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나라 62. 결속

62. 결속

by 정완기


62. 결속(結束) (633)


백돌부의 대막불인 추달(秋獺)은 양신에 대한 반감이 컸다. 속말과 백산 양부엔 갈사무문을 세우고 백돌부엔 얼씬도 않는 데다 구려촌 상단은 속말부만 드나들고 있어 교역마저 크게 위축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 중 속말과 백산부의 무문에 들어간 자들이 날로 늘고 있었다. 여러 면으로 자존심이 크게 상한 추달은 구려촌 상단을 억류하는 초강수를 두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양신은 백돌부에 당도했다. 처음엔 속말부로 먼저 가서 걸마루의 양해를 구한 뒤 오려고 했었다. 그러나 백돌부가 가까워지면서 생각을 바꿔 먼저 추달을 만나보기로 했다. 다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파루로 하여금 속말부로 가게 했다. 백산부와 더불어 문생들을 모을 수 있는 데까지 동원해서 백돌부로 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추달은 양신이 직접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자 구려촌 상단의 행수인 자양을 즉각 풀어주었다. 그리고 백돌부의 천호장(千戶將)인 기발(基勃)로 하여금 자양과 함께 나가 양신을 맞아드리게 했다.

"자양, 억류된 몸인 줄로 알았는데 아닌가?"

"대막불은 대인께서 오셨다는 보고를 받고 절 풀어 주셨습니다."

"그런가? 그동안에 고생이 많았겠네."

양신이 위로의 말을 하자 자양은 씩 웃고 대답을 했다.

"대인, 저는 억류를 당했으나 별 위해를 받진 않았습니다. 저녁마다 술까지 내줘서 싫컷 마시면서 모두가 며칠간을 편히 들 잘 쉬었습니다."

자양의 대답을 듣고 양신은 추달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만해졌다.

"대인께선 앞으로 백돌부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렵니까?"

"백돌부와 언제까지나 교류가 없어선 안 될 것 같다."

"대인, 만약에 교류를 하게 되면 속말부의 반발이 매우 클 것입니다. 대인께선 그 점을 간단히 생각해선 안 되실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도 차제에 무슨 결단을 내려야만 하겠다!"

양신의 강한 음성에 자양은 또 걱정스럽게 반문했다.

"대인, 어떤 결단을 내리려고 하십니까?"

"나도 불공평한 처사는 그만두고 백돌부와도 교류를 모색하련다. 걸마루가 반대를 계속하게 되면 속말부과 관계를 재고해야만 하겠다."

양신도 그렇게 했다가 일이 잘 못되면 그동안에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말갈 땅에서 떠날 사태를 빚게 될 수도 있나 속말, 백산 양부에서 길러낸 1천여 문생들에 대한 믿음이 컸다. 문주에 대한 존경과 충성도가 높음에 기대를 걸고 모험을 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걸마루의 독단에 휘둘릴 순 없겠다. 이번 기회에 배수진을 치고 백돌부와 관계를 개선할 시도를 해 보고자 한다."

"그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만."

양신은 자양에게 상단을 끌고 즉시 떠나도록 했다. 그런 뒤 기발의 안내를 받아 추달에게로 갔다. 집무실 앞에서 기발은 양신이 호자만 들어갈 것을 권했지만 목제와 영지는 듣지 않고 따라 들어갔다.

"대막불님, 처음 뵙겠습니다. 양신입니다."

"양신님, 그렇지 않아도 언제쯤 한번 찾아오실까 기대를 했었소."

추달은 자못 융숭한 태도로 말했지만 눈초리만은 날카로웠다.

"대막불께서 상단을 석방해 주셔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무례라도 저질러야만 양신님이 찾아올 걸로 여겼소."

"모든 게 제 불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양신의 대답에 추달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간에 양신님이 보인 태도에 나로선 여간 반감이 크지 않았소. 물론 나도 양신님이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는 처지와 사정에 대해선 이해가 가오. 그러나 나로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끝내 볼썽사나운 짓까지 벌이게 되었소. 그렇다고 해서 내겐 악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요."

"저도 애초부터 백돌부와 관계를 맺지 않을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속말부의 눈치를 보느라 차일피일 시일을 끈 게 지나쳐 대막불님의 오해와 불만을 크게 사게 되었으니 재삼 미안한 마음과 사과를 드립니다."

"양신님의 사과를 받으니 그나마 내 감정이 좀 풀리게 되었소. 그런데 걸마루 때문에 그랬다면 이젠 허락이 떨어져서 이렇게 왔단 말이요?"

추노의 질문 속엔 양신을 약자로 보는 태도가 역력했다.

"제 임의대로 왔습니다."

"그 말씀 사실이요? 그래도 괜찮겠소?"

