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2
썰물로 드넓은 바다가 멀찍이 물러나게 되면 뻘 속 것들 드러나
그것들 감추고 싶어도 감추어지지 않는 것처럼
아들과 딸이 다녀간 후 잠시 어미의 속내도 그와 같다.
텅 비어 버렸다.
또 다른 채움이 이어지니 괜찮겠지 하겠지만 아니다.
그것이 그리움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그 마음 더 커진다면 못내 슬픔이 되고야 만다.
못내 외로움이 되고야 만다.
말은 해야 맛이라지만
보고 싶고 듣고 싶고 그립다는 말은 사뭇 조심스럽다.
자주자주 보자고
자주자주 오라고 하고 싶지만 사뭇 조심스럽다.
이미 어미 아비의 품을 떠나 자신들의 둥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아들과 딸에게 그것이 족쇄가 될 것이란 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내가 별스럽다 할 수도 있겠지만.
아들과 딸의 고교 졸업 후부터 시작된 어미로서의 마음 준비였고
그것이 내가 아들과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제법 단련도 되었으련만 아니다.
잠시 머물다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비워진 공간이 반복적으로 공허해지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어미라면 아비라면.
하하 호호 시끌시끌 거리던 소리가 귓가에 되새김질 치면
어김없이 눈물샘이 촉촉해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덤덤해지려나.
덤덤해질 수는 있을까. 아니다.
내 속에서 열 달을 채워주던 개체였고,
내 손길로 영유아기를 보내었고,
내 입김으로 청소년기를 거쳐 간 아들과 딸의 자리를 끝내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으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힘이 드나 보다.
피골이 상접한다 해도 기꺼이 그 힘듦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지만.
머리 커지고 나이 먹었다고 자신의 주장이 세지는 아들과 딸에게
어미 된 도리로 사족을 다는 것, 삼가려 한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알려 줌은 아들과 딸이 성년식을 치르고 나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기에
내게 요청하지 않는 한 아들과 딸에게 해야 하는 말은 군더더기일 뿐.
이미 작아진 옷을 입히고는 잘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는 일이다.
온고지신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니 어미 아비의 말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반가움에 재잘거리는 것만으로도
그저 사사로운 이야기에 재미있어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개그스런 말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아들과 딸의 얼굴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식사 후 한 잔 두 잔 기울이며 소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어미 아비에겐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그거면 되었다.
아무렇게나 차려진 밥상,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반찬이어도 늘 맛있게 잘 먹어주는 아들과 딸이 고마워
장 볼 때는 일부러 좋아하는 것으로 구입하다 보면 실상 어미 아비가 좋아하는 식재료는 장바구니에 없다.
먹어서 배 부르고 포만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먹을 아들과 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먹은 것처럼 배가 부르고
더 준비할 게 없나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배를 채운다.
턱없이 부족한 조리 능력을 야속해하며.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어찌 들까 해도 번쩍 들어 올리는 어미의 팔은 그 순간 뽀빠이의 팔이 된다.
지아비를 위한 것이었어도 그럴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니다. 그 때라면 여리디 여린 나약한 팔이어서 무 하나 들기도 힘겹다.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면 돌아가는 손에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아 정신없이 집 안을 들썩거린다. 이쁜 도둑으로 보이니 다 허용하고 내 줄 판이다.
무엇 하나 아까운 것이 없고 더 주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어수선한 종종걸음을 한다.
그런 어미가 안쓰러운지 괜찮다고, 다음에라는 말이 날이 갈수록 횟수가 늘지만
아들과 딸이 가져가려는 것들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또 쟁여 둔다.
어미 아비 자신을 위한 구매는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면서도 과소비인 듯해 늘 마음이 쪼그라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늙어가나 보다.
이상할 것도 없지.
지치고 힘들 때 찾아 와 잘 쉬다 회복되어 갈 수만 있다면
좋은 일, 기쁜 일 맘껏 자랑할 수 있다면
그러한 자리가 어미 아비의 품이라면
좋겠다. 더할 나위 없이.
극성스럽지 않게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아쉬운 여운은 아쉬운 대로
기다리고 사랑하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