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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Mar 27. 2023

오브제 찍으러

 사진을 배우며 2

이태원 앤틱 가구 거리로 출사를 나갔다. 봄 햇살이 가득한 거리는 활기 있어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 다녀 갔을 땐 냉랭한 기후 탓도 있었겠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상권이 힘을 잃어 가는 기운이 느껴져서 마음이 좋지 못했었다.

이 나라 어느 곳 하나 편한 곳이 있겠냐만은

이곳을 흐르는 악순환의 돌고 돌음에 잠시 머물다가는 길손마저 서글픈 것은 

믿고 싶지 않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곳.


르네상스와도 같았었던 몇 년 전, 그때의 영화를 이태원 거리가 되찾을 수 있을까.

오늘 느끼는 활기가 주는 답은. 글쎄였다.

3년이라는 공백기가 이미 사람들의 문화 트렌드를 바꾸어 놓았고,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그들이 하지 않으려는 것보단 

회생할 수 있는 기력마저 빼앗긴 현실에 놓여 있으니 어떤 마중물조차 효력이 없어 보였다.

나의 아주 작은 바람이 있다면

요즘 일찍 개화된 꽃들을 보며 그로 인해 즐거움이 찾아든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 듯이 

예상치 못한 마중물로 이태원 거리에 마구마구 펌프질되어 솟구쳤으면 한다.

생명수 담은 링거주사라도 꽂아 주고 싶다. 그곳에.


*이태원 앤틱가구 거리. 서울 도심 속 몽마르뜨 언덕이라고도 함.

1960년대 주한미군이 철수하며 남긴 가구들을 상인들이 매입하여 판매한 것을 시초로 한다.

이 무렵 각국의 대사관이 또한 용산에 위치해 이태원동을 중심으로 미군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이 밀집되었고, 앤틱 가구 거리 상인들은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적의 가구와 소품을 취급하게 된다.

고가의 장식품뿐만 아니라 생활에 밀접하고 실용성 있는 물건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성장을 거듭해 2015년 '서울특별시 미래 유산'으로 선정되었으며 

단순히 장터가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곳임에도 이차선 도로는 그리 넓지 않았으며, 인도 또한 두 세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적당하다고나 할까.

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샵들의 판매 물품들이 바깥으로 진열되어 있어 볼거리도 다양했다.

유럽스런 엔틱한 그릇들, 빈티지제품, 가구들, 앙징맞은 소품들 등등.

이국적인 정취에 잠시 넋 놓고 걷기에 좋은 거리였다. 

눈을 타고 들어 오는 레트로적인 것들이 있어 짧지만 달가운 시간의 역행을 맛볼 수 있는 거리였다.



촬영 과제는 오브제.

피사체 자체로서의 삶을 미적으로 표현하기

피사체를 재현하기

피사체를 배경, 현장성 배제하고 찍기

피사체를 평면적으로 표현하기

피사체에게 상징성을 부여해 찍기. 메타포적으로.

*메타포란 은유, 비유를 의미하며

개념, 행동이나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이다. 즉 낯선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익숙한 개념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 / 네이버 지식 백과 발췌



코로나19로, 참사로 암흑 터널에 갇힌 채 고통스러웠을 상인들이 이제는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피사체의 이미지를 담아 보았다.

기품 어린 예쁨을 담아 피사체를 찍어 보려 애를 썼다.

번화했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 거리를 찾길 학수고대하고 있을 상인들의 마음을 담고 싶었는데 

그것은 내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미지를 읽는 이의 몫이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소품들 찍느라 걷는 맛이 느껴지는 이미지는 담지 못했다. 

하긴 화창한 여유로움이 있는 거리를 담는다는 것은 나름 아마추어 사진사인 내가 하기엔 함량미달.



어느 로드샵 앞에 놓인 노란 꽃에 끌려 찍고 있다가 밖으로 나온 주인장 덕분에 

화들짝 놀라고. 죄인처럼 쩔쩔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터. (내가 잘못한 건가??)

주인장은 나에게 뭘 찍느냐 묻는다. 

노란 꽃이 이뻐서 찍는다 했다. 

보여달랜다.

졸작은 아니었던지 자신을 한 번 찍어 보란다. 난감하네 난감하네.

사실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은 내가 아주 자신 없는 분야였고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그걸 하라니... 그 양반 소유의 물건을 허락 없이 찍은 죄, 빼박이었다.

죗값 치른다 셈 치고 한 두 컷 찍고 어떠냐 했더니 계속하란다. 으이구.

스무 컷 정도 찍고 나서야 상황 종료. 

주인장이 내민 명함에 적힌 메일로 보내드린다고 하고 똥줄 나게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3일 후 전송 완료. 내 파일에서 완전 삭제^^)

자신의 초상권은 걱정 안 하시고 나를 믿어 준 것은 감사하나

더 잘 찍어 주지 못해 살짝 아주 살짝 안타까웠다. 

그 거리를 다시 가더라도 그곳만은 잘 피해 다녀야겠다. 고 굳은 결심을 함.



가구 거리라 그런지 특별히 의자가 많았다. 다양한 모양을 갖춘 의자들이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담기도 

낡고 바래진 것에서 나오는 멋을 담기도

주인공에서 살짝 비켜 선 조연 같은 의자도 담아 보았다.




주변 상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거나 목례라도 했다.

찍고 나선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도 빼먹지 않고.

나 말고도 우리 팀 말고도 수많은 카메라맨들이 왔었을 텐데 싫은 기색하지 않은 그분들에게 감사했다.

그분들의 무관심은 나를 향한 최고의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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