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치한 삶이 좋아 Sep 24. 2022

서방님은 놀이터에서 '쉼'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여름의 끝자락이 아쉽다!

나이들수록 부부가 같은 취미를 즐겨야 한다고들 하지.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 결혼생활이 평행선으로 이어진다해도 당사자들이 괜찮다면 된다고 생각해. 정답이 이거라고 명확하게 짚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해. 생김이 다르듯 기준도 다를 것이고 만족도도 다를 것임에도 다수가 마치 짜여진 대로 살아가야 함은 나는 견딜 수 없어. 그래서 갱년기를 지나가고 있는 나와 남편은 어쩜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가고 있는지도 몰라.


우리 부부는 여지껏 생산적인 것들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도 쏟아 부었지. 동상이몽을 꾸리듯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걷기만 했어. 그러다 부작용이 난거야 얼마전에. 장성한 자식들이 각자 성인의 길로 들어서는 즈음부터 20년 이상 왔었던 길과는 다르게 가야한다는 걸 알아야 했어. 때마침 찾아온 갱년기라는 것도 한몫하긴 했구. 나도 남편도. 남자가 아저씨가 "갱년기를?"이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할거야. 예상치 못한 혹독한 갱년입문기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여성갱년기보다 더하다고들 할거야. 나의 남편도 그랬으니까. 무방비로 찾아온 중년의일탈은 한동안 서로 충돌하느라 넋놓고 살았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었음에도 그걸 모르고 당황하고 낯설음을 온전히 겪어내야 했어. 하긴 미리 알았더라도 생애 주기에 따른 심신의 변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사춘기처럼. 


절벽 앞에 놓이니 절박한 생존을 건드리는 세포들이 내 몸안에서 꿈틀거리더라구. 이건 내 일이구 우리 부부의 일이니 오롯이 맞춤의 기준은 우리였어. 여기저기 두드리다간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듯 혼선만 있고 해결의 실마리는 잡지 못할 것 같았어. 일단 나는 존칭을 쓰기로 했지. 나와 남편은 동갑내기 대학친구임에도. 간단한 인삿말도, 오가는 문자나 카톡창에도 존칭을 쓰기 시작했어. 시간이 지나면서 느낌은 예상 밖으로 좋았어. 얼음같던 남편은 더이상 차갑지도 벽같지도 남의 편 같지도 않았지. 남편을 존중하고 조심스레 대하려는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오히려 나를 아끼고 나에 대한 배려가 더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 나의 진정성있는 대처가 통한 걸까. 이런게 나비효과일까. 아무튼 나의 전술은 잘 통한 모양이야. 둘이 나누는 대화의 숫자도 점점 늘고 이젠 온유하기까지 해. 


좋은 일은 줄사탕처럼 온다더니 이젠 우리 부부는 동행나들이로 점점 거리를 좁히고 있는 중이야. 특별히 각자의 일정이 없는 날엔 한적한 계곡으로 차를 타고 나가지. 주중이라 그리 복잡하지 않은 계곡물에 남편은 어항을 놓고 나는 사진을 찍으러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려. 따로또가치. 몸은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느라 제법 고단하기도 하지만 머릿 속이나 마음은 '쉼' 중이야. 대단히 역설적이긴 해. 그 시간만큼은 '일방통행'이기도 하지. 남편은 물고기 찾아 물 속을 뚫어지게 보고, 나는 그런 남편을 찍느라 바라보고 있어. 어떤 느낌인지 말로 굳이 하지 않아도 알거야.


낯설음을 견뎌내는데 주저하지 말고 작은 거라도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 갱년기가 불편하지만 생애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