역에서도 이만저만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 전쟁에서 가장 큰 활약을 했던 사람 중 양신은 첫 번째로 손꼽혔다. 그리고 양신에 관한 얘기도 상세하게 전해졌다. 즉 고구려의 젊은 장수로 큰 무공을 여러 번 세운 일, 국왕한테 빼앗긴 아내를 되찾아 수국으로 망명한 일, 수양제의 진지를 습격해서 종마 42 필을 탈취해 동돌궐에 되돌려 준 사건 등등은 지금도 큰 일화로 회자되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요?"

"그렇지 않아도 대장군님이 가시면 영웅 대접을 받으실 겁니다."

양신은 그 말을 듣고 내심 앞으로의 일이 잘 풀리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더는 소문지 나지 않기를 바라오. 그 점을 감안해주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타클라마칸의 사막 길은 피해서 가렵니다. "

"타클라마칸 사막은 어떤 곳이요?"

"큰 사막으로 동서가 1천5백 리 남북은 1천여 리나 됩니다."

에몬은 그렇게 입을 뗀 뒤 그곳에 관한 설명을 했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남쪽에 곤륜산맥(崑崙山脈), 북쪽은 천산산맥(天山山脈)에 둘러싸였다. 사막의 주변엔 여러 소국(小國)들이 있었다. 소국들은 영토가 수백 리 안팎에 백성들도 1만 명이 못되었다. 사람들은 큰 산맥의 밑자락인 좁은 땅에서 농사와 목축을 병행했고 중계 교역도 해서 나라들마다 튼튼한 재정을 꾸리고 있었다.

"사막 변두리에서 어떻게 농사와 목축이 가능할 수가 있소?"

"산맥에 쌓인 눈이 녹은 물로 관계시설을 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에몬님의 나라인 히바국은 거기서 얼마를 더 가야만 하오?"

"타클라마칸을 한참을 더 가야 소그디아 땅이 나옵니다."

"소그드인은 예로부터 동서 교역을 주도해 왔고 동서 교역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걸로 아는데 젤 중요시하는 물화는 어떤 것이요?"

"시기마다 다르나 고가의 물화를 주로 취급을 해서 이익을 냅니다."

"서돌궐은 크고 강한 나라인데 소국들을 괴롭히려고 들진 않소?"

에몬은 그에 대한 설명도 했다.

소그드인은 성(城)을 단위로 6개 소국들이 병립하고 있었다. 국력이 약해 사산제국과 서돌궐에 복속했지만 형식상이고 엄연한 주권국이었다.

"타클라마칸의 소국들은 소그드 상인들을 크게 의지를 해서 속국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그만큼 양쪽의 유대감은 매우 깊고 큽니다."

"타클라마칸의 여러 소국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소."

"오아시스에선 많은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서를 오가는 대상들에겐 필요불가결의 존재입니다. 대국들은 교역의 중간 거점인 소국들을 정복해봤자 별로 얻는 것도 없으므로 도리어 보호를 해줍니다."

어디쯤서 하늘로 치솟은 천산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산맥의 북쪽은 서돌궐의 영역으로 드넓은 초원과 사막이 뒤섞인 땅이었다. 양신은 전에 동돌궐 상단에 몸을 담았을 때 여러 번 다녀봐서 풍광이 낯설지 않았다.

"동아설 칸은 근래 국도를 우르가이에서 키타이로 옮겼습니다."

"서돌궐은 왜 국도를 옮겼는지 알고 싶소?"

"당이 서쪽으로 팽창을 하려는 조짐이 날로 커져 그런 것 같습니다."

"서역 땅엔 서돌궐 말고 당과 맞먹을 만큼 큰 나라는 더 없소?"

"남쪽엔 사산제국이 있고, 거사 더 먼 서쪽엔 비잔티움이란 나라가 있는데 전에는 두 나라 간에 전쟁이 퍽 잦았고 오랜 세월을 끌었습니다."

"당도 요즘은 주변국에 대한 정복이 잦은데 그 두 나라도 그렇소?"

"서역에선 대국이라고 해서 소국들을 함부로 하지는 않습니다."

"함부로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이요?"

"소국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간에 협조가 잘 이뤄집니다. 함부로 정복을 했다간 고립을 면치 못하게 되어 대신 조공을 바치게 합니다."

"대국들은 조공품을 주로 어떤 것으로 요구를 하오?"

"사산제국과 서돌궐은 복속국들에게 돈으로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1년에 바칠 액수도 정해져 있고 주로 소그드 화폐로 요구를 합니다. 소그드 화폐가 어디서나 통용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양신은 당에서도 소그드 화폐가 통용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서돌궐은 동돌궐이 없어진 뒤 교역조차 여의치 않아 자국 영토를 통과하는 대상들에게 과한 통행세를 거둬서 그쪽 길을 피하게 됩니다."

"서돌궐 백성들은 동돌궐처럼 주로 유목 생활을 하고 있소?"

"유목과 농사가 반반입니다. 천산산맥에서 눈이 녹아 흐르는 물로 농사를 짓습니다. 특히 포도 재배가 많아 포도주와 건포도를 생산합니다. 키타이와 우르가이는 농산물의 집산지입니다. 각국의 대상들에게 절대적인 의존을 해야만 해서 대상들에게 매우 우호적으로 대합니다."

"나는 앞으로 당은 물론 서돌궐이 모르게 화살 교역을 하려고 하오. 수송을 할 길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주인이 없어진 동돌궐 지경을 거치는 건 어려울 게 없으나 서돌궐은 그렇지가 못하겠소."

"대장군님, 저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에몬은 교역에서 경험과 사정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양신은 그런 도움을 받는 게 필수적인 일로 생각했다. 그 밖에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방법도 의논을 해보고 싶었다.

"대장군님, 당이 토욕혼 정벌에 나섰기 때문에 다클라마칸의 소국들은 두려움을 느낄 것이고 무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양신은 에몬의 말에 수긍이 가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당과 오아시스 소국들 간의 관계는 어떻소?"

"좋지 않습니다. 소국들은 당의 교역 상단이 직접 서역과 교역을 하는 걸 싫어합니다. 때문에 여러 면에서 막으려고 하는데 당도 그 점을 타파할 목적으로 토욕혼 정복에 나선 걸로 봅니다. 당은 토욕혼 땅을 거쳐 타클라마칸의 남쪽 길을 뚫으려는 게 않을까 하는 추측이 됩니다."

"당이 남쪽 길을 뚫는다면 그러는 이유는 무엇이오?"