"속말부의 눈치를 그만 보기로 했습니다."

양신의 굳은 음성에 추달은 자못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단독 결정이라면 나로선 더욱 환영할 일이요. 하긴 양신님은 여양의 호상이고 대당에선 유력자들을 후견인으로 두고 있지 않소? 그런 만큼 독단적으로 나가고 남음이 있으므로 과단성 있는 결정을 내린 것 같소."

추달이 뜻밖에도 추켜세우는 말을 해서 양신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처럼 과대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은 못 됩니다."

"별 겸양의 말씀을 다 하오. 다만 양신님은 걸마루 말고도 여러 면에서 제약을 받을 사항들이 없지도 않은 점 나도 우려와 이해를 하오."

"대막불께선 제게 무슨 제약 사항이 많은 걸로 보고 계시군요?"

"양신님은 고구려 조정이 매우 꺼리는 대상이니 그렇소. 그 때문에 나하고 접촉을 하길 꺼려하고 경원해 온 것을 내가 왜 모르겠소?"

추달은 은근히 양신을 위축시키게 만들려고 했다. 반면에 양신은 추달이 자꾸만 고구려를 쳐드는 말을 하는 속내엔 어떤 의도가 깔려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도 대막불께서 고구려와 관계가 각별하심은 알고 있습니다."

양신이 넘겨짚는 말에 추달은 자신의 속내를 한층 더 드러냈다.

"양신님이 젤 먼저 돌지계한테 접근한 이유도 나는 알고 있소. 속말부는 고구려와 거리를 두려는 반면에 백돌부는 원만한 관계이니 양신님이 나에게 접근을 꺼리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은 이해가 되는 일이요."

"대막불님의 말씀은 맞는 점도 있으나 틀린 점도 있습니다."

"뭐는 맞고 뭐는 틀린다는 말이요?"

"저는 중원 땅에 자리를 잡아서 이젠 고구려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나도 양신님이 중원 땅에서 위치가 어느 정도인 줄은 알고 있소. 그러나 나 또한 고구려는 물론 당과의 관계가 원만함을 아셔야 하오."

"그러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양신님에 관한 일은 일체 고구려 쪽엔 함구해 왔소. 그 이유는 나름대로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위함이었소.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양신님과 한번 속내를 털어놓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소."

"저는 먼저 대막불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요?"

"저는 교역 면에서 백돌부를 다른 부보다 더 중요시합니다. 때문에 백돌부에 갈사무문의 도장을 세우는 일부터 의논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무문을 여는 것엔 관심이 없소."

"그러시면 교역만을 생각하십니까?"

"교역도 아니오."

"그러시면 무엇 때문에?"

양신은 말끝을 흐리면서 비로소 왠지 모를 이상한 긴장감을 느꼈다. 추달은 자신을 맞을 때 과시할 목적으로 병력들을 벌여 세우고 위세를 보일만도 한데 단 한 명의 병력을 볼 수가 없었다.

"양신님은 여러 면에서 백돌부의 사정을 속속들이 캔 걸로 아오."

"저는 교역에 관한 일들을 알아보고자 했을 뿐입니다."

"나는 양신님을 단순한 장사꾼으로만 보지를 않소."

양신은 더욱 곤혹스러움을 느끼며 반문했다.

"장사꾼으로만 보시질 않으신다면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에 관해선 양신님이 한번 속내를 털어놨으면 하오"

추달은 약간 추궁 조라 양신은 짧게 대꾸했다.

"저는 털어놓을 무슨 속내가 없습니다."

"나는 양신님에 대한 반감이 크면서도 한편으론 관심이 크오."

"대막불님이 어떤 반감과 관심을 품고 계신지 먼저 듣고 싶습니다."

양신의 대꾸에 추달은 슬며시 화제를 바꿨다.

"돌지계는 나와 크게 다른 점이 있었소."

"어떤 점이 다른지요?"

"돌지계는 한족과 고구려를 겉만 알지 속을 모르던 사람이었소."

"대막불께선 한족과 고구려의 다른 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양쪽은 다 이기적이요. 다만 한족은 포용성이 좀 있는데 반해 고구려는 배타성만 강하오. 그 점은 고구려에겐 크게 불리한 점이 되겠소."

"저도 대막불님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양신님은 고구려인이나 지금은 중원 땅의 백성이 되었소. 거기서 살면서 한족과 고구려인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어떤 것이 되겠소?"

추달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지긋이 바라보는 태도를 취했다. 반면 양신은 추달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또 고구려는 지금 자신에 대한 일을 어느 정도를 알고 있는지 몰라 입을 열었다.

"저는 아무래도 그에 대해선 좀 긴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좋소."

