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통풍인가, 중풍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풍자로 끝나는 병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은 아니었고, 외할머니가 진단내린 병이었다.
의사는 정확히 원인을 모른다고 했는데, 엄마는 몸의 절반을 움직이지 못했다.
세로축을 기준으로 절반이니까, 한쪽 팔과 다리, 허리를 아예 못 쓰겠다며 계속 누워있었던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이런 병에는 홍삼이 최고라며, 매일 홍삼 액기스를 엄마 입에 집어넣어 주셨다.
시도때도 없이 돈 문제로 부딪히고 다시는 안 보니 뭐니 해도 엄마가 아프다니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셨다.
외할머니의 극진한 간호에도 엄마는 계속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결국 병원에 잠시 입원해 있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하게 돼서야 외할머니는 아빠한테 연락을 한 것 같다.
항상 아빠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는데, 모처럼 평일에 아빠를 만나니 약간 어색했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엄마 아빠 나까지 이렇게 네 명이 같은 자리에 있어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 어색함은 초등학생인 나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 누구도 먼저 살갑게 안부를 묻거나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그저 딱딱하고 형식적인 인사만 할 뿐이었다.
외할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워주겠다며 내 손을 거칠게 잡아 쥐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내 손을 부여잡은 외할머니의 손. 할머니의 손 가죽 겉은 단단했지만, 속은 텅텅 비어있는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외할머니의 손 감촉만으로도 할머니가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다시 같이 살게되길 희망하는 기대감이었을지, 뭔지 모를 두려움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 단 둘이서 같은 공간에 얼굴을 마주본 것도 꽤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는 몸도 아프고 서러운데, 그래도 병원까지 찾아와준 아빠에게 고마운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이 때 아빠가 살갑게 대해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해 줬다면, 우리 가족의 상황이 지금과 같았을까?
우리 가족의 관계가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이제껏 몇 번 없었는데, 이 날이 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엄마의 기대나 예상과 다르게 아빠가 내뱉은 첫 마디는 너무나 강력했다.
“재수없게 또 아프고 지랄이야.”
내가 아는 엄마는 이런 말을 듣고서 가만히 울기만 할 사람이 아니다. 같이 소리 지르며, 자개 무늬가 그려진 밥상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집어던지며 같이 싸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때는 엄마가 몸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해진 상태에서 저런 막말을 들었으니 그대로 털썩 무너졌을 것이다.
아빠는 죽일듯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며, 저런 폭언을 내뱉고 나서도, 울고있는 엄마 얼굴을 한참이나 노려봤다고 한다.
나는 아빠의 그 죽일듯한 눈빛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눈을 부릅뜨며 흰자가 거대해지며, 얼굴빛은 붉어지고, 목소리도 같이 격앙된다.
내가 어느정도 성인의 체격을 갖추기 전에는 나도 아빠의 그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다. 아니 두렵고 공포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가족, 자식한테 보여줘서는 안 되는 모양새이다.
내가 외할머니랑 한참을 밖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엄마는 계속 울면서도 우리가 병실로 돌아오기 전에 어떻게든 울음을 그치려 고군분투 했을 것이다.
병실로 돌아갔을 때는 아빠는 이미 아빠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외할머니는 그냥 아무말 없이 엄마가 덮고있는 이불 매무새를 만져주셨다.
나는 이 때 엄마의 표정이나 기분이 어떤지 보지는 않았다.
그저 이 일이 있고 난 뒤로 20년 넘도록 아빠를 욕할때면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 중에 하나였다.
엄마 앞에서 대놓고 대꾸하지는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시늉을 하긴 하지만 난 속으로 생각한다.
지도 나한테 똑같이 했으면서.
어쩌다 문득, 엄마가 아빠에게 그런 심한 막말을 듣고나서의 감정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서럽거나, 슬프거나, 배신감을 느꼈거나, 상실감, 외로움, 좌절, 절망….
엄마가 느꼈을 심정이 어느정도는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당한 게 있고 받은 상처가 있으면 자식한테 똑같이 하면 안 되지.
피해자 코스프레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30대 중반을 넘겼지만, 아직 엄마를 이해하거나 그럴수도 있지 하며 엄마를 좋게 봐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성인이 덜 된건가, 좀생이인가, 쿨하지 못한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 평생 모를수도 있다.
아직 지금까지는 그냥 이대로가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