"천축국에선 많은 면직물을 생산합니다. 면직물 주로 토번에 의해 얻어 왔는데 직접 하면 값이 싸므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양신은 당에 비협조적인 타클라마칸의 소국들과 협력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나중 일이고 우선은 화살을 팔 곳을 찾는 게 급선무라 그 일에만 주력을 할 생각이었다.

계절은 어느덧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끝없는 초원 지대를 지난 끝에 이닝에 당도했다. 거기서부턴 우거진 수림과 맑은 호수들이 자주 나타났다. 일리 강을 건너고 다시 산악지대가 이어졌다. 얼마쯤 더 가자 광대하게 펼쳐진 분지에 검은 물빛의 큰 호수가 나왔다.

"저건 이시쿨 호수입니다. 소그드 국이 가까워졌습니다."

호수를 끼고 얼마쯤을 더 가서 시르강에 이르렀다. 거기서 도강선을 타고 건너가면 소그디아 땅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히바성의 기병들이 달려와 에몬과 양신 일행을 성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영주(領主)인 구루빈은 에몬이 소개한 양신을 매우 반기며 불쑥 손을 내밀었다. 양신은 좀 당황했으나 그게 서역인들의 인사법임을 알고 마주 잡고 악수(握手)를 했다.

"영주님, 처음 뵙겠습니다. 양신입니다."

"대단히 반갑소. 나는 영웅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소."

에몬은 두 사람 사이를 통역을 해서 대화가 이뤄졌다. 구루빈은 자신과 동일하게 큰 의자에 양신을 앉혀 깍듯한 예우를 했다.

"나는 대장군께서 에몬을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떠나게 했소. 그런데 이렇게 직접 오시게 될 줄은 꿈에 몰랐소. 영광으로 여기오."

구루빈은 동방에서 양신의 위상이 어떤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에몬은 과장된 소개까지 해서 양신에게 경의의 눈길을 보냈다.

"말갈국이 고구려와 맞먹게 큰 나라이라면 인구는 얼마나 되오?"

"8백여 만이나 됩니다. 전체를 아우를 국왕은 없고 7부로 나뉜 연맹체로 각기 대막불이 다스리는데 대장군은 7부의 병력을 총괄합니다."

양신의 대답이 좀 이해가 되지는 않으나 구루빈은 또 물었다.

"대장군이 거느리는 병력은 얼마나 되오?"

"상비군은 5천 명이지만 유사시 30만 병력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장군의 권위는 막강하겠소."

구루빈은 그런 말을 하고 소그드국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소그드국은 성(城)들을 기반으로 여섯 영주(領主)들이 있고 각자 병립해서 다스렸다. 교역은 국가 재정의 근간이라 서로 간에 이익 다툼과 경쟁이 심하지만 어느 나라건 안정과 풍요를 누렸다.

구루빈은 말갈국의 군사력이 소그드국보다 훨씬 큼을 알고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세를 부리듯 엉뚱한 말을 흘려냈다.

"대장군은 이 세상의 중심지에 오시게 된 것이요!"

양신은 너무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동쪽에선 대국인 한족이 세상의 중심을 자처하며 중국(中國)이라고 했다. 그런데 서쪽 모퉁이에 있는 소국 중의 하나가 세상의 중심을 자처하는 건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주님, 여기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답변은 간단하오."

구루빈은 그런 대답을 하고 설명을 덧붙였다.

"소그드 땅에서 당의 국도까진 1만 5천 리 거리요. 그런데 당의 국도에선 동쪽으로 5천 여 리를 더 나가야 큰 바다를 접한다고 하오. 반면 소그드 땅에선 서쪽으로 1만 5천 여리를 나가야만 큰 바다를 접하오. 그러므로 세상의 중심지가 어디가 될 것인지는 자명해질 일이 아니겠소?"

양신은 고개만 끄덕이는데 구루빈이 물었다.

"나는 대장군이 앞으로 무기교역을 할 계획이라고 들었소."

"말갈국의 특산품은 화살이고 그걸 주 교역품으로 삼고자 합니다."

"전엔 고구려가 동서돌궐을 거쳐 사산제국에 화살을 팔았소. 그러나 지금은 거래가 끊겼는데 대장군이 그걸 해낼 수가 있다면 대환영이요."

"앞으로 교역에서 영주님의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구루빈은 그 말을 내심 크게 반겼다. 그 이유는 이슬람의 침공에 시달리는 사산제국이 화살을 구매할 데를 백방으로 찾고 있기 때문인데 공급을 확실하게 받을 수만 있다면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았다.

"무기 교역은 수송이 어렵고 많은 병력이 드는데 가능하겠소?"

"수송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을 해 보려고 합니다."

양신은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제대로 해낼 수가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무튼 간에 걱정은 나중이고 우선은 판매처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때문에 부딪혀 보자는 뱃심으로 입을 열었다.

"영주님께서 사산제국과 교섭에 나서 주셨으면 하는 청을 드립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전에 무기 거래에 끼어들 처지가 못 되었소. 그러나 지금은 상정이 크게 바뀌어 중계 역할을 적극 맡아보겠소."

"나는 영주님의 응낙을 받으니 고맙지만 고민이 없지도 않습니다."

"어떤 고민인지 말씀을 듣고 싶소."

"무기를 수송하려면 서돌궐 지경을 거쳐야 합니다. 그럴 때 통행세를 요구할 것인데 그 문제를 사전에 교섭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서돌궐을 통과하는 건 여러 모로 좋지가 않겠다는 생각이요. 서돌궐은 통행세 요구에만 그치질 않고 중계 교역에 끼어들려고 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장사를 해서 서돌궐만 좋은 일을 시키게 될지도 모르겠소."

"그 문제를 사산제국이 나서 해결을 봐줄 수는 없겠습니까?"

"사산제국은 형편이 매우 좋지가 않아 해결을 하긴 힘들 것이요."

양신은 속으로 걱정을 하는데 에몬이 입을 열었다.

"사산제국은 무기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형편이 그 정도라면 팔 곳을 다른 데서 찾지 않아야만 하겠습니다."

구르빈은 그 말에 당황하는 표정이 되었다. 혹시 화살을 이슬람 쪽에 팔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록 위험성이 있다고 해도 일단은 사산제국과 접촉을 해야 하오."

양신은 고개만 끄덕이게 되는데 구루빈이 말을 이었다.

"사산제국과 접촉을 하기 전에 화살 공급 시기를 먼저 알고 싶소."

