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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Feb 16. 2022

철학의 이유

인류의 성장이나 나의 성장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목차-


1. 왜 철학인가

2. 차별점

- 기존의 철학 에세이는 철학의 시간적 흐름과 과학을 간과한다.

- 철학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만든다.

- 철학을 말하면서 왜 과학을 다루지 않는 거죠?

3. 철학을 공부하니 무엇이 좋았나요?


제가 쓰고자하는 책이 기존의 책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왜 철학인가


기존의 에세이에서 아쉬웠던 점은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짚어주지 않으니 해결책이 없거나 모호한 해결책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싶었고, 반드시 문제에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상위에 있는 철학을 배워서 인문, 심리, 예술이 자연스레 파생되는 흐름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고통의 근원을 깨닫고 자유로워지고 싶었죠. 그 근원을 모른다면 형태만 바뀐 채로 저를 계속 괴롭힐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는 이렇게 고통의 근원을 알고자 철학을 공부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이유에 대해서 차근차근 소개해보려 합니다!



[예시] Q.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서 속상해요.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어요



에세이: 괜찮아, 노력한 만큼 안 나와도 괜찮아 다시 도전하면 돼,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철학, 과학: 자유의지는 없고 이 세계는 결정론에 의해서 좌우된다. 그러니 노력을 한다고 반드시 결과가 잘 나올 순 없고 '운'에 의해서 좌우된다. 그 답은 양자역학에 있다.



내용의 깊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무엇보다 철학은 새로운 공부로 이어지기 쉬워요. 저 예시에서는 결정론을 공부하다가 양자역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깨달은 것처럼, 스스로 공부할 것들을 찾는 것도 능력인데, 철학은 그 능력을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죠



2. 기존의 책들과 구별되는 내 책의 차별점

1. 기존의 철학 에세이는 철학의 시간적 흐름과 과학을 간과한다.


기존의 철학 에세이들은 챕터마다 한 철학자를 다루든, 한 책에 한 명의 철학자를 다루든 그 철학자의 이론이 일상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책에 녹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철학의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보여요.


철학은 기존의 철학자들이 말한 내용에 대한 반박입니다. 즉, 기존의 철학을 뒤집는 것이 철학이므로 그 흐름을 모른다면 철학을 안다고 말할 수 없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대에 따라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어떻게 반박되었고 그 반박이 어떤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지를 알아야 하는 거죠.


이미 철학을 아는 사람이 스스로 철학자들의 책을 펼쳐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철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철학 에세이 같이 잘 풀어쓴 책만 읽다 보니 진짜 철학을 경험해보지 못합니다. 즉, 자신의 철학 지식에 따라 읽는 책이 나뉘게 됩니다. 그래서 제 에세이가 철학 책과 철학 에세이 사이의 중간 역할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제책의 의도는 독자들이 직접 철학을 읽도록 유도하는 것인데요, 어떻게 하면 철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의 접근법, 철학을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전하고 싶습니다.


2. 철학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만든다.


남의 철학을 참고하기만 해서는 성장을 이룰 수 없죠.  언젠가는 확립될 나만의 철학, 혹은 새로운 생각을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니까요. 스피노자로부터 무엇을 얻어내야 할까? 가 고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철학자들의 이론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쳤는지를 파악하고, 그 사고 과정을 머릿속에 남기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내용이 아니라 사고 과정을 학습하게 되면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해지니까요~



예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어떻게 나온 말일까?


- 데카르트는 내가 과연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한 사람입니다. 도대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내린 결론은, 의심하는 나 자신만큼은 알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나온 말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어떤 파장을 일으켰을까?


-정말 많이 고민해서 나온 답이 결국엔 의심하는 나 자신이라면 우리는 고민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내린 결론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진실이 존재할까요?


-그렇게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자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다 틀렸다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죠. 그렇게 니체는 진실의 상대주의를 낳습니다... 그 니체의 상대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진실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기존의 철학을 무시하고 나 홀로 철학을 세워야 한다는 데카르트, 기존의 철학자들은 다 틀렸다는 허무주의자들의 주장은 "기존의 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철학의 뿌리를 봐야겠죠,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입니다.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요즘입니다.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결론보다는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생각의 흐름이 너무나도 중요하고요, 스스로 생각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철학을 캐치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철학을 아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모르는 사람의 경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저 역시 처음에는 틀린 철학을 신봉하면서 제가 믿는 철학이 맞다고 우겼었지만, 한 발짝 물러나 바라봤습니다. 그 어떤 철학도 반증되지 않은 철학은 없다는 것이죠. 언제든지 우리가 진실이라 믿어왔던 철학은 손바닥 뒤집힐 듯이 쉽게 뒤집힐 수 있습니다. 이에 속상해하거나 이를 부정하기보단, 어떻게 내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을까? 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죠. 그리고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답을 찾는 과정이 더 빨라지고 정확해지니까요.

예전에 썼던 서평 내용인데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긁어왔습니다


3. 철학을 말하면서 왜 과학을 다루지 않는 거죠?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철학과 과학을 아예 별개로 보는 것이죠. 철학과 과학을 묶어서 생각한 에세이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철학과 과학은 공통된 질문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논증하기 때문에 학문이 나뉘는 것이지, 해결하고자했던 과제는 동일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실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철학자, 과학자 모두 고대부터 현대까지 고민해왔습니다. 

