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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 Hayley Oct 04. 2021

국제진료센터, 나도 한번?

나의 첫 정규직 이야기: 국제진료센터 #1

 



'국제진료센터라.. 뭐하는 곳일까?' 

 처음 들어보는데 영어를 많이 구사할 것 같고, 내가 전부터 꿈꿔왔던 '해외 간호사'가 되는 길에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또한 그동안 어학연수에서, 국내에서 배우고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간호사 면허시험에 합격한 그 해 봄, 합격한 대학병원에서 웨이팅을 하면서 치과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25살 간호 졸업생은 집 근처 종합병원에서 국제진료 간호사를 구인하는 공지를 보았다.  

 

간호사 면허시험 합격 사진

 다들 그렇듯이, 나 역시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되지 않고 몇 개월부터 최대 1년까지의 공백 기간이 생겼다. 20살 이후로, 아니 사실은 그전부터 쭉 치열하고 바쁜 삶을 살던 내게 공백기란 꿀 같은 방학이 아니라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한, 황량한 벌판과 같이 끝도 없이 기나긴 시간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에 2020년은 불취업이었고, 그래서인지 대학병원에서 나를 언제 불러줄지, 내 순서는 언제 다가올지 가늠이 안 된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흔히 가는 요양병원은 너무 힘들 것 같고, 다른 알바를 하자니 간호사 면허증을 써먹을 수 없어 고민하다가 내 눈에 들어온 모병원 '국제진료센터'.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후로 향수병 걸린 듯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것을 갈망하는 나는 진로를 해외 간호사, 미군부대 간호사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지원했다. 사실 내가 사는 이 소도시엔 간호사 인력 수가 부족하고, 외국인 환자는 많으니 운이 좋으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자기소개서를 수정해서 이력서와 함께 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수일이 지났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____님이시죠? 면접 보러 오세요." 

"넵. 감사합니다. 네. 그날 뵙겠습니다."


 면접은 일주일 남짓 남았고, 병원 면접을 많이 본 적이 없어서 꽤 걱정이 되었다. 면접 당일 날에는 영어면접을 해야 할 생각에 심장이 요동을 치고 발광하며 피부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면접실에 도착했을 때는 자기소개를 달달 외우면서 호흡이 심히 불안정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하자, 진정해.'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영어회화실력은 뭐랄까.. 거지 zone에 도달한 어정쩡한 중단발 머리 혹은 시간으로 치면 오후 4시와 같다. 어학연수 1년 다녀온 것치곤 꽤 잘하고, 원어민들과 막힘없이 대화하기엔 여전히 늘 부족하다. 자막 없이 영화를 보면 50-60% 정도 들린다. 그러나 특유의 밝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국내에서 원어민 친구를 사귀는 데 꾸준히 노력하고 현재 텍사스 출신 미 공군 남자 친구를 2년째 만나고 있어, 하루하루 빠른 속도로 실력을 늘리고 있다고 자기 위로를 하고 있다. 


 면접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분위기도 좋았고, 잘했다. 우려와 달리, 국제진료팀장인 면접자가 분위기를 밝게 해 줬고, 나의 긴장을 풀어주셨다. 

 

 "자 한번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네 영어로 할까요 아님 한국어로 할까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영어로 하면 더 좋죠."

 

 나는 이상하게 면접 볼 때만큼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 한국어로 하면 자꾸 말이 꼬이고, 한국어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영어를 할 때는 마치 또 다른 자아가 나와서 나 대신 싸워(?) 주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든다. 결국, 한국어 한 마디 안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영어면접이었는데, 남자 친구와 매일 영어로 대화해서 그런가, 그저 동네 외국인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온 느낌이었다. 그만큼 그 자리가 예상외로 편하고 즐겁기까지 했다. 물론 약간의 긴장감은 돌고 있었지만. 


 면접에서 질문 중에 기억나는 인상 깊은 질문은 '대학교에서 공부했을 때, 무슨 과에 관심이 있었는지'였다.

 나는 생각지 못한 질문에 머리가 텅 빈 상태였고, 당황하여 순간 생각이 난 단어 'Pediatric'을 임시방편으로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소아과를 즐겁게 공부하긴 했으니. 그런데, 국제진료팀장님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마스크 너머 표정에서 의아함을 드러내셨다. 성인 간호의 심장내과, 정형외과 등 많은 과 중에서 하나를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일까. 어찌 됐든 애써 숨기시는 표정과 약간 동그랗게 커진 눈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국제진료팀장님은 외국에 오래 사셨다 오신 간호사 선생님 같은데, 특유의 한국인 억양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확한 영어 발음과 유창함에 존경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사람 좋은 인간미가 철철 느껴져서, 그냥 '저분 믿고 이병원 다녀야겠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치과에서 일하던 모습

 치과에서 진료보조로 일하고 있는지 1달이 겨우 넘었다. 매일 소독솜을 만들고(솜에 소독액을 부어서 스테인리스 통에 예쁘게 나열하면 되는 일), 진료 및 수술도구를 세척하고, 의사 선생님한테 진료도구를 건네주는 간단한 일들을 했었다. 사실 대학교에서 잘 안 배우는 치과 자체도 매우 신선하고 재밌었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너무 잘 대해주셔서 그만두기 아깝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간호'를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고, 로봇처럼 반복되는 일에 권태감을 느꼈었다. 

 

소독솜 만드는 과정 그린 그림


 근무를 하는 도중에, 그 종합병원 인사팀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면접에 합격하셨고요, 월급은 (    ) 만원인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4월 1일부터 나오실게요. 가능하세요?"

 "네네 가능합니다."

 

 


 전화가 온 것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합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3교대가 아닌 상근직인데 신규 간호사치곤 나쁘지 않은 월급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새로운 변화에 설레었다.

 생각보다 빨리 답변이 왔고, 나는 그 어느 때 면접 합격보다 신났었다. 

 

그렇게 2021년 4월 1일, 나는 국제진료센터 간호사가 되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할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순진하게 일단 취업했고, 

 '첫 정규직 직장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구름 위를 두둥실 날아다니듯 한껏 들떠있었다. 

 


5개월 뒤, 나는 사직서를 내고 그만두었다. 

그간 5개월 동안의 일을 함축하여 다음 글을 이어서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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