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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 Hayley Oct 11. 2021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다.

어느 간호사의 고백 #1

 나는 '간호학과' 졸업만 하면 바로 취업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국가고시' 합격만 하면 바로 간호사가 되는 줄 알았다.

지금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다. 돌아보면 한 순간이고 별거 아닌데, 

그 과정 속에 있을 때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심란한 지 모르겠다. 

'내가 잘하고 있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지금 저분이 나한테 저렇게 말하는 게 당연한 건가?' 

매 순간이 복잡하고 당황스럽다. 누가 A부터 Z까지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원하는 방식으로 못하면 옆에서 눈치 주고 혼내고 압박하고, 

 잘하면 그건 당연한 거다. 

 왜 교과서에서는 이런 걸 가르쳐 주지 않고 우리를 사회에 그냥 내보냈을까? 

 

 현재 나는 00 대학교 병원의 간호사로 입사를 한 지 1달이 넘었으나, 

 인턴처럼 병동이 아닌 외래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간호사 일을 배우는 건 아니고 

새로 바뀐 전산 프로그램을 배워서 의사 진료보조로 진료실에서 도와주고 있다. 

당연히 같이 입사한 동기들과 나는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경우지?' 싶었다. 

당연히 다른 병원들처럼 IV(정맥주사)나 환자 보는 법을 배울 줄 알았지. 

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러고 있을까?

그래도 전산을 잘 알면, 아무래도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세상이 내가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듯이, 그곳에 가면 그곳만의 분위기, 규칙, 문화가 있다. 

비단 국가, 도시, 동네뿐만 아니라 한 회사의 한 부서 마다도 그곳만의 '무언가'가 있다.

 어떤 과는 매우 바쁘고, 어떤 과는 한가하다. 어떤 과에서는 분위기가 엄숙하고, 간호사가 의사한테 쩔쩔 매고 있다. 또 다른 과에서는 분위기가 밝으며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가 비교적 덜 수직적인 구조이다. 

 

 전산 교육프로그램이 끝난 후, 2주 동안 교수님을 도와주는 새로운 전산 프로그램 도우미로 진료실 안에 앉아있었다. 사실 컴퓨터 시스템이란 게 한두 번 알려주면 모두가 금방 익숙해지고 잘한다. 

너무 나이 드신 교수님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젊고 똑똑하신 교수님들은 우리가 금방 필요가 없어지신다.

 

 뿐만 아니라, 교수님 옆에 딱 붙어 앉아있으면 환자들이 우리가 환자인 줄 알고 오해한다. 

진료실을 들어왔다가 내가 환자인 줄 알고 다시 나가려고 하는 환자들만 10명 중 8명.

 애써 전산 도우미라고 설명하고 환자를 안심시켜도 가만히 교수님이 질문해주실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이 망부석 같은 '전산 도우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힐끗힐끗 쳐다보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렇게 하루 8시간씩 2주 정도 있다 보면, 내가 마치 여기에 도움은 안되는데 자리를 차지하는 초대받지 않는 손님 같은 느낌이 든다.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유니폼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낀 게 사실 유니폼만 입었어도 환자들이 쳐다보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유니폼을 받기에는 금방 또 병동이나 특수 파트로 갈 거라서 유니폼을 주기도 애매하고(병동이랑 특수 파트의 유니폼들이 다르다), 어차피 곧 바뀔 예정이란다. 

 어찌 됐든 사복을 입고 앉아있으니 환자들도, 의사도, 우리도 불편하기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어떤 교수님은 우리를 들어오지 않게 하여, 우리는 운 좋으면 옆 진료실에 혼자 앉아있고, 운이 나쁘면 환자들과 같이 앉아있거나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있기도 한다. 

어디에 앉아있어도 불편하고 낯선 건 매한가지. 


 이렇게 인력을 많이 구축해놓은 이유는 분명 진료상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런 것 같다. 

대기업은 넉넉히 예비인력들을 구축해놓고 중소기업은 인력이 항상 모자라다. 

 내 간호사 친구들이 일하는 지역의 병원에서는 늘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간호사들이 부족하면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두세 배로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지. 그리고 결국 그만둔다.    

그렇게 점점 더 지역의 중소 규모의 병원들은 인력난으로 인해 도태되고, 서비스 질이 낮아지면 경영난에 헐떡인다. 

 내가 다니는 이 대학병원에서는 아무리 간호사들이 힘들어서 자주 그만둔다고 해도, 새로 들어 올 사람들이 많다. 나를 포함한 그 간호학과 학생 또는 졸업생들은 또한 몇 달 동안의 웨이팅 기간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에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환자들도 대도시의 대학병원이나 큰 종합병원을 선호한다. 

 의료업계 역시 큰 자본이 유리한 세상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계속 의문이 들고, 언제 '진정한 간호사 일'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 집착하게 된다. 

나중엔 직접 및 간접 간호를 지겹도록 할 텐데, 항상 마음이 급하다. 

'나도 빨리 내 친구들처럼 경력을 쌓았으면, 나도 빨리 저 간호사 선생님들처럼 일을 잘했으면.'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언제까지 나는 초보고 신규이고 배우는 과정일까. 

초, 중, 고, 대학교의 16년의 과정 + 1년의 어학연수는 아직 내가 완전한 사회인이 되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미성년자일 때는 빨리 성인이 되었으면 했고, 

대학교 3학년 때는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부러웠고,

대학교 4학년 때는 취업한 간호사 친구들이 부러웠고,

졸업한 후에는 먼저 임상에 가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다. 돌아보면 한 순간이고 별거 아닌데, 

그 과정 속에 있을 때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심란한 지 모르겠다.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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