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생일선물, 편의점 상품권

by 윤구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누군가의 생일을 챙긴다는 게 굉장히 피곤하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보내는 기프티콘조차 불편했다. 받기만 할 수는 없으니 나도 똑같이 보내야 한다는 숙제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기프티콘 대부분은 스타벅스 음료+케이크 교환관인데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하지 않고,

비싼 돈 주고 쥐꼬리만 한 케이크 먹는 걸 싫어한다. 잔뜩 쌓여있는 기프티콘은 처치곤란이다.


내 생일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게 설정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설정을 바꾸고 난 뒤에는 부모님, 와이프, 불알친구 다섯 명 정도를 빼면 생일에 연락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화롭고 잔잔한 생일이 마음에 든다.


와이프한테는 진작에 내 생일을 챙기지 말고 맛있는 거나 사 먹자고 얘기를 해놨다. 가정주부가 무슨 돈이

있어서 내 생일을 챙기겠냐며 배려하는 것 마냥 말했지만, 나도 매년 와이프 생일마다 뭘 선물해야 할지

고민하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매년 와이프 생일 때는 현금만 보내주는 것으로 딜에 성공했다. 그때 경제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액수는 정해놓지 않았다.

훌륭한 딜을 해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 생일에도 간단한 연락만 하고, 선물이나 현금을 드리지 않았다. 1년에 두 번 명절과 생일, 어버이날, 이런저런 것들을 다 챙기기에는 나 먹고살기 바쁘다.

결혼 후에는 처갓집도 챙겨야 하는데 사정이 녹록지 않다. 양가 부모님들을 다 챙기면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돈이 많은가? 아니면 내가 돈이 없는 건가?


내가 유일하게 생일을 극진하게 챙기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하다.


아들.


내 새끼라서, 예뻐서 챙기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 아이한테는 모든 게 처음이니까.


생일을 귀찮고,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행사로 생각하는 건 나한테나 해당되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아이가

커서 나처럼 생일을 번거롭게 생각하기 전 까지는 정성스레 챙길 생각이다.


우리 아빠도 그런 마음이 조금 있는 것일까. 내 생일인지 모르고 까먹고 지나갈 때도 있고, 전화 한 통 인사로 끝낼 때도 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 없긴 하지만.


올해도 여느 때처럼 내 생일에 관심을 끄고 지냈다. 그냥 365일 중에 하루, 와이프가 먹고 싶은 메뉴가 아닌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수 있는 날. 딱 이 정도 의미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육회를 먹을까, 곱창 먹을까 고민하던 차에 카톡이 왔다.


'잘 지내니? 생일 축하하고.. 조금이지만 손주 맛있는 거 사는데 보태라고 보낸다'


GS 편의점 상품권 3만 원짜리 세 장.


마음이 좋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실 때는 가끔 용돈을 주셔도 10만 원 20만 원 정도는 주셨다. 퇴직하고

소득이 없어진 지 오래돼서 돈이 없을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제 확실히 체감이 된다.


잠시 잊고 있었다. 작년에도 파리바게트 교환권 10만 원을 받은 적이 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지

오래돼도 한참 오래됐을 것이다.

생활은 되나? 무슨 돈으로 생활하는 걸까?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여유도 없을 텐데.

답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고마워. 잘 쓸게.'


이렇게 보내고 대화를 끝냈다.


나는 아들의 생일 두 달 전부터 뭘 사줄까 고민한다.

레고를 살까, 킥보드를 살까.

장난감 매장 가서 이것저것 들여다본다.


"이건 너무 어린것 같고, 이건 좀 이른 것 같고."


케이크는 어디서 주문할지도 미리 정한다.

작년에 먹었던 곳 말고, 새로운 케이크를 찾아본다.


아빠도 내가 아들한테 하는 것처럼 내 생일 전에 뭘 준비하셨을까.

미리 고민을 하셨을까, 아니면 며칠 전에 급하게 사신 걸까.

할머니 케어하고, 생활비 쓰고, 공과금 내고, 남는 돈을 쥐어짜서 상품권을 사셨을까.

3만 원짜리를 세 장 살 때, 5만 원짜리 두 장을 살까 고민하셨을까.


잘 모르겠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상품권은 아들 간식 사는 데 쓸 생각이다.

"손주 맛있는 거 사는 데 보태라"라고 하셨으니까.


아들이 좋아하는 새콤달콤이랑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줘야겠다.

환하게 웃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니까 기분이 좋다.


오늘 저녁은 육회를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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