"화살은 그동안 제작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재고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요구하는 수량을 알게 되면 제작에 들어가 확보를 하겠습니다."

"다다익선이요. 최소한 1백만 본 이상은 필요하게 될 것이요."

"그렇게 많은 양이면 앞으로 1년쯤은 걸려야 가능할 것입니다."

구루빈은 먼저 에몬을 사산제국으로 보내 소식을 알리고 양신은 그런 뒤에 직접 가서 거래 조건을 의논하고 계약을 맺을 걸 권했다. 그에 따라 에몬이 먼저 사산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양신은 에몬이 떠나기 전에 단 둘만이 의논을 했다. 에몬이 다녀오는 데만 2달이 걸려서 양신은 그 사이에 타클라마칸의 소국들 중 중요한 곳을 직접 둘러보고 사정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이때 구루빈도 생각을 하는 점이 있었다. 동방의 신검(神劍)으로 알려진 양신의 검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이익 추구와 축재에 밝은 소그드인은 부호들이 많았다. 그들의 저택은 성채(城砦)처럼 크게 짓고 살고 있었다. 때문에 저택과 재물을 보호하기 위해 무예를 지닌 자들을 많이 고용해 쓰고 있었다.

구루빈은 양신에게 무예를 시연(試演)을 한번 보여 줄 것을 청했다. 그 청을 받은 양신도 다른 생각이 있어 내심 반겼다. 왜냐하면 서역에서도 무문을 세워 문생들을 기르면 세력화를 시킬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양신이 그걸 받아들임으로써 히바성에선 곧 동방의 검사들이 무예 시연을 펼친다는 소문이 퍼졌다. 무예를 숭상하는 소그드인은 관심이 커서 당일엔 각처에서 몰려온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당일 관람석의 중앙엔 구루빈과 양신이 나란히 착석을 했다. 마당에선 영지, 선수만, 여구는 불함도기 기본기 동작을 펼쳤다. 소그드인은 강함과 유연함이 조화를 이룬 동방의 검법을 처음 보게 되었다.

맨 끝은 영지가 선수만과 여구를 상대로 대련을 펼쳤다. 실전을 방불케 할 세 사람의 검술은 행동반경이 매우 컸다. 박진감이 넘치는 광경을 보는 소그드인들은 넋을 잃은 채 연방 감탄을 터뜨렸다.

맨 나중엔 세 사람이 땅바닥에서 몸을 솟구쳐 성벽 위로 올라섰다. 그런 뒤 다시 지붕의 위로 뛰어올랐다. 그 광경은 압권이라 소그드인은 동방의 검술 기예 앞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양신은 모든 시연을 끝내자 동방 검술에 대한 설명을 했다. 검술 수련의 목적은 살생이 아닌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함에 있음을 강조해서 소그드인들로 하여금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소그드인들은 동방의 검술엔 인간 존중의 정신이 담겨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건 여간 색다른 느낌을 받게 하지 않아 더욱 관심들이 커지며 모두가 배우고 싶다는 말들을 했다.

구루빈은 그런 반응에 힘을 입고 소그드인에게 검술지도를 해달라는 청을 양신에게 했다. 양신은 내심 반기면서 검토를 해보겠다고 대답하고 우선은 타클라마칸의 소국들을 둘러보고 싶은 뜻을 밝혔다.

구루빈은 양신의 청을 들어주고 즉각 떠날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무사장(武士長)인 부탄에게 길 안내를 맡겼다. 양신은 돌아와서 히바성에 무문의 도장을 열기로 약속했다.

"영주님, 내가 서역 땅에 온 걸 당이 모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양신의 말에 구루빈은 상단들에게 일체 함구를 할 것을 지시했다.

일행은 먼저 동서교역의 중심지인 사마르칸트로 향했다. 소그드인들이 장악한 가장 큰 세력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동쪽으론 당, 서쪽은 비잔티움, 남쪽은 천축국(天竺國)과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 각국의 대상들에겐 시발과 종착지가 되는 곳으로 번영을 누렸다.

양신은 사마르칸트에 당도하자 세상에서 가장 큰 시장을 둘러보았다. 동서 물화의 집산지로 여러 나라의 화폐들이 두루 통용되는 곳이었다. 시장을 둘러보면서 물화의 원산지, 가격, 거래방법 등을 꼼꼼히 기록해 두고 그중에서 면직물(綿織物)에 큰 관심을 두었다.

사마르칸트를 떠난 뒤론 에몬과 의논한 대로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소국들을 보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카슈가르로 향하는 길에 파미르 고원 밑자락을 거쳤다. 어딜 봐도 눈에 덮인 산봉우리들만 솟아 있고 하늘은 맷방석처럼 작게 열려 있었다.

구루빈은 양신에 카슈가르 영주에게 보낼 소개장을 써주었다. 그런데 영주인 포라도 양신에 관해선 소상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호기심과 흥미를 보이며 양신을 호의적으로 대했다.

양신도 대장군 행세가 날로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워졌다.

"내 이름은 포라요. 말갈국 대장군의 방문을 환영하오."

"양신입니다. 영주님의 환대에 감사합니다."

"나는 동방의 영웅이신 대장군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역을 위해 먼 이곳까지 직접 오시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는 세상을 널리 둘러보기 위해 나름대로 큰 용단을 내렸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나 이곳을 어떻게 보십니까?"

"어느 곳이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들이 여간 부럽지 않습니다."

"그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속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포라는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소국들에 대한 실상을 들려주었다. 사막의 북쪽 길엔 엔치, 쿠차, 이크수가 있고, 남쪽 길엔 야르칸드, 호탄, 체르첸, 누란이 있었다. 남북의 두 길이 서쪽에선 카슈가르, 동쪽에선 돈황에서 합쳐지게 되었다.

"소국들은 어느 나라건 땅이 좁아 발전이 한정적입니다. 때문에 타국들과 불필요한 전쟁을 삼가고 외부의 침략에 대해선 일치단결로 막습니다. 어느 나라건 의식주에 걱정이 없을 만큼 풍요를 누립니다."

"영주님, 앞으로 제가 유념해 둘 점이 있다면 어떤 게 되겠습니까?"

"동쪽이나 서쪽의 물화가 사마르칸트를 지나면 갈수록 이익이 몇 곱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사마르칸트는 그걸 가로채려고 대상들이 더 못 나가게 합니다. 동쪽에선 그런 일을 고창국이 합니다. 그 일이 가능할 수가 있는 소그드 상인들이 상권을 쥔 때문이고, 타클라마칸 주변의 소국들은 소그드 상인들에게 예속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형편입니다."

