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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Jan 08. 2024

내가 용서했던 진짜 이유

경찰과 공무집행방해

경찰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회의감 드는 일이 생긴다.


조직에 실망했을 때? 13만 명 사람이 모였으니 그럴 수 있다.


드센 범인과 민원인을 감당하기 힘들 때? 이 경우도 충분히 회의감이 든다. 솔직히 범인보다 민원인이 더 심할 때가 많다.

어떤 경우는 경찰관을 때리거나 협박까지 한다. 그럼 멘탈 약하거나, 신임 경찰은 견디기 힘들기 마련이다. 우린 이런 악질범을 체포할 때가 있는데 죄명은 공무집행방해이다.



한국 경찰이 툭하면 욕먹고, 멱살 잡히고 다녀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 본다. 그러나 쉽게 봐선 안 되는 게, 이 죄는 일반적인 폭행보다 처벌 수위가 훨씬 크다는 거다. 국가 기관에 대항한 걸로 보기에 죄질이 나쁘다. 오죽하면 법전에도 국가적 법익을 침해한 죄라고 나와 있을까? (일반 폭행은 개인적 법익을 침해한 죄라고 되어 있다)


초범도 벌금이 몇백만 원 이상 나오니, 이 정도면 설명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경찰관이 이 죄의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니다. 피해자는 주로 지구대 근무하는 지역경찰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건을 가장 먼저 출동하기도 하고, 주 고객은 알코올에 취한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강력팀을 관두고 지구대에서 다시 근무한 최근 몇 년 사이, 여섯 번이나 공무집행방해 피해자가 됐었다. 그중에 기억나는 사건 하나를 꺼내 보려고 한다.


 




2년 전 뜨겁던 8월 여름밤이었다.


두 사람이 다툰다는 폭력 신고 사건을 출동했었다. 어두 컴컴한 골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두 남자가 다툰 건데 얼마나 시끌벅적했으면 자고 있던 주민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순찰차 두 대에 도보 근무자를 포함해 경찰관 여섯 명이나 출동했다.



30대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홀쭉했다. 다른 한 명은 키가 작고 체구도 작았다.

둘이 같이 있어 상반된 느낌은 더욱 컸다. 어릴 때 TV에서 봤던 톰과 제리 만화 캐릭터 같았다.


키 큰 남자는 고양이 톰, 작은 남자는 제리였다.  



고양이 톰은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가엾우리 제리는 얼굴 여기저기 맞은 흔적이 보였다. 코피까지 흘렀다. 딱 봐도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구별이 될 정도였다.


갑자기 톰이 제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와 경찰관 두 명이 재빨리 달라붙어 그를 막았다. 상황판단 빠른 똘똘한 후배 이 경장은 제리를 데리고 멀리 피신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건 우리의 철칙이기도 했다.


이제 피해자인 제리의 선택만이 남았다. 처벌하겠다는 그 말 한마디면 된다.



흥분한 톰은 저 멀리 가는 제리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달려들려고 했다.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는 강력한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그래도 그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대체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더욱 큰 소리를 질러댔다.


씩씩거리며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옆에 주차된 죄 없는 승용차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어, 어!”


순간 놀란 나와 동료가 그를 붙잡으려 뒤쫓았다. 그러나 톰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발로 승용차 문짝을 쾅하고 걷어찼다. 다행히도 차는 아무 상처가 없었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톰은 다른 차를 향해서도 돌진할 기세였다. 이러다 자동차 본닛 위에까지 올라가면 우스운 상황마저 연출되지 않을까? 제발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우리는 그의 양팔을 잡고 골목 한쪽 벽으로 끌고 왔다. 나는 톰을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똘똘한 이 경장과 제리가 걸어왔다.


‘어서 빨리 처벌해 달라고 해!’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이 경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리가 내 앞에 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경찰관님, 저 녀석 제 직장 후배입니다. 결혼도 했는데 이거 알면 회사 그만둬야 해요. 그냥 한번 봐주세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후배 톰을 쳐다봤다.


잠시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너 정신 차려. 앞으로 내 얼굴 어떻게 보려고 해?”라고 했다. 제리는 내가 경찰 제복 입고 만난 사람 중 보기 드물게 자비로웠다.  






우리는 피해자를 먼저 귀가시켰다. 10분 정도 지나 가해자를 귀가시켰다. 투덜대며 걸어가는 톰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우리도 그곳을 떠났다. 나와 이 경장만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무리했다.


이제 막 고요함을 되찾았을 무렵, 어디선가 우렁찬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나를 찾는 무전 소리도 들렸다.


 “술 취한 남자가 지나가는데 위협한다고 합니다. 지금 근처에 있으니 출동하세요.”


나와 후배는 톰이 간 곳을 향해 달렸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톰이 또 사고 쳤다고 생각했다. 한 200미터쯤 가보니, 역시 그가 있었다. 감자탕집 옆에 얌전히 차곡차곡 쌓인 플라스틱 박스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이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뭐 이 새끼야!”


 “빨리 집에 들어가! 회사 동료가 용서해 준다는데 이러면 어떻게 해!”


 “너 경찰, 이 새끼!”


톰은 욕설을 퍼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보다 키가 손바닥만큼 더 컸다.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욕설을 내 얼굴을 향해 내뱉고는 양손으로 내 가슴을 밀었다.

나는 한 번 뒤로 밀려났지만, 다시 앞으로 다가가 섰다. 하지만 그는 두 번. 세 번 내 가슴을 밀었다.


마침 지나가는 커플과 반려견 산책하는 여성까지 이 모습을 보게 됐다.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게 보였을지. 아니 한심했을까? 경찰이 맞고 있다고? 나는 얄미운 톰을 막을 재간이 없어, 그를 체포하기로 마음먹었다. 죄명은 공무집행방해였다.