"한족은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시켜 나왔습니다. 그에 반해 고구려는 타 종족들과 교류 영역을 넓히기에만 주력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나중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뿐더러 판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영향이며 판이한 결과는 또 어떤 것을 말함이요?"

"타 종족을 정복하면 영토를 확장하고 백성들도 흡수를 하게 됩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영토 확장은 영구적인 이득이 크지만 교류 영역만 확장을 하면 가변성만 클 뿐 영구성이 없고 그 결과는 실익 면에선 취할 게 적습니다."

"정복은 좋고 교류 영역의 확장은 좋지가 않다는 말이군요?"

"좋고 나쁨을 따지기보다 초래하는 결과를 강조하려는 말입니다."

"강조할 점이란 무엇이요?"

"한족은 타 종족을 정복해서 영토와 백성들을 계속 늘려왔지만 고구려의 교류 영역의 확장은 영토와 백성들을 늘리지 못했습니다."

"그걸 모를 사람이 누구라고 그런 소릴 자꾸만 하오?"

"한족은 영토와 백성들이 늘어난 만큼 보호할 의무가 생깁니다. 그러나 타 종족과 교류에만 그치는 고구려는 그럴 의무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한족은 그로 인해 늘어난 백성들을 다루는 역량이 커지고 능숙해졌으나 고구려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즉 백성들을 보호할 의무가 생기는 것과 생기지를 않는 것은 큰 영향을 끼쳐서 잘 다룰 줄 모르게 됩니다."

추달은 그제야 양신을 다시 보는 눈길이 되었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 두어선 더욱 안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고수 전쟁 때 나는 고구려에 적극 협조를 했으나 돌지계는 비협조적이었소. 나는 대막불이 된 걸마루에게 삼호족의 장래를 위해 고구려와 화해할 것을 권했지만 외면만 당하고 사이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소."

"대막불께선 고구려에 협조를 하면 무엇을 얻을 게 있으십니까?"

양신의 질문에 추달은 또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양신님은 삼호족 땅에서 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알고 싶소?"

추달의 질문에 양신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양신님은 부여국의 지파인 갈사국 왕손을 자처하고 있다고 들었소. 속말과 백산 양부에 무문을 세워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는 이유는 뭐요?"

"무문은 북3국에도 세웠습니다."

양신의 대답이 못마땅하게 여긴 추달은 추궁 조의 질문을 던졌다.

"양신님은 삼호족 땅에서 야망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니오?"

추달의 질문을 받고 양신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양신님은 갈사문문 문생들에게 공공연하게 하는 말이 있다고 들었소. 삼호족이 통합 왕조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인데 그 의도는 대체 뭐요?"

추달의 조여드는 질문에 양신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잘못 왔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통합 왕조가 돼야 삼호족은 발전을 기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왜 양신님이 걱정을 해야 할 일이요? 혹시 양신님은 조상의 나라를 재건하는 일을 삼호족 땅에서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오?"

"제가 조상의 나라를 재건하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삼호족 땅이 아니라도 세울 곳을 찾을 수사 있습니다. 대막불님은 혹시 그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절 이곳으로 오게 만드신 건 아니십니까?"

양신의 질문에 추달은 더욱 강한 표현을 썼다.

"양신님은 삼호족 중에선 통합왕조를 세울 인물이 없다고 보시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다행이요. 아무튼 간에 양신님은 삼호족을 크게 각성을 시켰소. 그로 인해 남3부 대막불들은 하나 같이 창업의 뜻을 품게 되었소. 특히 속말과 백산부는 갈사무문의 도장을 열게 해서 문생들 배출에 힘을 썼소. 그건 통합의 야망을 달성하려는 목적이 아니겠소?"

"통합을 나쁠 일로만 보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대막불들이 통합의 야망을 품고 자체적인 힘을 기르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때문에 삼호족 전체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 같소."

"큰 위기에 봉착을 하다니 어떤 면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삼호족의 내홍이 일게 되면 고구려가 그걸 이용하려고 들어 그렇소."

"고구려가 어떻게 이용을 하려고 든다는 말씀입니까?"

"동돌궐을 멸망시킨 이세민의 다음 목표는 고구려가 될 것이요. 가까운 시일 내로 벌어질 일은 아니겠으나 고구려는 대비가 급해졌소. 그런 고구려를 삼호족은 전처럼 도우려고 들지를 않을 것 같소. 때문에 고구려는 삼호족을 합병해서 자체적인 힘을 키울 방편으로 삼을 것이요."

"그 말씀은 고구려가 삼호족을 침공이라도 할 걸로 보십니까?"

"그렇소."

양신은 그런 대답에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고구려도 삼호족이 언제까지 자기들 그늘 밑에 있지 않고 자립을 하려는 의욕이 날로 커져가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막불들의 각축전은 점점 치열해져서 큰 화근이 되겠소."