"동쪽에서 고창국이 어떻게 당의 상단들을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직접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당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면 침략을 받을 빌미가 됩니다. 때문에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소국들을 시켜 그 일을 대신하게 합니다. 방법은 당의 상단들에겐 숙소 제공을 않으려고 해서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서 막습니다."

"고창국은 당을 거스를 힘이 없고, 또 오아시스 소국들도 당의 비위를 거스르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 곧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것 같습니다."

양신의 말에 포라는 수긍을 하면서도 덧붙이는 말을 했다.

"위험하지만 소국들은 협력 관계로 계속 막으려고 들 겁니다."

포라의 말에 양신도 생각을 해야 할 점이 있었다. 자신의 서역 진출도 당이 알게 해선 안 된다는 판단인데 포라가 말했다.

"전엔 서돌궐이 한족 상단의 서역 진출을 막는 역할을 했었소. 그러나 지금은 세력이 크게 약화된 데다 내부 사정도 대단히 나쁘오. 그런데다 서역의 대국인 사산제국은 사라센 군의 침공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라 이래저래 오아시스 소국들은 어두운 구름이 끼게 될 걸로 봅니다."

"영주님은 당과 이슬람 중 어느 쪽을 더 위험하게 보십니까?"

양신의 질문에 포라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슬람은 여기서 더 먼데 있고 아직은 사산제국이 버텨내고 있으나 당은 매우 강대합니다. 거기다 한족은 수백 년 전에도 카슈가르 넘어 진출해 온 적이 있으므로 더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겠습니다."

"소국들이 연합해서 당을 계속 막아낼 수는 없겠습니까?"

"힘들 것입니다. 소국들의 병력을 다 합쳐야 봐야 1천 명도 못 됩니다. 그런 병력으로 당의 대군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또 단합을 해도 소국들 중에선 큰 전쟁을 주도해 나갈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양신은 카슈가르에서 많은 정보를 얻은 뒤 떠나 호탄국으로 향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에 있는 길은 곤륜산맥(崑崙山脈)의 밑자락을 끼고 나갔다. 양신은 동쪽으로 계속 가면서 지명, 도로, 사람들의 인상 등을 일기(日記)에 상세하게 기록을 했다.

벌써 계절은 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야르칸트를 지나 호탄국이 가까워지는 어느 지점이었다. 전방으로부터 20여 명 가량의 무리들이 말을 타고 다가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부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대장군님,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어떤 점 때문에 그러오?"

양신이 묻자 부탄은 스쳐 지나간 사내들을 가리켰다.

"저 무리들은 어딘지 수상쩍은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수상쩍다는 말이오?"

"히바성에서 무예 시현을 관람했던 자들이 퍼뜨린 소문이 사마르칸트에도 전해졌습니다. 동방의 무예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 와서 관심들이 매우 큰데 그중엔 반감을 품을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 혹시 대장군님과 대결의식을 품은 자들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두 사람이 그런 말을 나누고 있는데 조금 전에 지나쳤던 무리들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대들이 동방에서 온 자들이라면 연행을 해 가야 하겠다."

부탄이 물었다.

"무슨 일로 우릴 연행을 하겠다는 말이요?"

"그건 알 필요가 없다. 우릴 따라 썩 나설 뿐이다!"

양신은 부탄이 통역하는 말을 듣고 거부의 뜻을 표하게 했다. 우두머리는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강제 연행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양신은 길을 막을 경우 뚫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무리들은 말에서 전부 내리더니 일행을 빙 둘러쌌다. 양신은 영지와 무슨 말을 나눈 뒤 혼자서만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혼자 계속 걷자 무리들의 포위도 따라서 움직인 끝에 일행을 벗어나게 만들었다.

양신은 혼자서만 포위망에 들자 곧 20여 명을 상대할 대세를 취했다. 곧 공격에 나서 양측 간에 접전이 벌어졌다. 접전은 순식간에 끝이 나고 무리들의 절반은 땅바닥에 쓰러지자 우두머리는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양신이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땅바닥에 쓰러진 자들은 내 칼등에 제압을 당했다. 생명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우두머리는 쓰러진 동료들을 수습해서 물러가라."

호탄은 그 말을 통역하는데 벌써 쓰러져 있던 자들 중에서 몸을 꿈틀거리거나 몸을 일으키는 자가 있었다. 우두머리는 쓰러진 부하들을 수습해서 지체 없이 거길 떠나버렸다.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나 호탄국에 마침내 당도했다.

호탄은 진귀한 옥석(玉石)들이 많이 났다. 옥으로 당과 천축국(天竺國)을 상대로 교역을 해서 나라는 부유했다. 국왕인 고라는 동방의 검사들이 히바성에서 무예 시연을 했다는 소문을 듣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들이 온다는 보고를 받자 한번 실력을 알아보고자 부하들로 하여금 겨뤄보게 했다.

양신은 국왕과 마주한 자리에 서 있는 시종장(侍從長)이 길에서 만난 우두머리인 걸 대번에 알아봤다. 고라는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말갈국 대장군이 이곳엔 온 이유는 무엇이요?"

"영주님, 교역을 위해서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영주가 아닌 국왕이다."

"제가 어떤 호칭을 쓰길 원하십니까?"

"전하로 호칭을 하라."

"저는 신하가 아니므로 국왕으로 부르겠습니다."

양신의 당당하고 위압적인 대답에 고라는 머쓱해하며 존대를 썼다.

"그렇게 하시오. 대장군은 아국에 온 목적을 말해보시오."

"호탄국은 천축국은 물론 당과도 교역이 많은 걸로 압니다. 귀국의 면직물을 구하고 대신 모직물을 공급할 수 있는 거래를 위해 왔습니다."

"대장군이 면직물을 구하고 모직물을 처분하려면 화살을 가져오시오."

양신은 뜻밖의 대답을 듣고 당황함과 동시에 반가움을 느꼈다.

"국왕께선 무슨 사정이 있기에 화살을 필요로 하십니까?"

"당은 토욕혼 공격에 나섰소. 다음 목표는 호탄이 될 것 같소. 병력이 너무 적은 우리는 성 방어에 화살이 필요해졌소. 말갈국은 화살을 많이 생산하는 걸로 아는데 공급해 주면 원하는 물화를 내주겠소."

양신은 앞으로 화살을 필요로 할 나라들이 늘어날 걸로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당을 의식해 주변국에 화살을 공급하는 건 위험했다.