“현재 시각 20시, 지금부터 공무집행방해죄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나는 그의 양팔을 잡고 말했다. 그러자 톰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해줄 말이 더 있는데. 변호인 선임권도 말해야 하는데. 다시 나를 밀치며 들어오는 톰에게 입술을 벌릴 틈조차 없었다.


바로 그때 나는 엄청난 광경에 사로잡혔다.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남자가 어느새 내 발밑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당황했지만 곧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내 똘똘한 후배가 뒤에서 톰의 목을 잡고 바닥에 넘어뜨렸던 거다. 나는 아주 통쾌한 기분을 맞보게 됐다.


“형. 빨리 수갑 채워요!”


헉헉대며 톰을 붙잡은 후배가 말했다. 나는 얼른 수갑을 꺼내 톰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어찌나 반항이 심한지 수갑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몇 분 동안 사투 끝에 그를 체포했다.


숨이 차올라 막 한숨을 돌리는데, 톰은 땅바닥에 엎드려서 계속 욕을 했다. 대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는지 입가에 하얀 거품까지 고여 있었다.


나는 순간 참았던 분노가 끓어올랐다. 바닥에 엎드린 톰을 발로 밟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참고 있기 힘들었다.


“야! 좀 조용히 하라고!”


나도 그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나는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이해됐다.








톰은 지구대에 가서도, 경찰서 가는 순찰차에서도 기가 죽지 않았다. 별의별 욕설과 심지어 밖에서 나를 보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서, CCTV 없는 골목에 데려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하지만 경찰이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튿날, 지구대에 손님이 찾아왔다. 나에겐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는데 내가 체포했던 톰이었다. 톰의 옆에는 아리따운 여성이 있었다. 장례식장 온 것도 아닌데, 둘 다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는 믹스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남자보다는 동반한 여성을 향한 호의였다.  


톰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와 여성의 눈치만 살살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합의해 달라고 찾아온 거다. 대다수 공무집행방해 범인들이 합의해 달라고 찾아온 적이 적지 않았다.


물론 공식적으로 합의하는 경찰은 거의 없다. 뒤에서 합의금을 받고 용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게 뭐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직원은 경찰이 돈 받고 합의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나쁜 건가? 경찰도 피해자로서 권리 주장하는 게 옳지 못하다는 건가? 그렇다고 우리 조직에서 적극적인 피해 변상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우물쭈물한 톰을 대신해 여성이 말을 꺼냈다.


“남편이 경찰관님께 큰 잘못했죠? 죄송합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다가,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다. 내 눈이 아니라 여성의 눈에서 말이다. 그러다 이제는 고개를 푹 숙이고 흐느끼기까지 했다. 나는 상당히 난처했다.


“아니. 이게 무슨. 아내 분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세요.”


나는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톰은 자기 아내까지 동반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 속에는 음흉한 계획이 있을 터였다.


“그래서 저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어차피 사건은 경찰서로 넘어갔습니다.”


“아니. 무슨 원하는 게 있는 건 아니고요.”


우물쭈물하던 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했으니, 도의적 책임이 있어서······ 사과하려고······”


“사과는 잘 받았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그게 아니고요. 아무튼 제가 죄송했습니다. 경찰관님.”


톰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지구대를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 확실한 답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정장 차림인 두 사람이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합의서 한 장 써주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나도 다친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은 무슨 죄란 말인가. 몇백만 원 벌금을 부담하는 건 범인만이 아닐 텐데. 내 앞에서 눈물 보인 여성이 술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 썩고 있을지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제가 담당 수사관한테 합의서 하나 써서 줄게요.”


나는 톰의 두 눈을 쳐다보고 계속 말했다.


“대신 합의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을 말하자 톰이 다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나도 피해자인데 뭔가 받아야 합의가 성립되는 거 아닌가? 거래라는 건 일방적인 게 아니다. 게다가 나는 그리 자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거래를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것을 가지고 와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구대 들어올 때부터 빈손이었다. 그 흔한 비타 500이나 박카스도 그들 손에 없었다. 이건 협상 의지조차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받는 걸 좋아하는 경찰이라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나도 비타민 사 먹을 돈은 충분하니 말이다. 난 톰이 하는 행동을 말하는 거다.


“병원 가서 알코올 중독 치료받아요. 그리고 진단서 제출하세요. 제가 원하는 합의 조건입니다.”


특별한 조건을 말하지 않자, 두 사람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나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지구대를 나갔다. 톰의 아내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마 감동의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톰은 다시 나를 찾아와 인사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물론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거절했지만. 다시 보고 싶은 얼굴도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을 들은 아내는 나를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맞아도 돈 많은 사람한테 맞아서 합의금도 척척 받던데. 어째 당신은 한 명도 그런 사람이 없어?”  


“경찰관이 돼서 무슨 돈을 받아. 이 사람아.”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경찰로서 좋은 일 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내에게서 돌아온 건 핀잔이었다. 


내 아내는 나를 때리고 괴롭힌 범인이 더 얄미웠을지도 모르겠다. 못난 나도 내 가족에게만큼은 소중한 존재였다.


사실 나는 톰을 보고 용서해 준 게 아니다. 톰보다 불쌍한 그의 아내 때문에 용서했다. 톰도 그의 아내에겐 소중한 존재이니까.


 




3개월 지나고 톰이 지구대로 찾아왔다. 정장 차림의 그는 다시 한번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벌금이 나오긴 했지만 예상보다 적었다고 말했다. 내가 제출한 합의서가 효력을 발휘한 거다.

나는 톰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나를 보러 온 게 신기하기만 했다. 어쨌든 톰은 약속을 지켰다. 다행히 얼굴도 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런데 역시 비타 500은 없었다.


그는 또 빈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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