"그 말씀엔 저도 수긍이 갑니다."

"그런 사태 속에 나는 결심을 한 게 있소."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삼호족의 통합은 내가 해내기로 마음을 정했소."

"저도 남3부 대막불님들이 모두 그런 야망을 품은 걸로 압니다."

"앞으로 각축전은 심해질 것이나 우위에 서게 될 사람은 나요."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으셔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나는 고구려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요."

"고구려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삼호족이 고구려에 합명을 당하기보다 내가 통합왕조를 세워서 전처럼 고구려에 협조를 하게 되길 바라 날 지원하려는 것이요."

양신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완전히 위기의식에 빠져들었음을 느꼈다. 추달이 상단을 억류해 자신이 오게 만든 배후엔 고구려가 있음이 확실해졌다는 순간 등 뒤에 선 목제와 영지를 돌아보다 보았다.

"양신님은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시오."

"어떤 결정을 내리란 말씀입니까?"

"삼호족 땅에서 쓸데없는 망상은 더 이상 품지를 마시오."

"혹시, 그 말씀은 고구려가 제게 보내는 경고가 아닙니까?"

"그렇소. 양신님은 삼호족 땅이 아니어도 차선책을 쓸 데가 있소."

"대막불께선 제가 차선책으로 어딜 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십니까?"

"동돌궐 땅은 지금 무주공산으로 변해 버리지 않았소?"

양신은 자신이 이곳에 온 게 기고만장한 일이었음을 반성했다.

"대막불님,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양신의 말에 추달은 당황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먼저 자리를 뜬 뒤에 떠나도록 하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신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자 목제와 영지도 동시에 칼들을 뽑아 들었다.

"대막불님, 움직이지 마십시오. 나와 함께 계속 있어야 합니다."

추달은 공포에 질린 채 반문했다.

"날 어찌하겠다는 말이요?"

"오늘 처음 나는 쉽게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대막불님이 먼저 당할 일이고 나는 다음이니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소?"

추달은 떨리는 음성으로 솔직하게 반문했다.

"당장 밖에서 포위를 한 병력들을 물러나도록 명령을 내리시오."

양신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추달은 밖에다 대고 외쳤다.

"물러들 가라. 자중하길 바란다."

목제는 문틈으로 밖을 살피고 나서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속말과 백산부의 갈사무문 문생들이 곧 여기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진 대막불님과 저는 함께 자리를 해야만 하겠습니다."

추달은 공포감 속에 후회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계획이 들통 난 이상 충돌을 빚기 전에 먼저 목숨을 잃게 된다는 공포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양신님, 과연 영웅다운 풍모가 있소. 몰라본 점 부끄럽게 여기오."

추달은 시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을 하는데 양신은 몸을 일으켰다.

"문생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나와 대막불님은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한단 말이요?"

양신은 문갑 쪽으로 가서 지필묵을 꺼내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종이를 펴놓고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썼다.

-- 첫째, 양신은 고구려 국왕에게 숙이겠다. 둘째, 고구려와 삼호족은 적대 관계가 됨을 원치 않는다. 셋째, 양신은 백돌부의 대막불이 삼호족의 통합 왕조를 세우는 것을 막겠다.

같은 내용을 두 장에 똑같이 쓴 뒤 추달에게 한 장을 내밀었다.

"한 장엔 대막불님의 수결을 쳐 주시오."

"내가 못하겠다면 어쩔 것인가?"

"함께 목숨을 잃을 일만 남게 됩니다."

추달은 한숨을 쉬다가 끝내 붓을 들고 수결(手決)을 쳤다. 양신도 또 한 장에 자신의 수결을 쳤다. 그것을 서로 바꾼 뒤 추달에게 말했다.

"제 수결을 친 건 대막불께서 고구려에 전하시오. 대막불님의 수결을 친 건 내가 보관을 하겠습니다. 만약에 대막불님이 고구려에 전하지 않을 경우 제가 보관하는 걸 다른 대막불들에게 공개를 하겠습니다."

추달은 고개만 끄덕여 보였고 양신은 좀 더 시간을 끌기로 했다.

"지금 삼호족은 크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양신님 때문이 아니요?"

"앞으론 남3부의 대막불님들 간에 각축전이 더 심해질 것입니다."

양신이 던진 말에 추달은 뜻밖의 반문을 했다.

"양신님은 3부 중 누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소?"

"고구려의 힘을 빌릴 대막불님이 가장 유력하지 않겠습니까?"

"대망을 품은 양신님은 생각하는 바도 남과 다르구려!"

"저는 고구려에 적대 행위를 않겠습니다. 이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양신님의 말을 전하겠으니 내 부탁도 들어주시오."

"대막불님은 제게 무슨 부탁을 하시렵니까?"