고대와 현대 사이에서 학자들은 이것이 실체다!라고 주장해왔지만, 

근대 부터 양자역학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실체는 정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실체가 무엇인지 규정하려고 했는데, 애초에 실체가 없다니 너무 황당한 것이 아니냐고요? 

철학적 질문인 줄 알았는데 과학이 해결해버린 게 당황스러우신가요?


괜찮습니다. 철학과 과학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철학에서는 반박의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철학의 묘미이죠. 이때 반박은, 전제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제를 두 갈래로 쪼개서 이 때는 맞고, 저때는 틀리다는 논리를 사용하거나, 반대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웬만한 철학자들의 반박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어요. 여러분들이 철학을 마냥 어렵게 여기는 이유는  철학자들은 어떻게 저런 새로운 생각이 들 수가 있냐인데, 철학자의 생각은 절대 무에서 창조되지 않아요! 기존의 생각을 뒤엎고 그 뒤엎인 것에 맞는 것이 무엇 일지를 고민하는 것이 철학적 사고이죠! 생각보다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이 쉽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한 번 더 예를 들어볼게요!


예시)


뉴턴의 고전역학에선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고, 속도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부터 글을 읽으셨다면 감이 오실 거예요!)


바로,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고, 속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점은, 속도는 모든 물질에 대한 값이다 보니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에요. 바로, 빛 하나로만 범위를 좁히는 거죠. 다시 정리하자면, 광속만 절대적으로 본거죠.


즉, 고전역학은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고, 광속이 절대적인 것에 대한 증명이 있다면, 반박될 수 있어요


여러분은 방금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셨습니다


제 책에선 철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하기보단,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지 생각의 방법을 위와 같이 제시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철학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제가 왜 철학이랑 과학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씀드린 건지 그 이유를 아시겠죠?


3. 철학을 공부하니 무엇이 좋았나요?


인간이 고통에 취약한 이유는 나만 고통스럽다고 착각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가치라는 것을 깨닫고, 그 고통의 근원을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세계사를 철학, 과학, 예술, 종교적 측면에서 바라봤어요. 예술의 경우에는 당대의 사고를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방법이 되고, 그 외의 학문은 사상이 되어 나타나죠. 아무튼 역사도 이 때는 이런 생각과 표현을 했다는 식으로 이해하니까, 나의 인생과 별반 다를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인생의 순간마다 표현을 하고 생각을 하고 이 표현과 생각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저의 역사를 만든 거니까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많은 공감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중세, 근대의 인간이나 현대의 인간이나 인식 수준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때도 많습니다.(고대 이후의 인간이 가장 반성해야 하는 점은 고대 인간의 수준이 가장 높았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바뀌기 힘든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흑사병이나 대기근 같이 외부적인 환경이 급변해야 인간은 변화를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에는 코로나였죠. 다수의 인간들은 이런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변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급격한 변화가 없이도 인간은 성장할 수 있는 존재예요. 그러나 관성이라는 속성이 막고 있죠. 하지만 그 관성을 깬다면, 성장이 가능해요. 과거의 인간들의 실패를 축적한 역사로부터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아무런 노력 없이 인간이 성장할 순 없고, 반드시 역사(그중에서도 철학)를 공부해야 변화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저는 감정에 치우치는 게 싫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철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감정에 사로잡히는 게 싫어서 그냥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었어요. 아예 감정을 무시하고 인간은 이성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존재라고 제 머리에 각인시킨 것이죠. 그러나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인정하기 싫었죠.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그 생각에 갇혀있으니까요. 억누를수록 더 크게 튀어나오는 감정도 무시하면서 제 의견을 고집하고 있을 때, 마법처럼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이 등장합니다. 일반물리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카메라를 설명해주시면서 계몽주의가 신봉하는 이성이 어떻게 무의식에게 졌는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라는 전제를 버리니까 정말로 삶이 편해졌습니다. 애초에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지배받는 존재이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이니, 그 무의식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무엇이 그 감정을 만들었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감정을 그냥 인정해주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점점 사그라들면서 평온해지더라고요.


방금 사례는 제가 가진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이었지만, 역사에서 바라본다면 계몽주의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됩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저는 제 인생에 활용할 생각을 했고, 왜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계몽주의를 통해 역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저나 역사나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 고민을 해온 것입니다.


역사를 5세기부터 21세기까지 다룬다고 하면 역사 입장에서는 1살 땐, 5세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2살 땐 6세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3살 땐 7세기 생각.. 이렇게 나아가는 거죠. 그러니까 역사라는 큰 덩어리 자체가 제 인생과 겹쳐 보이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할까요?


역사는 많은 개인들이 모여 집단으로 나타난 흐름이잖아요, 인간의 비슷비슷한 사고방식을 엿보면서 고대의 사람이나 지금의 나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많이 느꼈고, 역사도 역사 나름대로 발전해왔다는 것을, 그 발전의 형태가 나와 참 비슷하니 역사가 먼저 밟은 길을 보고 내가 따라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죠~ 철학을 공부한 이후로는 지금 고통스럽거나 고민에 가득 찼다고 해서 크게 동요되지 않아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낮춰서 감사함으로 채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귀중한 경험을 여러분들과 나누면 너무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연의 브런치 (brunch.co.kr) 나의 자기계발 기록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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