"국왕께선 당의 다음 목표가 호탄국이 될 이유는 뭘로 보십니까?"

"당은 토번을 통해 천축국의 면직물을 가장 많이 사들이고 있소. 그런데 비단을 면직물과 직거래로 바꾸면 이득이 매우 크게 되는데 그러자면 호탄을 통과해야만 하므로 아예 점령을 해버리려고 들 걸로 보오."

양신도 호탄에서 면직물을 사들일 계획이라 생각이 많아졌다.

"호탄국은 토욕혼과 어떤 관계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양국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요."

"저는 국왕께 조언을 드릴 게 있습니다."

"어떤 조언을 하겠소?"

"토번은 매우 큰 나라로 아는데 동맹관계를 맺으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라 곧 해야 하겠는데 그보다 먼저 화살이 필요하오."

"토번과 유대관계를 맺게 되면 화살 공급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다만 그 일은 당이 모르게 추진해 주시고 고창국과도 친선을 도모하십시오."

"나는 당의 다음 차례는 고창국이 될 걸로 보고 있소."

두 사람은 그런 말을 나누고 거래를 성사시킬 합의를 보았다.

"저는 곧 돌아가야만 합니다. 깊은 의논은 다시 와서 하겠습니다."

그날 저녁에 고라는 양신에게 만찬을 베풀며 후대를 했다.

양신은 앞으로 타클라마칸의 소국들과 관계를 맺는데 고라를 앞세울 생각이었다. 이튿날 호탄국을 떠나 북쪽 길을 잡아 히바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문의 도장을 열고 영지를 사범으로 앉혔다.

에몬이 돌아와 구루빈은 양신과 함께 바로 사산제국으로 향하게 했다. 에몬은 길을 가면서 사산제국에 관은 모든 것을 알려 주었고, 양신은 알고 싶은 것을 모두 질문해 상당한 지식을 쌓았다.

사산제국은 이슬람 군의 침략이 잦아들어 어려움이 컸다. 거기다 근래 3년 사이에 6명의 황제가 바뀌었다. 현재는 불과 8세인 황제를 모후(母后)가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다. 국가의 재정 상태가 극히 나쁜 데다 황실은 귀족들에게 휘둘리는 실정이라 위태하기 그지없었다.

귀족들은 지난해 어린 야즈데게르드 황제를 앞세우고 지방을 돌았다. 어린 황제는 이슬람 군의 침공을 막을 병력과 전쟁 비용을 내놓을 것을 호소를 했지만 응하는 영주들이 없었다.

국도인 크데시폰으로 간 양신은 황제를 알현했다. 그 자리엔 모후만 동석했고 귀족들은 한 명도 배석하지를 않았다. 양신은 속으로 그걸 도리어 다행으로 여기면서 입을 열었다.

"사산제국과 무기 교역을 하고자 왔습니다."

황제와 모후는 에몬의 통역으로 양신과 문답을 시작했다.

"화살을 공급할 수가 있다면 시기를 언제쯤으로 잡으면 되겠소?"

"앞으로 1년은 기다려야 가능할 일입니다."

양신의 대답에 황제는 실망하는 빛을 보였고 모후가 입을 열었다.

"1년 후라도 구입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겠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걱정이 되는 점이 있소. 그 이유는 대금을 마련하기가 힘들기 때문인데 다른 물자로 대가를 지불하면 안 되겠소?"

양신은 내심 기가 막혔다. 그러나 사산제국의 재정 형편을 잘 알아서 그렇게라도 해서 거래를 성사시키고 볼 일로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에 대한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장군은 어떤 조언을 하려고 하오?"

"지금부터 화살 대금을 마련할 방법을 함께 연구해 보고자 합니다."

양신은 에몬한데 얻은 지식을 활용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사산제국은 해마다 거세지는 이슬람의 침공에 직면했습니다. 그런데 동쪽에선 당 또한 서역 진출을 꾀하고 있어 여러 나라들은 우려가 큽니다. 이런 때 사산제국을 도울 방법을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게 있습니다."

불안한 심경에 쌓인 황제와 모후는 귀가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장군은 무슨 좋은 방책을 낼 게 있겠소?"

"저는 사산제국의 귀족과 영주들이 한심한 지경임을 잘 알지만 그걸 역이용을 해서라도 제국의 위기를 벗어날 방책을 찾고자 합니다."

양신의 말에 황제와 모후는 큰 기대를 하는 표정들이었다.

"대장군, 귀족과 영주들을 어떻게 역이용을 할 수가 있단 말이요?"

"제국을 방위하는 데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병력과 무기입니다. 그런데 군자금 부담에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귀족과 영주들은 사리사욕에 취해 의무를 다하질 않으므로 어떻게 해서든 내놓게 만들려고 합니다."

모후는 양신에게 물었다.

"그들은 제국의 안위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재물을 불리는 데만 혈안인 자들인데 무슨 수로 돈을 내놓게 만들 수가 있겠소?"

"탐욕이 큰 만큼 현재 지니고 있는 재물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그걸 보존할 수가 없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걸 끄집어낼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모후는 대답을 하고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귀족들은 황제를 끌고 다니며 군자금 갹출을 호소했다가 실패하자 무능한 황제를 갈아치워야 한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짐은 대신들로부터 너무도 무시를 당하기만 해서 서럽고 괴롭소."

황제의 말을 받아 모후는 한 마디를 더 했다.

"제국이 큰 위기에 처했건만 자기들의 영지만을 지키려 드는 자들이요. 황제는 안중에도 없는 자들에게서 무슨 수로 내놓게 하겠소?"

양신은 황제와 모후를 위로하는 말을 했다.

"너무 낙심만 해선 안 됩니다. 그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제국을 지켜내기 위해 무기를 사들일 돈을 적극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부터 그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장군에게 무슨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좋겠소."

모후의 말에 황제도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이슬람 군의 침공은 번번이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 그치는 걸로 압니다. 국도인 크데시폰을 직접 노린 적은 한 번도 없이 물러나곤 합니다."

"그 때문에 좀 안심이 되나 그러는 이유에 대해 아는 게 없소."

"이슬람 군은 점령지에서도 돈을 받으면 물러나는 걸로 압니다."

"이슬람 군이 돈을 받는다면? 누가 돈을 내준단 말이요?"

"조르아스타 예배당의 사제들이 돈을 걷어 물리치고 있습니다."

황제와 모후는 그 사실에 놀라며 이해가 되는 표정들이 되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사제들은 왜 적에게 돈을 준다는 말이요?"