"삼호족 통합은 주도권이 내게 있음을 여타 부에 알려주시오."

추달은 끝까지 허세를 부렸지만 양신은 내심 그걸 반겼다. 상대가 고구려를 등에 업는 것은 속말과 백산부의 반발만 더욱 키우게 만들 뿐이었다. 그건 자신이 다른 대막불들에게 펼칠 계략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갈사무문 문생들의 결속을 다지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때 잔뜩 표정이 굳어진 기발이 파루와 걸사비우를 데리고 들어왔다. 양신은 비로소 몸을 일으킨 뒤 추달을 향해서 작별 인사를 던졌다.

"대막불님, 이만 물러갑니다."

양신이 밖으로 나가고 나서 기발이 입을 열었다.

"대막불님,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추달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기발에게 물러가라는 손짓만 했다.

양신이 밖으로 나오자 5백여 명의 문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체없이 문생들을 끌고 속말부로 향했다. 한편 불만에 찬 걸마루는 술만 퍼마시고 있다가 양신이 오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양대인께선 추달을 만났다가 무슨 행패라도 당하진 않았소?"

"나는 억류된 상단을 구출하는 게 급해서 직접 갈 수밖에 없었소."

"아무리 급해도 나와 상의를 하고 가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내 일인데 왜 대막불과 상의를 한단 말이요?"

양신의 뻐드름한 대꾸에 걸마루는 찔끔하는 태도가 되었다.

"아무튼 간에 나는 불쾌한데 양대인은 추달에게 무슨 대가를 치렀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내겐 성과가 없지도 않았소."

"추달에게 죽음을 당할 뻔했던 형님이 얻을 게 뭐가 있단 말이요?"

"나는 삼호족 땅에서 더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오."

"그건 대체 무슨 말씀이오?"

"추달이 상단을 억류한 건 날 유인해서 죽이려는 데만 있진 않았소."

"그밖에 또 뭐가 있었단 말이요?"

"나는 대막불의 건의를 받아들여 속말과 백산부는 물론 북3국의 갈사무문 문생들까지 동원해서 고구려의 순무를 막은 일이 있지 않았소?"

"그건 내가 적극 권했지만 형님은 힘을 과시한 계기가 되지 않았소?"

"고구려는 그 일을 트집 잡아 속말과 백산부를 정복해서 아예 집어삼킬 야욕을 드러냈소. 추달은 그 일에 앞장을 서게 된 걸 알게 되었소."

양신의 대답에 걸마루는 매우 놀라며 물었다.

"그게 사실이요?"

"당의 다음 차례는 고구려요. 그러나 삼호족 남3부는 전처럼 고구려를 돕지 않을 것이라 고구려는 그 해결책을 침공에서 찾으려고 하오."

"고구려가 삼호족을 침공을 해서 무슨 해결책을 얻는단 말이요?"

"삼호족의 통합 왕조를 추달이 세우게 해 병력 지원을 얻으려 하오."

"추달이 고구려 쪽에 기운 건 알지만 그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걸마루도 다른 대막불들도 동상이몽의 야망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를 등에 업고 통합 왕이 되려는 추달은 삼호족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위험한 존재라서 양신에게 융숭하게 물었다.

"형님은 추달에 대한 무슨 대책을 세울 게 없겠소?"

"일단 나는 물러나는 모양새를 보일 수밖에 없겠소. 나로 인해 고구려의 침공을 촉발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요. 대책은 그 뒤에 세우겠소."

"형님, 우린 침공을 막을 준비가 안 되었소. 고구려의 침공을 늦출 필요성은 있겠소. 이젠 속말과 백산부는 갈사무문 문생들밖에 믿을 데가 없소. 앞으로 더 많은 문생들을 길러내야 하겠는데 그러자면 도장을 운영하는데 들 비용도 크게 늘어나게 되므로 그게 큰 걱정이요."

걸마루의 말에 양신은 속으로 한심함을 느꼈다.

"나는 삼호족과 하는 교역으론 도장의 경비를 절반도 못 대오. 그래도 경비가 늘어나는 대로 계속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형님, 고맙소."

양신은 그런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걸사비우가 백산부의 백장과 함께 어두운 표정으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문주님이 대막불과 나눈 얘기를 전부 들었습니다."

"그런가?"

양신은 두 사람을 데리고 도장으로 가서 마주 앉았다.

"비우, 자네가 얘기를 들었다면 그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다."

"모든 문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걸사비우의 말에 양신은 반문했다.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기에 그러는가?"

"문주께선 대아를 위해 소아를 접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새삼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에 백돌부를 다녀온 뒤 문생들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기에 그러는가?"

"문주님을 중심으로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양신은 내심 안도를 하며 보람도 느꼈다.

