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색종이에 그린 그림

_미술계의 아이유를 꿈꾸는 한 아이의 시작

by 조안나


그해 겨울의 마지￶막은 이별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와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슬프고 화나는 감정만 가득했다. 눈물이라도 시원￸하게 흘렸으면 좋으련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슬픔보다는 분노와 배신의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 반지￶하 신혼살림부터 견고하게 쌓아 오던 헌신과 협력들이 누군가가 살짝 건드린다고 이렇게 무너지￶게 될 줄 몰랐다. 사소하게 부딪히￷는 일상들로 작은 실금에 불과한 흠인 줄로만 알았지 산산조각 나기로 작정한 금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눈물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아 가슴을 치면서 속으로만 울다가 딸아이의 재롱을 보며 숨 막히￷듯 조여오는 슬픔을 잠시 잊기도 했다. 그러다 딸아이가 잠이 들고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면 아이들이 없는 빈￳방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헤어지기로 결정한 그는 나와 한 공간에 있기 어려웠는지 큰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외국 여행이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을 법하지만 장난기 가득한 아들의 표정은 시든 풀처럼 축 처져 있다. 떠난 두 사람의 빈 자리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선명하게 했다. 남아 있는 나는 괜스레 패배자가 된 것 같아 더 침울해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혼자만의 시간과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했다.


우리도 이곳을 떠나 볼까?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 말고는 갈 곳이 없다. 저러다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한 딸을 본 엄마는 어릴 적에 먹던 반찬을 만들어 주셨고 다행히 나의 딸도 할머니가 해 준 반찬을 잘 먹었다. 매번 같은 음식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엄마가 밥을 해줄 때 아픈 생각은 잊어버리라고 주문을 걸었는지 종일 잠이 쏟아졌다. 누워 있는 내 옆에 붙어 함께 놀기를 바라는 딸아이에게 미안했다. 잠만 자는 엄마를 대신해 놀아주는 할머니의 체력도 바닥이 나고 혼자서 고물고물 노는 딸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딱해 보였다. 만 나이로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슬픔에 허우적거리며 누워 있는 어른을 이해하는 모습이 너무 짠해보였다. 딸아이는 보채지도 않았다.


난, 참 못￸난 엄마로구나.


딸아이는 젖먹이 갓난아이였을 때도 엄마를 배려하는 듯한 행동을 했었다. 엄마가 눈을 감고 자는 것 같으면 배가 고파도 칭얼대지 않았다. 그러다 내 눈이 떠지는 것을 확인하면 반응했다. 어렸을 때 나도 엄￶마의 표정을 살피는 속 깊은 딸이었다. 딸아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을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았다.

나이에 비해 속이 깊은 사람들이 얻게되는 안쓰러움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는데... 어린 딸이 측은해서 또 이렇게 오래 있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아서 딸아이를 곁에 오게 하여 미술 영상도 보고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준비￱해 온 미술도구도 없고 할머니 집에 있는 것이라고는 색종이와 굵은 펜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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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작품들을 함께 보고 그리게 되었는데 선으로만 표현된 그림에는 피카소적 요소가 조금씩 표현된 것 같기도 했다. 엄마 걱정에 눈치만 보던 딸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린 자녀에게 부모는 우주이지 않을까. 나는 딸의 우주였다. 우주가 붕괴하고 있다는 건 딸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지금 여기에 누워 있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자.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만이라도 해보자.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그날 그 순간 내게 찾아온 첫 생각이었다. 딸아이하고 시작한 이 첫 작업￷이 나와 내 아이의 인생에 근사한 무늬를 만들어 주도록 이끌어 주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도했다.




36.jpg 2024년 12월 블랑블루 아트페어 만9세 나이로 참가의 기회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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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축복이되는길 #부족하지만조금특별한_에세이 #엄마와딸의에세이

#한부모가정응원합니다 #이혼일기 #우울증극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