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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Sep 13. 2023

뼈야 미안하다

늦었지만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함.

기어코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2년 전 경고를 받았었음에도 신경을 쓰지 않은 탓이다. 설마 설마 한 것이 화근이며, 누굴 탓하며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건강 검진 결과지를 본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더니 두뇌 회로가 엉키기 시작했고, 심장은 가파른 경사로를 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엔진처럼 거친 소리를 내었다.

'내가 골 다 공 증이라니!

어쩌지.

어쩌다 이 지경이.

방치하고 살아온 대가치곤 너무 혹독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무심결 입 밖으로 나왔다.

억울했다.

'바쁘게 살아오느라...'라는 허접하고 식상한 말로 스스로 덤덤한 척 애쓰기도 싫었다. 어떠한 변명이라도 좋으니 해 볼까 했으나 그마저 나를 더 한심스럽게 만들었다. 

괜한 짜증만 치밀어 오른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느라 내 몸이 부석해지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는지...

깊어 가는 계절 아래 지면으로 떨어진 잎새들이 흡사 나와도 같았다. 

바스락거리며 작은 바람에도 조각조각 힘없이 부서져 버리는 모습이  내 뼈들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한다면 나의 마음이 진정이 되려나.

아니다.

"뼈들아 미안하다"

이 한 마디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하고 보니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의사로부터 어떠한 병증을 통보받고 처절한 심경으로 돌아 나오는 사람들의 애통함을 말이다.


그렇게 엉망인 채로 하루를 보냈다.

정신을 가다듬고 건강 검진 결과지를 들고 나의 거주지 인근 내과로 갔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니 가까운 곳에 적을 두고 정기적으로 체크를 받기로 했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 설명 덕분에 절망스러웠던 마음도 오후로 접어들면서 많이 진정되었다. 


내가 살기 위해선 지나간 과오를 빨리 잊는 게 좋다는 평소 나의 지론답게 내일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최소한 어이없는 골절로 일상을 무너뜨리진 말자라는 약속을 나 자신과 다부지게 손가락 걸고 지문도 찍고 복사도 했다. 발끝이 다다른 낭떠러지로 발을 내딛지지 말고 뒤돌아서면 살아날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비타민 D주사 맞고, 한 달에 한 번 먹으라는 약을 처방받았다.


병원을 다녀온 후, 주변 또래들에게 나의 병증을 알리곤 그들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니 

대부분 골다공증에 대해선 나처럼 무방비인 채로 '나는 아니겠지', 혹은 '걱정은 되는데... 아직 정확한 상태는 몰라'라는 대답이 많았다.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후순위로 미루어 둔 채, 자신의 근간이 서서히 산화되고 있어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뼈가 부러진 후에야 때 늦은 후회를 분명할 것이다.

갱년기와 폐경이 겹치면서 여자들의 뼈는 빠른 속도로 엉성해진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더라도 다치기 전엔 그 심각성을 굳이 따지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아니면 자신을 돌보는 일이 어쩌면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처럼 익숙하지 않아 그냥 염려하는 일이 자신은 비켜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방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타 항목에 관한 상태 검사는 잘하고 있지만 일부러 병원으로 찾아가서 골밀도를 체크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걸 두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하나.


남편이나 자식들이 먼저 검사해 보라고 가벼운 당부라도 한다면 좋겠지만 과연 그런 운 좋은 상황에 놓이는 행운녀가 이 나라에 몇이나 될까. 내가 아는 한 양육이나 부양의 의무에서 겨우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다수가 외적인 소비에 한껏 이기심을 부릴지라도 자신의 근간을 지켜내려는 욕심은 없어 보인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서 지나온 시절을 보상받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니 살아오면서 문드러진 속내 정도는 잠시 접어두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박수를 칠 일이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당한 사람은 안다.


병원에 가도 약을 처방받는 것 외엔 다른 묘수가 없다. 긴 시간이 요구되는 회복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대부분이다. 한 달에 한 번 복용하는 약은 정확히 날짜와 복용 방법을 지켜야 하는 까딱스런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기상하자마자 공복 상태로 약을 먹은 후 1시간 동안 앉거나 누워 있으면 안 된다는 복용 지침을 반드시 따라야 하며, 혹시 일어날지 모를 위장 손상을 줄이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라는 지침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다. 복용 후 1시간이 경과하면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약을 먹은 후 집에 있기보단 밖으로 나가서 걷는 편이 나았다.

이제껏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 전신 꽁꽁 싸매고 선크림 덕지덕지 바르고 다녔는데 지금은 뼈 건강을 위해 모자로 얼굴을 가릴 뿐 살갗이 드러나는 짧은 상하의를 입고 짧은 시간만이라도 광선에 나를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유튜브에서 골다공증에 유익한 운동, 먹거리도 검색해 따르고 있는 중이다. 힘이 실리는 운동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유산소 운동보단 근육을 늘리는 운동, 제자리 뛰기를 한다. 그동안 걷기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에 체력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하지만 차츰 늘려갈 생각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나 절묘한 시점에 라인댄스도 시작했다. 한 타임 50여분 몸을 흔들고 나면 너무 개운하다. 예상치 못한 재미가 쏠쏠한 라인댄스가 점점 재미있어진다.  나이 들며 댄스와 함께하면 인생이 즐겁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부부가 같이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활동이 댄스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아니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충격적인 병증으로 삶이 고통스러울 줄 알았는데 되레 즐거울 락이 되었다. 나의 시선과 사고의 각도를 조금 틀어 보니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다. 루틴으로 시작하는 일과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잠에서 깨어나 눈 뜨자마자 텃밭으로 가서 그날 먹을 푸성귀를 잘라 온다. 물도 주고. 

동트기 전부터 몸을 움직이니 아침 식사는 당연 꿀맛일 수밖에.

충전된 몸으로 집안 일도 거뜬히 해나간다. 주부로써 해야 할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그다음부턴 내게 붙어 있던 역할 타이틀을 죄다 떼어내고 오롯이 나의 이름 걸고 하는 일에 몰두한다. 


무더웠던 여름도 끝자락이다. 드높은 하늘을 잔뜩 품고 오는 가을이 가까이 와 있는 듯하다. 내 좋아하는 사진기 들고 여기저기 활보하리란 생각에 이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사진 찍느라 정신이 팔려 배고픔도 잊고 다니느라 내 몸을 혹사시킨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며 앞으로 제 때 먹여가며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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