"나로선 고맙고 흐뭇하지만 왜 그런 분위기가 되었는가?"

"백돌부의 추달 대막불 때문입니다."

"추달 대막불 때문이라고?"

"개인적인 야망에 눈이 어두워 삼호족을 고구려의 종으로 만들려고 했고, 문주님을 살해하려 일로 극도로 분개하고 있습니다."

걸사비우의 말을 받아 백장도 입을 열었다.

"문생들 사이에선 이런 결의를 하자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결의를 하자는 것인가?"

"갈사무문의 문생들은 소속을 떠나 총결속을 하자고 합니다."

"총결속을 해서 뭘 하겠는 것인가?"

"문주님을 받들고 삼호족의 통합왕조를 세울 것을 주장합니다."

"나를 받들고 삼호족의 통합왕조를 세운다고?"

양신은 반문하며 백장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백장, 문생들의 분위기가 그렇다면 자네 입장은 어떤지 듣고 싶다."

백장은 그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저는 아버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 드리겠습니다. 문주님은 문생들에게 검술만 가르치지 않고 삼호족의 자의식도 높여 주셨습니다. 문생들을 끔찍이 아끼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보답도 바라신 게 없습니다. 반면에 대막불님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문생들에게 충성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삼호족의 통합왕조를 건설하는 덴 도리어 방해자가 될 뿐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양신은 마음이 놓이는데 걸사비우가 입을 열었다.

"속말과 백산 양부의 문생들은 이미 단합 대회를 갖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그에 대해 백장님은 대막불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까지 답변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없습니다. 저는 허락을 받지 못할 경우 백장님과 더불어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결심했습니다."

"단합 대회를 열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문생들 전부가 바라는 열망을 합쳐서 이뤄내기 위함입니다."

"문생들이 바라는 열망이란 건 또 어떤 것인가?"

"삼호족의 통합 왕조 건설입니다."

걸사비우의 말에 백장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통합왕조 건설할 인물은 삼호족에서만 나오란 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가 힘들뿐더러 누구든 달성할 수가 있는 분이 필요합니다."

양신은 백장의 말을 듣고 전에 돌지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문생들의 마음에는 남3부 대막불님들은 전부 배제되었습니다."

백장의 말을 듣고 양신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장은 대막불님의 자제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말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을 일일세. 대막불과 4촌 지간인 비우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저 역시 대의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저와 백장님은 이미 상의를 끝냈습니다. 함께 마음을 합치기로 결의를 했으므로 의심치 마십시오."

양신은 침묵만 하고 있는데 걸사비우는 말을 이었다.

"문생들은 문주님만이 혁신을 주도해서 삼호족의 통합 왕조를 세울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에 대한 문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모두의 뜻이 그렇다면 나로선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겠다. 앞으로 삼호족의 분열과 혼란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나는 모두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겠다. 거기엔 두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문주님의 명을 받들고 적극 돕겠습니다."

"문주님에 대한 문생들의 믿음과 지지는 매우 큽니다. 모두는 이미 대막불님들관 거리를 두려고 하므로 적극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좋다! 그렇다면 나로서도 해둬야 할 말이 있다."

"어떤 말씀을 하시렵니까?"

"모두는 삼호족 통합왕조를 남3부에 국한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나는 다르다. 진정한 삼호족 통합은 7부를 한데 묶는 데 있다."

"문주님의 말씀대로 하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힘들 일임은 잘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의의가 없다."

"남북은 교류조차가 없는 사인데 어떻게 기대를 하겠습니까?"

"그 일은 지금부터 내가 추진을 하겠다. 그러므로 양부의 문생들은 전부 힘을 합쳐서 나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 함께 이룩해 보자."

"저희들도 힘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에 대한 지시를 해주십시오."

"그 문제에 대해선 좀 더 연구를 해본 뒤 자네들과 논의를 하겠다."

양신은 그때부터 북3국의 갈사무문에 둔 보위부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건 걸사비우와 백장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양신은 속말과 백산부에도 설치하겠다는 말을 했다.

"문주님, 양부에도 보위부를 설치하신다면 앞으론 양 무문에 갈사 상단을 만드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양부에 상단을 만드는 것은 추이를 보고 나서 하겠다."

양신이 그런 대답을 하는 것은 양부의 대막불들이 꾸린 기존의 상단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말갈족은 수림지대가 생활의 터전이라 숲에서 채취한 약제(藥劑)와 강에서 잡는 물고기 등밖엔 변변한 물화(物貨)가 없는 편이었다. 때문에 그걸로 구려촌 상단이 가져오는 물자와 겨우 바꾸는 게 고작이라 별로 큰 이득을 챙길 게 없었다. 그런데 무문들까지 상단을 꾸리게 된다면 유지해 나가기가 힘들다는 판단들이었다.

