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한테 다쳤다고 말하면 안돼.

by 윤구

아주 어릴때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학교에 다니진 않았으니 6살 아니면 7살 무렵일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 까지는 외삼촌이 하시는 문방구 앞에서 동네 형들이랑 놀며 시간을 보냈다.


산성동. 산으로 성을 만들어서 산성동인지 모르지만 언덕이 진짜 많은 동네였다. 가파른 언덕은 어린 나에게 아주 좋은 놀이터였다.

숨바꼭질 하기에도, 씽씽카를 타기에도, 눈썰매를 타기에도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문방구앞 나의 놀이터는 그리 넓지 않았다. 자동차 두 대가 나란히 있으면 사람이 다닐 여유공간은 거의 없다.


사고가 나던 날, 나는 그 좁은 골목에서 형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구질구질하고 누런 떼가 가득한 티셔츠가 땀 범벅이 되었다. 같이놀던 형들도 똑같았으니,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어도 꼬린내가 진동했을 것이다.

그 때 당시에는 차가 다녀도 마음껏 뛰며 놀았고, 주변 어른들도 차를 잘 피해서만? 다니면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차를 요리조리 피해 뛰어다니는 재미도 나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전하는 어른들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기어가다 싶이 운전했을 것 같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어야 하는 놀이다. 내 상대는 나보다 크고 빠른 형들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 번 술래가 되면 탈출 하기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닷!


온 몸에 감각을 집중하고 숨조차 쉬지 않는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호흡을 조절하지 못하는 형들이 잡혀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비겁하게 술래에게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숨진 않는다. 나름대로 과감히 앞으로 전진하며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어느 덧 내가 술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도착했고, 잡혀있는 동료들을 구하기 일보 직전. 심장 박동이 극에 달하고 동료들을 구해내겠다는

의협심까지 든다.

영웅이 될 수 있다.


“무궁화 꽃이…”


술래가 잡고 있는 포로의 손을 빠르고 강하게 내리치고, 동료들과 함께 전속력으로 반대방향으로 도망간다.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 내가 형들을 구해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

맞은편 벽을 터치하기 위해 앞만보고 달리지만,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차가 눈에 들어온다. 여느 때 처럼 잘 피할 수 있겠지.

항상 차보다 내가 더 빨랐다.


퍽!


정확히 어디에 어느 부위를 박았을까. 정신 차려보니 나는 주저앉아 있었고, 자동차 범퍼 아래에 내 오른발이 있었다.

바퀴에 밟히진 않은 것 같은데 왠지 밟힌것만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 아프긴 아픈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일단 눈물부터 나온다.


자동차에서 새하얀 고무신을 신은 아저씨가 급하게 뛰어나온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던 것 같다.


각자의 일로 분주했던 골목의 시끄러웠던 소음은 작은 웅성거림으로 변했다. 나한테 시선이 집중됐다.

문방구에 있던 외삼촌이 나와서 고무신 아저씨와 얘기를 나눴다.

아저씨는 계속 손을 비비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외삼촌은 인자한 미소로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병원은 안 가도 될 것 같고..."

"아니 그래도 제가..."

"애 엄마가 알아서 할 거에요"


그러다가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외삼촌이 급하게 몸을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 불러줄 테니까 집에 먼저 가있어.”


코를 훌쩍이며 절뚝절뚝 집까지 걸어갔다. 오른발이 아프긴 아픈데… 잘 모르겠다. 어딜 어떻게 다쳤는지.


엄마는 생각보다 빨리 집에 도착했다.


“차에 치었다고? 어디봐 어디!


오른발을 내밀어 엄마한테 보여줬다.


“띵띵 부었네..뭐하다가 그랬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다가….”

“하 진짜 미치겠네…일단 엄마가 뜨거운 물로 찜질 해줄게. 움직이지말고 가만히 있어.”


세수할 때 쓰던 스뎅 세숫대야에 물을 받고 가스렌지 위에 그대로 올려 물을 끓인다.


엄마의 뒷 모습만 봐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엄마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난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걸음걸이만 봐도 몸이 위아래로 들썩거리며 빨리 걷기 시작한다. 모든 행동이 과격해지고, 우당탕탕 소리를 낸다.


세숫대야를 신경질적으로 들어올리며 어딘가에 부딪혀 울리는 스뎅 소리가 귀를 찌른다.

수도를 불필요하게 강하게 틀어 세숫대야를 때리는 물줄기 소리가 불쾌하다. 가스렌지를 부술듯이 세숫대야를 내려놓는다.


퉁퉁 부은 오른발이 낯설다. 엄마가 세숫대야에 수건을 담근채로 다가온다.


“엄마가 찜질 해줄테니까..아빠 오면 아빠한테는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나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빠가 알면 화낼거야.”


궁금하진 않았지만 간단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찜질을 계속 해주었다.

아빠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며 급하게 뒷정리를 하고, 텔레비전을 틀어줬다.


“자, 이제 혼자 테레비 보면서 놀고 있어.“


달그락. 끼이익.


아빠가 열쇠로 문을 열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는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온다. 엄마의 표정이 변한다.

나를 대할 때는 마녀같은 엄마지만, 아빠 앞에서는 주인 눈치나 보는 어린 강아지같다.

그 날은 초조하고 불안한 눈빛이 더해졌다. 어린 나의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엄마의 두려움이.


‘아.. 엄마가 무서워 하는구나.’


애초에 굳이 아빠한테 다쳤다고 말 할 생각은 없었지만, 엄마의 표정을 보고나선 엄마 장단에 제대로 맞춰 줘야겠다 생각했다.


“밥은..? 먹었어?


누가 봐도 캥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며 묻는다. 아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엄마의 눈동자가 어색하다.

아빠는 엄마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자연스럽게 상을 차리고 아빠는 말없이 밥만 먹었다.


엄마는 긴장이 약간 풀렸는지 내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씨익 웃는다. 잘했다는 눈빛인 것 같다.

엄마가 잘 시간이라고 알려주기도 전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불이 나를 따뜻하게 폭 감싸 안아준다.


이불 속에서 이제서야 자유롭게 오른발을 요리조리 움직여본다. 이불을 덮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면서도 슬쩍 엄마의 눈치를 본다.


아빠랑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 웃고 있다. 평화로운 저녁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른발에 감각이 없다. 엄마가 해준 찜질이 너무 뜨거웠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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