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같으면 등교시간까지 밍기적 거리다가 헐레벌떡 학교로 갔어야 한다.
턱이 찢어진 다음날 귀신같이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성공 해야할 미션이 있다.
‘엄마 마주치지 않고 학교 가기’
정확히는 집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성공하는 꽤나 간단한? 미션이다.
방문 손잡이를 강하게 부여잡고,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문을 다 열고 부여잡은 손잡이를 놓았다.
몸이 빠져나갈 만큼만 최소한으로 문을 열고 나가서 화장실로 빠르게 들어갔다. 발소리보다 내가 움직이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더 컸다.
밤새 흘러나온 피가 밴드를 검붉은색으로 물들여놨다. 완전히 지혈이 되지 않았나보다. 그래도 상처를 보니
빨간색 피가 고여있어 보이긴 하지만, 많이 흐르지는 않는다. 살이 붙으려면 한참 걸릴것 같긴 하다.
대충 머리를 감고, 턱만 피해서 손가락 끝에만 물을 묻혀서 대충 얼굴을 씻었다.
물이 한 방울 이라도 턱에 튀거나, 입을 움직일 때 통증은 어제보다 더 심하게 올라온다.
턱부터 관자놀이까지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씻은 티만 내고 대충 옷을 걸치고 텅 빈 책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할머니가 날 불렀다.
“벌써 학교 가니?
현관문을 열면서, 할머니를 등진 상태로 대답했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쫓기듯 집을 나섰다. 성공이다. 생각보다 쉬운데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7시도 되기 전에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소풍가는 날 설레서 일찍 와본 후에 처음이다.
이 시간에는 선도부도 없어서 누군가가 날 불러 세울까 초조해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할 수 있다. 얼굴 전체가 땡기듯 아프지만 묘한 평온함이 느껴져서 기분은 좋다.
하나 둘 교실에 도착하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 보니 통증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턱에 붙은 밴드 따위는
신경쓰이지 않고 마냥 재밌기만 하다.
민용이가 우리반으로 찾아와서 괜찮냐고 날 걱정해준다.
“엄마가 뭐라셔? 병원 갔다 왔어?
“아니 그냥 엄마가 약 발라주고 밴드 붙여줬어.”
병원도 안 갔고, 밴드도 혼자 붙였고, 집에 숨어있다가 나왔다고 말하기 부끄러운게 아니라,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기 귀찮았다.
“아 그래? 다행이다. 점심시간에 축구나 하자!
“그래. 밥 빨리먹고 최대한 빨리 나와.”
턱이 아파도 축구는 해야지.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다보니 상처가 금방 아문 느낌이다. 밴드에 묻어 나오는 피도 많이 줄었다.
엄마는 거의 저녁시간이 지나서 집에 들어온다. 저녁먹을 때 할머니한테만 적당히 둘러대면 오늘도 잘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밴드를 티 안나게 붙이고 저녁을 먹는데, 할머니가 물어보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의 귀여운 계획이었다. 할머니는 내 턱에 뭐가 붙어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늘도, 내일도, 상처가 아물때까지 아무한테도 걸리지 않겠는데?
혼자 방에 들어가있는데,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평소에도 굳이 날 찾지 않고,
나도 엄마가 왔다고 살갑게 인사하러 나가지 않는다.
우린 그런 관계다.
그렇게 2주를 보냈다. 처음에만 긴장됐지, 너무나도 쉽게 숨어지낼 수 있었다. 2주가 지났어도 아직 살이
완전히 붙지는 않았다. 찢어진 부위에 빨갛게 살이 갈라져 있는 선은 아직도 잘 보인다. 그래도 밴드를
붙여놓으면 피도 안 묻어나오고, 심한 상처로 보이진 않는다.
숨어살기를 쿨하게 그만두고, 자유롭게 집을 돌아다니는 데도 엄마가 내 상처를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진짜로 나한테 관심이 전혀 없긴 하구나.’
새삼 다시 한 번 아들한테 관심없는 엄마를 아주 약간 원망해본다. 3초짜리 원망. 별것 아니다.
“너 턱 다쳤니?
턱에 계속 밴드를 붙이고 다녔으니 알아보긴 했나보다. 걱정섞인 뉘앙스는 아니었다.
“응, 축구하다 넘어졌어.”
비웃는건지 실소인지 모르겠지만 피식 하더니 더 묻지 않고 지나갔다.
혹시나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진 않을까 약간 긴장했던 게 자존심 상할 뿐이었다.
소리지르지 않을거면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아 참, 내가 뭘 기대하는 거지. 우리 엄마였지. 내 엄마.
상처도 어느정도 아물었고, 할머니랑 엄마도 크게 내 상처에 관심 없는걸 확실히 확인했다.
길었던 숨어살기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엄마한테 2주동안 숨어살기.
식은 죽 먹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