"양부의 무문에 설치할 보위부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고자 한다."

"특별한 임무란 어떤 것입니까?"

"무기를 제작하는 일이다."

"문주님, 무기를 제작한다고 하셨습니까?"

"양부에선 전처럼 화살을 생산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문주님, 그러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전에 고구려는 화살촉을 공급해 주어서 가능했던 일인데 철정을 구하기가 쉽겠습니까?"

"나는 화살촉을 독자적으로 제작할 생각이다. 지금은 전과 같지 않아 철정을 여러 군데서 구할 수가 있다. 그 문제부터 해결을 할 것이다."

걸사비우와 백장은 그 말에 여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앞으로 고구려의 침공을 받게 될 판이라면 무기를 만드는 일은 중요한데 대막불들한텐 기대조차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삼호족 백성들이 화살을 제작하면 국방력을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되지만 생활에도 보탬이 될 수익을 늘일 수가 있게 하련다."

"문주님, 전에는 화살을 고구려가 사들여 줘서 수익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국방력을 강화시킬 제작인데 무슨 수익을 낼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고구려가 하지 못하게 된 무기 장사를 해서 수익을 낼 계획도 세우고 있다. 판매할 곳을 찾고자 서역 땅을 돌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서역 땅 어디에 화살을 팔 데가 있겠습니까?"

"전엔 고구려가 화살을 동돌궐로 넘기고 동돌궐은 서돌궐로 넘겼다. 그런 뒤 서역 땅에서 팔렸지만 나는 처분할 곳을 찾으려고 한다."

양신은 그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도 밝혔다. 그리고 걸사비우와 백장을 속말과 백산부의 보위부 부장으로 임명했다.

"두 사람은 보위부 부장 역할을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

두 사람은 각기 힘찬 음성으로 대꾸했다.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저도 잘 해낼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양신은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당부를 했다.

"두 사람은 문생들의 결속으로 집단화된 힘을 발휘하게 해 주게."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북3국의 갈사무문 문생들은 지금 집단화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양부도 앞으론 그쪽과 유대관계를 맺어 협조체체가 이뤄지게 하고자 한다."

양신의 대답에 두 사람은 무겁게 고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은 집단화된 힘을 발휘하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은 속말이나 백산부의 문생들은 대막불의 휘하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양신은 그런 말을 하고 나서 걸마루와 수노가 그 의미를 알아듣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의문이었다.

갈사무문의 문생들은 어디나 추장의 자제와 인척들은 소수인데 반해 백성들의 자제들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백성들이 결속해서 큰 세력화를 이루게 되면 대막불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문생들이 양신에 대한 추종 세력이 될 경우 걸마루와 수노는 대막불의 위상 추락은 면치 못할 일이었다.

백장이 무겁게 입을 떼었다.

"문주님, 앞으로 대막불은 보위부에 간여를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가? 나도 보위부 부장들은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양신의 단호한 대답에 걸사비우와 백장은 무겁게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삼호족 백성들이 전처럼 다시 화살 제작을 하게 만들겠다."

"그 말씀 정말이십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고구려에서 화살촉을 공급해 줘야 가능한 일인데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화살촉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제작을 하게 하겠다. 철정 문제는 전과 같지 않아 여러 군데서 구하면 해결을 할 수가 있다고 본다."

걸사비우와 백장은 삼호족이 고구려 침공을 받게 될 참이라 여간 관심이 크지가 않은데 양신은 또 다른 말을 했다.

"삼호족 백성들이 화살을 제작하면 국방력을 강화시킬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도 보탬이 될 수익도 늘릴 수가 있어 일거양득이 된다."

"문주님, 전에는 고구려가 화살을 사들여 줘서 수익을 낼 수가 있었으나 우리의 국방력을 강화시키려는 제작인데 무슨 수익을 내겠습니까?"

"나는 지금 고구려가 못하는 화살 교역을 하려고 한다."

"고구려를 대신해 어떻게 화살을 교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판매할 곳을 찾고자 곧 서역 땅을 돌아볼 계획이다."

"서역 땅에선 화살을 팔 데가 있습니까?"

"지금 그쪽에서도 나라들 간에 전쟁이 심하다. 고구려는 화살을 동돌궐로 넘기는데 그쳤다. 동돌궐은 화살을 다시 서돌궐로 넘겼고 서돌궐이 다른 나라에 팔았다. 나는 서역 땅에서 처분할 곳을 찾으려고 한다."

양신은 그에 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걸사비우와 백장에게 앞으로 속말과 백산부에서 화살 제작과 관리 감독 임무를 부여했다. 그런 뒤 북3국의 보위부가 하는 일을 설명했다.