"이슬람 군에 점령당하면 젤 먼저 없어질 덴 예배당입니다. 대신 마호메트교를 믿게 만들 것이라 사제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와 모후는 이해가 가듯 고개를 끄덕이자 에몬이 설명을 더 했다.

"그렇지만 사제들도 언제까지 돈을 줘 물러가게 할 순 없습니다. 많은 돈이 계속 들어가는 걸 예배당들도 언제까지 감당을 하겠습니까?"

사제들의 돈은 신자들로부터 걷는 것이므로 결국은 백성들이 질 부담이었다. 그걸 계속 할 수는 없고 또 그렇게 하면 백성들도 끝내 제국을 불신하고 이반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황실의 권위를 더욱 떨어뜨릴 결과를 빚게 됩니다."

양신의 말에 황제와 모후는 한숨만 흘려내었다. 그런데 에몬은 더욱 심각해진 사정에 대한 얘길 들려주었다.

"영주들은 지금도 세금을 올리는 데만 열을 올립니다.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 크지 않은 백성들은 이슬람 군보다 황실을 더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그걸 이용해 사산제국 백성들을 상대로 선동을 합니다."

"어떤 선동을 하는가?"

"이슬람이 거두는 세금은 사산제국에 절반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듣는 백성들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할지는 자명해집니다."

모후는 들을수록 난감해지는 터라 매달리는 태도가 되었다.

"대장군에게 무슨 묘책이라도 있다면 말씀해 주시오."

양신은 그에 대한 대꾸를 다음과 같이 했다.

"귀족과 영주들이 무기를 사게 만들겠습니다."

"귀족과 영주들이 무기를 사게 만드는 건 택도 없소."

"먼저 사제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들어 주십시오."

"사제들이 전부 모이게 해서 어떻게 할 것이요?"

"사제들이 무기를 사도록 설득을 하겠습니다."

"귀족과 영주들도 안 되는데 사제들이 무기를 왜 산단 말이요?"

"그래도 한번 시도해볼 필요는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제들이 먼저 무기를 사게 한 뒤 그걸 귀족과 영주들에게 되팔게 만들겠습니다."

양신의 대답에 황제와 모후는 회의적인 표정만을 지었다.

"대장군은 그에 대한 설명을 더 해보시오."

"사산제국의 국교는 조르아스타교이고 크데시폰은 물론 전국엔 많은 예배당들이 있습니다. 이슬람 군에 점령을 당하게 되면 가장 먼저 파괴될 곳은 예배당이고 백성들은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게 됩니다. 그걸 면하자면 사제들은 예배당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사들여 적극 방어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제들을 설득시켜 무기를 사게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요."

"사제들 또한 귀족들 못지않게 많은 재물을 지녀 살 수가 있습니다."

"사제들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지녔어도 그걸 내놓으려고 하질 않소. 설사 사제들이 화살을 사게 만든들 그들이 그걸 뭐에 쓴단 말이요?"

모후의 말에 양신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제들에게 그만한 대가가 돌아오게 되면 응할 것입니다."

"사제들에게 무슨 대가가 돌아갈 게 있다는 말이요?"

"귀족과 영주들은 제국을 지키려고 들지를 않으므로 그 자릴 내놔야 합니다. 사제들이 각기 지역에서 백성들과 함께 교회당을 지켜낸다면 영주로 임명할 것을 약속하십시오. 그 일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도 있습니다. 즉 제국을 방어하는데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도를 높이게 됩니다."

황제와 모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더는 입을 열려고 하질 않았다.

"사제들이 화살을 산 뒤 손해를 보지 않고 도리어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응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습니다."

"사제들이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을 보게 할 방법은 어떤 것이요?"

양신은 그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고 설득을 했다. 황제와 모후는 그 방법을 듣고 나서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듯 각기 입을 열었다.

"나는 되도록 빨리 사제들을 궁중으로 불러 모으고 싶소."

"제국과 예배당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면 사제들도 응할 것 같소."

그로부터 닷새 뒤 황제의 명으로 전국의 사제들을 궁중 만찬에 초대를 했다. 귀족들은 사제들만 초대한 것에 삐져서 한 명도 궁궐에 들어오질 않았다. 양신은 그걸 도리어 바라고 있었다.

만찬장에서 양신을 황제 곁에 앉아 있었다. 통역을 맡은 에몬은 양신을 동방의 영웅으로 소개를 하고 행적도 소상히 전했다. 위기 상황에 처한 사제들은 우려와 관심이 큰 분위기였다. 더욱이 내년엔 이슬람 군이 직접 크데시폰을 노릴 것이란 소문마저 퍼져 있었다.

사제들도 제국의 병력과 무기가 턱없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터라 암담한 분위기에 빠져 있는데 황제는 사제들이 백성들과 함께 지역 방어에 나서 준다면 영주로 임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에 모두는 표정들이 달라졌다. 누군들 예배당을 보존하고 영주가 될 수가 있다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사제들은 제국 방위에 비협조적인 귀족과 영주들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분분해졌다.

사제들 중엔 이슬람 군에 점령을 당한 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쫓겨 온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점령을 당한 백성들이 도리어 이슬람 군을 은근히 환영하는 태도를 보이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슬람 군이 세금을 절반으로 깎아주겠다고 회유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제들은 모두 절망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앉아서 당하기보단 양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모후는 양신과 의논했던 대로 사제들이 반응을 보이자 기대감에 찼다

"사제들은 들으시오. 지금부터 말갈국 대장군이 하는 말은 폐하께서 용인하신 것이요. 귀족과 영주들이 각자 자기네 지역 방어에만 힘을 쓸 뿐이라 폐하는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소. 만약에 사제들이 폐하를 받들지 않는다면 제국은 위태해질 수밖에 없소. 때문에 폐하는 수도를 동북쪽으로 옮길 계획 이시오. 사제들은 그 점을 생각해서 결정을 내려주오."

사제들은 그 말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배당은 크데시폰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의 곡창지대에 가장 많았다. 그동안은 쳐들어온 이슬람 군에 돈을 거둬 주고 물리쳤지만 그걸 백성들이 계속 부담을 지게 할 순 없었다. 양신은 에몬의 통역으로 물었다.

"사제님들은 제국과 예배당을 함께 지켜내겠소? 버리겠소?"

"지켜내야 합니다."

사제들은 당연하다는 듯 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다면 예배당의 재물로 화살을 구입하는데 응해주시오."

