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병에 왜 걸려, 재수없게

by 윤구

2001년 여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눈병이 유행이었다. 눈병에 걸린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고, 전염성이 꽤나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합법적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니까 너도나도 안 씻은 손으로 눈을 비비기도 했던 것 같다.


나에게도 강한 충격을 줬던 눈병이라 눈병의 이름도 정확히 기억한다.


아폴로 눈병.


초등학생의 나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괴상한 신념인지 자부심인지 모르겠지만. 6년 개근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눈병에 걸려 학교를 안 나올때도 나는 절대 눈병에 걸리면 안 되겠다 다짐했다. 친구들이 눈이 시뻘겋게 될 때까지 눈을 비벼대도 나는 멀찍이 떨어져 웃기만 했다.


눈병에 걸렸던 친구들이 하나둘 학교로 돌아오고 유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우리 반에서 몇 안 되는 ‘살아남은 자’ 였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보다 유행은 빨리 끝나지 않았고, 나 또한 피해가지 못했다.


아폴로 눈병 확진판정. 시뻘개진 눈으로 집에 도착해보니 어쩐일로 엄마가 있었다. 옮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알렸다.


“나 아폴로 눈병 걸렸대”


이 한마디를 던지고 나서 엄마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악을 쓰며 괴성을 지르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학원 애들 눈병 때문에 미치겠는데 너까지 눈병에 걸려와 왜!! 재수없게 진짜!!


그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 뒤에는 그냥 비명소리에 가까운 악만 계속 질렀다.

눈병 때문에 계속 흐르는 눈물과 눈꼽 때문에 집까지 오는게 쉽지 않았는데, 위로의 말을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내가 병신같았다.


내가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나…씨발..


저 인간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라 그러려니 했는데, 귀에 거슬리는 단어가 있었다.


‘재수없게’


엄마가 아빠욕을 할 때면 항상 빼놓지 않고 얘기하는 일화가 있었다.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아빠가 찾아오더니 인상을 팍 쓰며 던지는 첫 마디에 엄마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큰 상처가 됐다고 했다.


“재수없게 또 아프고 지랄이야”


엄마는 아픈것도 서러운데 욕까지 먹어서 그 날 펑펑 울었다며 나한테 수도없이 하소연 했었다.


둘이 똑같네 뭐.


그래도 나는 엄마랑은 다르다. 엄마는 그 말에 상처받고 무너졌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다. 이미 엄마를 버려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엄마한테 '재수없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나는 이상하리만큼 덤덤했다. 울지도 않았고, 삐지지도 않았다. 그냥 '아, 또 그러네' 하고 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더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얼른 성인이 돼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 이 집구석에서 버텨야지..

그날 밤도 늘 그랬듯, 이런 다짐을 되뇌었다.


재수없는 건 내가 아니라 이 집구석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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