"두 사람도 북3국의 보위부가 하는 일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에 속말과 백산부에 보위부를 두지를 못한 사정은 두 사람도 알만한 한데 결국은 양부의 무문에도 보위부를 두기로 결정을 내렸다."

양신의 말에 걸사비우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론 북3국의 보위부는 국주들이 간여를 받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부에 설치될 보위부는 대막불이 간여를 하게 됩니까?"

"못한다. 오늘로 두 사람을 양부의 부장으로 임명을 하겠다."

두 사람은 그 말에 자세를 바로 했다.

"두 사람은 잘 해낼 수가 있을 것으로 믿겠다."

양신의 말에 두 사람은 각자 힘 있게 대꾸를 했다.

"힘껏 하겠습니다."

"저도 잘 해낼 수가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좋다. 문생들의 단합 대회를 열고 그 자리에 참석을 하겠다."

이틀 후 양신은 비우와 백장을 대동하고 속말부와 백산부의 접경 지역에 모인 문생들 앞에 나타났다. 양부의 문생들은 열렬한 환호성을 지르면서 문주를 맞아 주었다.

"나는 삼호족의 통합 왕조를 세우겠다. 나는 제군들의 힘이 필요하고, 모두는 힘을 합쳐서 상생의 길을 뚫고 꿈이 실현되길 바란다. 나와 함께 뜻을 이룩하겠다면 주먹을 높이 쳐들어 봐라."

양신의 말이 떨어지자 전원이 주먹을 쳐들고 또다시 함성들을 질러댔다. 문생들은 백돌부 대막불이 문주를 죽이려고 했던 사실에 모두는 극도로 분개하며 반감이 절정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문생들은 백성들의 자제들이었다. 검술로 남을 제압할 힘을 지니게 되자 우월감이 생기고 출세를 하겠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새로운 힘으로 부상을 한 양신을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군들이여! 모두가 고맙고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날 단합 대회를 마친 뒤 모두는 회식 자리를 가졌다. 거기서 문생들은 속말과 백산부에도 보위부가 생기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는 열광을 하면서 기대를 하게 되는 점도 있었다.

그것은 북3국의 문생들이 전부 철 장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앞으론 자신들도 지니게 되길 기대하며 양신을 받들고 통합 왕조 건설에 역군이 된다면 장수로 출세를 할 수도 있다는 의욕에 불탔다.

이튿날 양신은 걸사비우와 백장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북3국을 돌면서 보위부 부장들과 낯을 익히게 하고 교류를 갖게 하려는 것이었다. 일행은 두막루를 시작해서 실위국과 지두우를 거치는 행정을 시작했다.

북3국은 이미 화살 제작에 착수를 하고 있었다. 두막루의 야장방에선 순태가 화살촉 제작을 맡았고, 실위국에선 사금 채취를 더 많이 했고, 지두우에선 고구려의 철정 수입을 늘려 나갔다.

걸사비우와 백장은 북3국의 보위부 부장들을 통해 자신들이 앞으로 할 일들을 배웠다. 또 공동으로 추진할 일들과 협력관계 등을 논의했다. 그 결과 이젠 5국의 보위부가 함께 결속을 하게 되었다.

양신은 그해 겨울을 호리소코루에서 머물렀다. 화살촉 제작을 진두지휘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타문은 부친의 병환이 우중해서 당으로 가겠다고 해서 목제와 함께 떠나게 해 주었다.

목제는 타문을 당의 국도로 데려다주고 나서 돌아올 땐 여양에 있는 아내와 함께 호리소코루로 돌아왔다. 양신은 타문이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목제가 호리소코루를 장악하게 만들었다.

그런 때 그동안에 수소문을 했던 소그드 상인인 에몬이 호리소코루로 양신을 찾아왔다. 에몬도 그동안 양신에 관해 여러 가지로 알아보고 있던 중 양신이 찾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오래간 만에 해후를 했고 기쁨에 젖어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양신은 에몬에 대해선 아는 게 없지만 에몬은 양신이 살아온 행적과 많은 사연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중원 땅에서 상단을 꾸려 성공을 했을뿐더러 중원은 물론 북3국과 말갈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 무문을 세우고 많은 문생들을 배출했다. 그로 인해 당은 물론 새외족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에몬은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호리소코루에 와서 전부 확인을 할 수가 있었다.

양신은 에몬과 단 둘만의 자리를 마련하고 자신이 국가를 세울 포부를 밝혔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무기교역을 할 뜻을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에몬은 그런 양신의 말이 허황되게 들리지가 않았다. 나라를 세우겠다는 사람을 생전 처음 보는 터이나 그런 일을 충분히 해내고 남을 특별한 인물로 보고 큰 흥미가 큰 데다 인연도 있어 돕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새해를 맞자 서역 행을 위해 함께 호리소코루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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