양신의 말에 사제들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성벽을 방어하는 덴 활과 화살처럼 효과적인 무기는 없소. 황제께선 백방으로 화살 공급처를 찾으셨고 동방에서 온 나는 그에 응했소. 그런데 황실엔 무기를 구입할 자금이 없고 귀족과 영주들은 군자금을 내놓질 않소. 그렇다면 나는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소. 사제님들이 제국의 위기를 구하고자 나서겠다면 구매 계약을 맺을 생각이요."

사제들은 그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더 기다리지는 않겠소. 어느 쪽이든 결정을 내려주시오."

양신의 최후통첩 같은 말에 사제 중 한 명이 외쳤다.

"우리가 화살을 구입한들 그걸 뭐에 쓰겠소?"

"뭐에 쓰냐고 묻다니 그런 한심한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소?"

양신의 반문에 숙연해지는 분위기 속에 다른 사제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오. 그러나 남은 길은 둘이 있소. 사제님들은 내일이라도 예배당에 쌓아둔 재물을 가지고 어디로 떠날 것인가? 그 자리에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는 양자택일만 남게 되었소."

"이슬람교도로 개종을 할 수는 없소!"

또 다른 사제가 하는 말을 양신이 받았다.

"당연한 말입니다. 사제들이 무기를 사면 백성들을 분발시킬 수가 있소. 매번 침공하는 이슬람 군은 5천여 병력에 불과하지만 제국의 백성들은 수백만이요. 분노한 백성들이 무기를 잡고 일어선다면 적병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릴 수가 있으므로 무기를 구입해야만 하오."

양신의 말을 듣고 사제들은 그때부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모후도 입을 열고 거드는 말을 했다.

"사제들과 백성들이 함께 나서면 이슬람 군은 그냥 물러갈 수도 있소. 사제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국도를 옮기는 일을 착수할 수밖에 없소."

그 말을 받아 에몬이 또 입을 열었다.

"사제들이 화살을 구입해둔다면 되팔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사제들은 의아한 표정들이 되었다.

"왜냐하면 귀족과 영주들도 다급해질 경우 적과 맞서 싸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요. 그런 때 필요한 것은 무기밖에 없기 때문에 사제들은 구입한 화살을 되팔 수가 있게 됩니다. 귀족과 영주들이 화살을 요구하게 될 땐 사제님들은 이익을 붙여서 되팔 수도 있게 됩니다."

그때부터 사제들은 자기들끼리 의논을 시작했다. 예배당을 지켜내자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또 신도들을 배경으로 삼아 적과 싸우면 귀족과 영주로 임명될 수도 있음에 관심이 커졌다. 모두는 그렇게 하자는 대로 뜻을 합치고 응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황제는 비로소 양신과 맺은 계약서를 사제들에게 공개를 했다. 거기엔 1백만 본의 화살을 1년 내에 납품받게 되었다. 예배당들은 그것을 나눠서 구입을 하는데 동의를 헸다. 그때부터 에몬은 그 자리에서 사제들로부터 각자 지니고 있는 돈으로 계약금을 걸고 예배당 단위로 화살 구매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양신은 1백만 본의 화살을 전부 팔게 되자 지체 없이 크데시폰을 떠나 히바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흥분된 감정은 잠시뿐 화살 공급에 대한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겁고 조급해졌다. 어렵게 성사가 된 거래이므로 어떻게 해서든 물량을 확보해야 만했다. 이미 화살 제작은 들어갔지만 워낙에 많은 수량을 제시간에 맞추긴 너무도 기간이 촉박했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데 벌써 가을로 접어들었다. 구루빈은 겨울을 나고 내년 봄에 떠날 것을 권했으나 양신은 듣지 않았다. 동방을 다녀온 대상들은 토욕혼은 멸망 직전이고 장안으로 가는 길은 막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겨울철로 접어들기 전에 돌아갈 차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올 때처럼 돈황을 거쳐 여양으로 갈 순 없고 화살 제작의 진척을 알아볼 겸 호리소코루로 먼저 가기로 했다.

양신은 화살 제작은 물론 무기를 수송할 마차를 제작하고 호위 병단도 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비밀리에 수송하려면 타클라마칸의 남북 길은 피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만 했다. 에몬과 상의를 하고 북쪽의 스텝지대를 통과하는 길을 뚫기로 했다.

겨울철에 북방의 초행길은 위험성이 컸지만 경험이 많은 에몬에게 의지하며 갈 수밖에 없었다. 모두는 험한 길에 대비코자 말 대신 낙타를 타고 충분한 식량과 이동주택인 게르도 준비해서 떠났다.

그루빈의 외동딸인 샤만은 영지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자가 떠나게 되자 매우 서운해 하며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양신은 영지가 꼭 돌아올 것이라고 안심을 시키자 샤만은 꼭 돌아올 것을 신신당부했다.

일행은 히바성을 떠나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발히슈 호수의 서쪽을 돌아 북단의 스텝지대로 들어 선 뒤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 스텝지대를 뚫고 나가는 동안에 견딜 수 없게 날씨가 추웠다. 유목민들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르에 의지해 밤이면 얼어 죽는 걸 면하고 계속 전진해 나갔다.

마침내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을 지음 호리소코루에 당도했다. 그곳의 총책임자로 있는 목제가 여간 반기지 않았다. 그는 양신이 없는 1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보고했다.

첫째는 두막루와 지두우 또한 눈하와 송화강에서 각기 사금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얻은 금은 상당해서 많은 철정을 구입하는데 쓰게 되었다. 두 번째는 말갈 북4부와도 교섭을 해서 화살 제작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전체적으로 생산해 낸 화살은 50여 만 본에 이르렀다.

"대인, 더욱 중요한 점은 백돌부에서도 화살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양신은 목제의 말에 놀라움과 의문이 함께 일었다.

"두막루와 지두우에 사금을 채취하게 된 것은 잘했다. 그런데 백돌부에서도 화살을 생산하게 되었다니 그건 어떻게 된 일인가?"

목제는 고갤 떨군 채 굳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대인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에 저는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양신은 더욱 의아해하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큰일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저는 두막루와 지두우 보위부가 송화강과 눈강에서 사금 채취를 하게 했습니다. 많은 철정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걱정이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걱정이 생겼단 말인가?"

"그로 인해 큰일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큰일을 저지르게 되었다니 무슨 일인가?"

"백돌부의 대막불 추달을 제거하게 되었습니다."

목제의 대답에 양신은 여간 놀라지 않았다.

"백돌부 대막불을 제거했다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었는가?"

