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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Mar 08. 2023

역주행을 시작하다

사랑1

오늘도 나는 검지 손가락 끝마디 가득 로션을 떠서 얼굴에 점점이 찍는다. 

이마, 왼쪽 볼, 오른쪽 볼, 턱, 인중, 콧등 위에 콩알만 하게 한 덩이씩 얹어 놓는다. 

힘을 주며 문지르면 피부에 자극이 된다고 하니 부드럽게 어루만지 듯이 로션을 동글동글 펴주며 바른다.

손끝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이 온다. 그리곤 톡톡 두드려 준다. 

평온한 표정이 나의 반려인의 얼굴에 한 가득이다.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반려인에게 내가 피부케어랍시고 하는 일이다. 피부케어라고는 하나

거창할 것도 없다. 화장솜 한 장에 클리어 스킨을 넉넉히 적셔서 세면한 반련인의 얼굴에 슥슥 문지른 후 

로션을 바르거나 수면팩을 도포해 주면 그걸로 끝이다. 가끔 모공팩을 해 주기도 하고.


여태껏 화장품으로 나의 얼굴에 정성을 쏟았음에도 거울에 비친 내 피부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노화려니 했다. 탄력은 떨어지고 주름은 깊이깊이 줄을 그으며 새끼 치듯 늘어만 간다. 서글프다. 

그런데 반려인의 안면 상태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이유가 뭐지.

푸석푸석한 대지가 단비로 촉촉해지고 활성화되는 것처럼 윤기가 난다. 거짓말처럼. 

세안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피부 관리였고 자신이 남성용 화장품을 구매하던 선물로 받았던 상관없이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 온전하게 보관만 해 두었다가 결국엔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것이 못마땅해 마눌로서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그의 기질을 고쳐 보겠다는 심산이니 그것도 못할 짓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니까.

목마른 놈이 샘을 판다고 했던가. 

내가 해주마 하니 처음엔 성가시다 했다. 반려인도 길들이기 나름인지 차츰 순한 양이 되어간다.

나의 손길이 민망하지 않게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멈추어 선다. 단 2분.

그리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듯 반려인의 볼이나 이마에 쪽 해 준다. 좋은지 가만히 있는다. 


플라세보 효과였을까. 마음으로부터 뇌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 뇌에서도 몸에 좋은 호르몬을 분비하고 

그 호르몬으로 인해 삭막해져 가던 두 인간이 개조되고 있었다.

전보다 더 강한 긍정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경이롭지 않은가.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일로 적잖이 놀라고 있는 중이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 부부 사이는 대체로 시들시들해진다. 

마른 대지가 쩍쩍 갈라지듯이

모래뿐인 사막처럼

줄에 걸린 시래기처럼 건조해진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진다. 중년 부부 관계가 대체로 이렇더라.

억지춘향스런 측은지심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노년으로 접어들어서야 기대해 볼 수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매너리즘에 빠지고 카트르시스도 없어지니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다는 결혼 서약의 다짐은 온데간데 없어진지 오래다.

각방을 쓴 지 꽤 되었다고 한다. 졸혼을 생각 중이라고 한다. 

이식이 삼식이 영식이라는 말로 은퇴한 남편들이 집에 머무는 것을 싫어한다. 

낙이 없다며 밖으로만 나가려고 한다. 

집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다고 울타리를 벗어나려고만 한다. 

같이라면 좋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따로국밥이 되기도 하고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도 한다.

외로워 죽겠다 몸부림칠지언정 부부가 함께하길 꺼려한다. 

잘못되었다고 질타할 수도 없다. 이 나이쯤 되면 그러려니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시간을 넉넉히 품고 있는 숲은 편안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햇빛을 차지하기 위한 나무들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존을 걸고 치열하게 전쟁 중인 것을 느낄 순 없더라도 키 작은 나무들의 성장이 더딘 것을 보면 맞는 것도 같다. 키 큰 나무가 상대적으로 높게 높게 뻗어가는 것과는 달리. 

물론 종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중년 부부의 삶과도 닮아 보인다.


거실 화초 이파리가 시들시들하고 성장을 멈춘 듯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 화초 관리를 게을리한 탓도 있지만

내가 아는 게 없었다. 가끔씩 물만 주었다. 그저 생존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죽어도 어쩔 수 없다 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설탕물을 주면 화초의 신선도가 더 오래간다는 내용을 우연히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설탕 2ts 탄 물을 주고 하룻쯤 지났을까. 생기가 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니 줄기 표면을 뚫고 나온 돌기들이 무성했다. 두세 번 더 설탕물을 주니 이파리 새순들이 뾰족뾰족 올라온다. 

설탕의 효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이렇게 하면 나와 반려인의 맹숭맹숭함도 달달해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탕물처럼 달달하게 반려인에게 스킨십을 해볼까 하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선뜻 손 대면 톡하고 터지듯 반려인이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않을까.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라고 할까 봐 주저주저했다. 나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이미지 트레이닝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해 보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반려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자기야 자기 얼굴은 누구 꺼?'

'...'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 자기꺼라고 해야지. 나는 내꺼가 이뻤으면 해. 세수하고 오면 팩 해줄게'

나이 먹은 마눌이 코맹맹이 소리를 하니 남편의 반응은 어처구니없어하면서 마지못해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온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발 마사지까지 세트로. 


거칠고 굳어 있는 남편의 발을 보니 30여 년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나 자신을 갈아 넣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가족을 위해 이 조그만 발로 얼마나 동동 거리며 다녔을까. 자신이 무너지는 걸 돌보지도 못하고 열심히 살아온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이제는 내가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겠다 생각하며 날마다 출근길에 로션 발라주고 퇴근한 후 마사지하면서 남편의 몸을 내 맘대로 만지고 있다. 

손길이 닿을수록 남편은 더 고분고분해진다. 나에게 건네는 말도 톤이 바뀌었다. 따뜻한 온기가 묻어 있다.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그렇고.

그래서 나의 반려인.


콩깍지가 끼어 있었던 연애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들이 하도 많아서 저속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제 가던 길 U턴 했으니 멈추지 않으면 되겠다. 

달랑 둘이 남아 휑하기만 한데 38선 긋고 산다면 무슨 재밈겨. 

재미있게 살아도 부족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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