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실패작
늦여름의 토요일 오후는 숨이 막혔다.
힘 없이 미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로는 뜨거운 공기를 없앨 수 없다. 미풍에서 조금만 더 세게 돌리면 외할머니가 가만있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바람을 더 맞으려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놨지만 늘어난 티셔츠는 피부에 쩍쩍 달라붙는다. 하늘은 그날 따라 더 누렇고 우울한 빛이다. 그런 날, 엄마가 모처럼 먼저 말을 걸었다.
“호진아 장 보러 가자.”
엄마와 사이가 좋은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말 저녁 냄새나고 끈적끈적한 집구석을 나가 바깥으로 나간다는 게 좋았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장을 보러갈 때 짐을 들어달라며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내가 엄마보다 힘이 세졌을 만큼 어른이 된 기분도 들었기에 싫지만은 않았다.
세이브존 – 예전에 한신코아라고 불렸던 그 곳은 내가 살던 구 성남에서 제일 세련된 장소였다. 세이브존 보다는 한신코아라는 이름이 익숙하지만, 세이브존이 조금 더 고급진 이름인 것 같다.
자동문이 열리면 선풍기의 미지근한 바람과 다르게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동네 가게나 칠이 벗겨진 남색 1톤 트럭에서 팔던 제품들과는 다르게 진짜 메이커 제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 신발과 축구화도 구경할 수 있었다. 나이키 축구화는 비싸서 살 수는 없지만 삐까뻔쩍하고 선수들이 신을법하게 생긴 축구화를 구경하는 것 자체로 기분은 좋았다.
식품코너에 가면 시식코너를 돌아다니며 하나씩 먹어볼 수 있는것도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랑 시식코너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먹으며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밥을 못 먹을정도로 가난한건 아니었지만 하루에 500원, 1000원(하루 용돈 1,000원 받는 친구들이 간혹 있었는데 우리는 이 친구들을 부자라고 불렀다), 혹은 아예 돈 없이 놀 때는 배를 채울 방법이 없었다.
카트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차올랐다. 시금치, 콩나물, 마늘, 양파, 두부... 역시나 고기는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황사가 하늘을 뒤덮은 날, 그리고 아빠가 찾아오는 날 이었다.
“흙먼지를 씻으려면 기름진 고기를 먹어야 해” 외할머니는 1년에 한 번 고기를 허락했다.
그래서 황사가 와줘야 외할머니, 외삼촌 둘, 엄마, 내 동생, 사촌동생과 같이 삼겹살집에 가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와 동생을 만나러 아빠가 찾아오는 날에 아빠는 항상 고기를 사주셨다. 외할머니가 고기를 못 먹게 한다고 일러바친 적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사준건지 아니면 그저 자주 못 보는 자식들에게 고기를 먹여주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계산을 마치고 세이브존을 나왔다. 자동문을 지나는 순간 다시 후덥지근한 공기가 몸을 감싸고, 누리끼리한 하늘이 날 반긴다.
양손에 든 비닐봉투가 무거웠다. 손가락은 하얗게 변해가고, 비닐봉지가 살을 파고든다. 손가락이 찢어질 것 같아서 잠깐 내려놓고 싶지만 힘이 세서 날 데려온 엄마 앞에서 약하게 보이고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발걸음 소리와 비닐봉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번 모의고사 성적은 조금 올랐어?
엄마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묻어있었다.
“아니 뭐 비슷해.”
성적을 물어보는 게 불쾌하고 기분나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왜 이런걸 묻는걸까.
기분나쁜 티를 전혀 내지 않았는데, 엄마는 잠시 내 눈치를 보는 것 마냥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눈치랑은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럼 그렇지. 곧이어 바로 이어서 말을 꺼냈다.
“나는 호영이는 너처럼 안 키울거야”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분명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고, 곧이어 나올 말들도 좋은 말이 아닐게 분명했다.
“실패작 하나 키워봤더니 이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방법을 알았어. 너를 너무 니 하고싶은 대로 하게 놔뒀더니 망했어.”
실패작.
이 단어 하나가 너무나 날카롭게 나에게 꽂혔다.
“뭐라고!?
최대한 공격적인 톤으로 대꾸했다. 원래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닌데, 이런 막말에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었었다.
역시나 눈치없는 우리 엄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막말을 이어갔다.
“너는 학원 안 보내도 곧잘 성적 잘 받길래 계속 잘 할줄 알았는데, 갈수록 뒤쳐지잖아. 호영이는 너처럼 학원 안 다니고 놀면서 공부시키지 않을거야. 나도 다른 애들처럼 학원도 보내주고 과외도 시켜줄거야.“
분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비록 엄마이긴 하지만 더 말해봐야 진심을 다한 험한말만 나올것 같았다.
나는 그날도 항상 그래왔듯 아무런 대꾸 하지 않고 대화를 끝냈다. 내가 더 말을 안 하면 엄마도 굳이 말을 걸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집까지 걸었다. 걷기만 했다.
30분이고 1시간이고 서로 무표정으로 대화없이 걷기만 할 수 있는 사이. 엄마와 아들.
세이브존에서 집까지 가는 그 길. 누런 하늘, 끈적한 공기 속에서
나는 엄마를 버렸다.
두 번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