양신은 어이가 없는 표정인데 목제는 그에 대한 설명을 했다.

화살 제작은 속말과 백산부는 물론 북4부까지 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독 백돌부만 못해 그곳 백성들은 여간 큰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다. 때문에 추달은 그에 대한 불만이 커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에 그가 화살을 제작하는 걸 고구려와 당에 알릴 경우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었다. 그런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파루와 의논을 하고 양신이 돌아오길 기다릴 수가 없다는데 생각을 같이 하고 사전에 추달을 제거해서 어려움을 제거해야 한다는 합의를 봤다. 그런 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양신과 추달이 함께 수결한 문서 중 하나를 자신이 맡아 보관하고 있는 일이었다.

"저는 그 문서를 추달을 제거하는데 쓰기로 했습니다."

"그 문서를 추달을 제거하는데 썼다고?"

"그 문서로 백돌부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어낼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파루와 의논하고 은밀히 북3국의 문생들 1천 5백여 명을 동원해서 이끌고 백돌부를 급습했습니다. 그리고 추달을 제거한 뒤 백돌부에도 무문의 도장도 열고 화살제작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을 놓고 백돌부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환영일색입니다. 그것으로 그동안에 추달이 보인 행각에 백성들의 불만이 얼마나 컸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양신은 그 말을 듣고 내심 안도하는데 목제가 한 마디를 더했다.

"추달이 제거된 뒤 백성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한단 말인가?"

"삼호족의 통합 왕조 임금은 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양신은 목제로부타 전말을 다 듣고 나자 자신이 미처 생각을 못했던 점을 목제와 파루가 처리해버린 것에 대해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잘 했다!"

"대인, 파루는 백돌부 문생들의 지도와 화살 제작을 관장합니다."

"나는 파루를 백돌부의 보위부 부장으로 임명을 하겠다."

목제는 그런 대답을 듣고 나서 조심스럽게 또 다른 말을 꺼냈다.

"대인, 제가 마음대로 저지른 일을 용서를 해 주시겠습니까?"

"용서를 구할 일이 아니로다!"

"저는 그 일로 그동안에 얼마나 전전긍긍을 했는지 모릅니다."

"목제, 자네가 내 곁에 있음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대인, 그러시다면 좀 걱정이 되는 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좀 걱정이 되는 일은 무엇인가?"

"말갈의 북4부는 화살 제작은 응했지만 무문 설치는 거부합니다."

"북4부에도 무문을 설치하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자넨 거부하는 이유를 무엇 때문으로 생각을 하는가?"

"저는 무문을 설치한 남3부에서 벌어진 상황 때문으로 봅니다."

"정확히 봤다. 만약에 내가 나섰다면 화살 제작도 거부를 당했다."

양신은 대답을 하고 말갈 북4부의 대막불들이 자신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은 한 걸음을 더 나가기로 했다.

"대인, 저는 내친김에 모든 걸 다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말해 보게."

"말갈 북4부는 맨 북쪽에 흑수와 호실부 있고, 그 밑으로 불열과 안거골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흑수 변엔 고구려인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고구려인이 흑수 변에서 많이 살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대수 전 이후로 고구려 백성들은 불안과 살기가 어려워졌고 합니다. 지배층의 착취가 심해져서 불만이 큰 백성들은 백제와 신라로 떠났답니다. 그러자 고구려 조정은 그걸 막았기 때문에 북부와 동부의 백성들은 도주가 쉬운 데를 택할 수밖에 없어 말갈 땅으로 향했답니다. 그런데 말갈의 남3부는 고구려인의 이주를 반기질 않아 계속 북쪽으로 쫓아버렸고 고구려인은 결국은 흑수 변에서 주저앉게 될 수밖에 없었답니다."

양신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여간 가슴이 아프고 분하지가 않았다.

"대 고구려가 어찌 그 모양이 된단 말인가?! 고구려인은 지금 흑수변에서 어떻게 살고 있단 말인가?"

"그들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한답니다."

"그렇다면 사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고구려인의 마을들 촌장은 대부분이 전에 군관 직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여름에 10여 명의 촌장들이 호리소코루에 왔습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여길 왔단 말인가?"

"대인에 대한 기대가 커 자기네도 받들고 돕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날 돕겠다고? 그게 정말인가? 혹시 고구려인들은 지금 무슨 박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각국의 보위부는 눈강과 송화강에서 사금 채취하기 시작했지 않습니까? 흑수 변의 고구려인들 또한 사금을 채취하고 싶어 합니다."

양신은 그런 말을 듣고 무슨 생각에 잠기는데 목제가 말했다.

"대인, 말갈 북4부에 대한 어떤 조치를 취하셨으면 합니다."

"조치를 취한다면 말갈 북4부를 점령하는 길밖에 없겠다!"

목제는 양신의 대답이 너무도 뜻밖이라 놀라며 반문했다.

"대인, 북4부를 점령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곧 군사조직에 착수할 계획이다. 흑수 변에 고구려인들이 많이 산다면 내겐 큰 도움이 되겠다. 고구려 군관 출신들과 군사조직과 병단을 꾸릴 일을 하고 싶다. 우선은 그들을 곧 만나야 하겠다."

양신은 그런 대답을 하고 목제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보름 뒤 흑수변의 고구려 군관 출신들인 10여 명의 촌장들은 호리소코루로 왔다. 양신과 촌장들은 서로 간에 여간 반기지를 않았다. 촌장들 중엔 대수 전 때 동부와 북부에서 양신과 함께 적군을 무찔렀던 전력을 공유하는 사이라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양신은 옛 전우들과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서로 의논을 한 끝에 갈사군이란 명칭으로 병단을 창설하기로 했다. 병단은 호리소코루를 비롯해 북3국, 말갈 남3부의 문생들 중 교역 상단에 들지 않은 자들로 부대를 편성하가로 했다. 그런 뒤 즉시 각국의 보위부에 통고해 모두 호리소코루로 집결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 달간에 걸쳐서 모여든 문생들의 숫자는 2천 5백여 명에 이르렀다. 그런 문생들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부 섞어 8개의 혼성 병단을 조직하고 부대마다 고구려 군관 출신들이 군사훈련과 지휘를 맡게 했다.

편성된 갈사군 병단은 즉시 흑수 변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말갈 북4부의 대막불들은 밀어닥친 대병력과 맞설 엄두를 못 냈다.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갈사군은 흑수 변 전체를 옮겨 다니며 군사 훈련에 들어갔다.

양신은 그 보고를 받고 나자 여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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