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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Mar 27. 2023

단 한 번도 쉽지 않은 출사

사진을 배우며 1

사진을 찍는 일은 글을 쓰는 일만큼 내겐 어려운 일이다.

생계가 달린 일도 아닌데 살살하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의 머리는 공백 상태 모드.

육하원칙에 맞게 생각하려들면 공백의 농도는 더 진해진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나.

없을 수도 있다.

홍시 맛이 어떠냐고 묻는 말에 홍시 맛이 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적절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왜 사진을 찍고 배우기를 좋아하는지를.


주 1회 참여하는 사진 수업 내용에 맞게, 주어진 과제에 맞게 찍으려니 어려웠던 걸까.

단 한 번도 수월한 적이 없다.

그래도 가끔 맘에 흡족한 이미지를 건질 때가 있어 그걸로 나의 노고에 위안을 삼기도 한다.


적당한 피사체를 선별하거나 현장을 세세히 살펴서 프레임을 짜고 구성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일은

어찌 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눈을 지그시 감고 작은 창으로 보는 순간은

온전히 두 눈을 뜨고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

그 전혀 다른 세계를 이미지로 만드는 일에 어쩌면 매료되어 셔터 누르는 일에 손을 놓지 못하고 있지는도

모른다.


사고의 발상이 유연하면 그나마 수월할 텐데 그런 재주도 능력도 부족하니 힘이 드는 모양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을 내가 끌리는 대로 자르고 붙이고 하는 재단이니 힘들 수밖에.

이미지 한 장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니 힘들 수밖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야 하니 힘들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참여하는 것은 좋으니까.

아는 만큼 보이니 그 끈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셔터 소리에 끌림을 당한 순간부터 좋았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카메라를 사 주기 전까진 작동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

그렇다고 기계치인 내가 현재 카메라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을 리 만무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장난감으로써 손색이 없다.

참을 수 없는 카메라의 무거움이 나를 짓누르기 전까지 가지고 놀 것이다.

그림을 좋아해 직접 그리는 것은 나에겐 그림의 떡.

대신 이미지를 담는 것은 사진으로 가능하니 내가 하기에 괜찮을 듯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일이 되긴 했지만.

늪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나는 그것을 즐기고 있다.


어쩌다 지인의 손에 이끌려 들어선 배움의 길은 마력이었다.

전문적인 소양을 지닌 이로부터 내게 흘러드는 양분으로 그 세계에 눈을 뜨게 했고,

주부로서만 가던 인생 여정이 덜 단조롭게 되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소소한 일상에 대한 회의감이나 지루함보단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일상을 접할 수 있어 그래서 지금껏 하고 있는가 보다.

사진을 찍을 때만 자세히 보는 것만이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알아챌 땐 신기함에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사진전에 가서 사진을 미약하게나마 읽을 수 있으니 더 좋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들의 작품을 보러 가더라도 적어도 맹탕 관람을 하지 않으니 수지맞는 일이다.

보는 것만큼 나의 눈이 담아내는 능력치가 커지고 있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흉내라도 내보고자 하는 일로 소일거리 삼으니 이것만으로도 일상의 덤치곤 내 입장에선 과분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용을 쓰고 끙끙거려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속상할 땐 잠시 찍는 것을 멀리 하는 게 상책이라 여기며 나 스스로와 타협을 할 때도 있지만.

작심삼일도 계속되면 괜찮을 듯싶다.  


날이 화창하니

날이 흐릿하니

날이 촉촉하니

날이 매콤하니

내 맘을 대변할 이미지 찾아가는 일에 튀어나온 돌부리를 만나더라도

중단하지 않길 바라며

계속 늪에 빠지고 싶다.

허우적거림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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