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가 날리던 2001년, 봄, 5학년때로 기억한다.
어릴적 나의 루틴은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은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던져두고(집에 가서 던져놓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날은 축구 멤버가 안 나왔는지 친구 민용이랑 둘이서 산성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민용이는 체구가 작고, 몸이 가벼운데 힘도 좋아서 철봉 위에서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는 친구였다.
둘이서 경찰과 도둑이나 얼음땡을 할 순 없으니 그네타고 멀리뛰기, 제자리 멀리뛰기 등 누가 더 잘하는지
경쟁이 붙었다. 나는 운동 능력이 꽤나 좋았고 항상 이기는 데 익숙했다.
일방적인 경쟁은 끝나고 구름 사다리로 이동해서 민용이의 쇼타임이 시작됐다.
봉을 잡고 자유자재로 위아래로 원숭이처럼 묘기를 부리는 민용이가 신기하고, 부러웠다.
몸으로 뭔가를 하는 데는 나도 자신이 있는데 저건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따라하지 말았어야 했다.
화려하고 자연스럽지 못하게 어떻게 구름 사다리 위로 올라탔다. 양 허벅지 사이에 있는 봉을 움켜잡고,
그대로 앞 구르기 하듯 앞으로 몸을 굴린다. 약간의 무서움을 극복하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있게
몸을 내던졌다.
몸을 앞으로 던지는 데만 집중했다. 양 손으로 잡은 봉을 잘 잡았어야 했다.
앞으로 회전하는 나의 체중을 내 손 힘이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봉을 놓쳐버렸고,
보기좋게 바닥 돌부리에 턱을 그대로 찍어버렸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띵 해졌다.
어려도 본능적으로 ‘이건 뭔가 잘못됐다’ 라는 느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흐르는 피를 확인하지 않아도 뜨거운 피가 턱을 타고 목까지, 땀에 절은 후줄근한 티셔츠를 적시는 게
느껴졌다.
어릴 때도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자존심이고 뭐고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느꼈다. 내가 다녔던 어린이집이라 어른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1층 사무실로 뛰어가서 어른들에게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엉엉 울면서 간절하게.
12살짜리 남자아이가 피를 철철 흘리며 울면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아저씨의 반응은 아주 냉담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해.”
“여기 휴지 줄 테니까 피 흘리지 말고 얼른 가.”
‘피 떨어지는 게 싫구나.’
울면서 서러우면서도 너무나 차갑게 반응하는 아저씨에게 더 도와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차갑다기 보단
무서웠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찢어진 턱을 두루마리 휴지로 감싸고 집까지 울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민용이도 걱정스러워 하면서
조심히 가라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할 때 쯤, 나는 울음을 그치고 잠시 생각을 했다.
눈병 걸려와도 재수없다고 고래고래 악을 지르는데, 이 꼴로 가면 얼마나 소리를 지를까. 안 봐도 뻔하다.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
‘지금 설마 집에 있지는 않겠지.’
‘엄마가 오기 전에 얼른 피 닦고 숨어있어야겠다.’
더 고민하다가는 엄마에게 걸릴 수 있기에 판단을 빠르게 하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어색하게 턱을 가리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할머니만 집에 있었고, 들키지 않았다.
턱에는 지저분하게 휴지 조각들이 붙어있었고, 찢어진 턱에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지독하게 따가운 고통을
참으면서 휴지를 떼어내고, 세면대와 바닥에 있는 피를 다 닦아냈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기 전 두루마지 휴지를 또 턱에 대고 밴드를 찾아와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새 두루마리 휴지 조각들이 또 턱에 덕지덕지 붙어서 떼는 작업을 또 했다.
밴드를 십자모양으로 최대한 크게 붙이고, 또 두루마리 휴지를 그 위에다 대고 계속 턱을 부여잡고 있었다.
언젠가는 피가 멈추겠지.
일단 저녁은 안 먹는다고 하고 방에 숨어있기는 성공했는데…언제까지 숨어있을 수 있을까.
일단 오늘은 성공했으니 내일 학교갈 때 안 걸리게 잘 도망이나 가야지.
어둑한 밤이 돼서야 피가 어느정도 멈췄다. 베개에 피는 묻지 않겠다.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다.
상대가 밤 늦은시간까지 아들을 찾지않는 엄마라면, 살이 붙고 아물 때까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