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서유기를 보는 이유

여행, 추억, 그리고 사람

by 굥이

'서유기'는 당나라의 유명한 고승, 삼장법사가 불경(수트라)를 얻기 위해 세 제자 손오공, 저팔계, 그리고 사오정을 데리고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들은 갖가지 괴물과 요괴들을 물리치고삼장을 무사히 인도까지 수행하여 무사히 불경을 얻고 중국의 도읍으로 돌아온다.

'신서유기'는 중국의 설화를 취합하여 쓴 고전소설 ‘서유기’와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혼종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제목은 ‘신서유기’인데, ‘서유기’에 관한 내용이란 찾아볼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분명 여행 프로그램인데, 여행지를 보여주기는 커녕 출연진을 데리고 무의미한 게임만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여행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이 이상한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신서유기는 여행지의 소개가 없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여행지의 풍경은 대부분 짧고 간결하게 인서트 샷으로만 보여준다. 신서유기에서 그 장소란 하나의 게임장에 불과하다. 출연진들의 모험은 그 나라의 명소가 아닌 숙소나 버스안에서 펼쳐진다. 신서유기를 보다보면 결국엔 어떤 나라에 갔는지보다 그곳에서 생겼던 에피소드가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이상한 점에서 우리의 우리의 여행과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각자 기억에 남는 여행을 되새겨 보라. 누군가는 “아, 그날 이런 일이 있었지. 그 때 진짜 웃겼는데.”라고 말할 것이다. 혹은 누군가와 생겼던 갈등과 그때 들었던 감정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여행의 기억은 누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억하게 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여행에서 더 중요한 것은 어디서 얼마나 많은 것을 봤는지일까, 누구와 함께 했는가일까?

시즌이 달라져 여행지가 바껴도 하나의 공통된 것이 있다. 바로 게임이다. 유년시절 우리는 고민이 필요 없는, 무의미한 게임을 하며 의미를 느꼈다. 사소한 것에도 즐거워 했다. 이처럼 신서유기는 우리를 고단한 현실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신서유기의 또다른 묘미는 바로 ‘복불복’이다. 다들 알다시피 복불복 게임에서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능력치가 아닌 ‘운’이다. 전력을 다 해 게임을 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을 뒤집는 것은 ‘운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운’이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재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을 ‘운이 좋은 금수저’라 말한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모두 운이 따라줘야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신서유기의 ‘운 게임’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뒤쳐지는 우리에게 ‘너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운이 안 좋았을 뿐이야’라는 커다란 위로를 준다.

코끼리코를 하고도 정확하게 목표물을 찍는 ‘송가락’, 술을 좋아하는 조규현의 ‘조정뱅이’, 게임 도중 방구를 뀌어서 만들어진 ‘조중부양’, 이수근의 ‘불량배’ 등, 츨연진에게는 다양한 별명이 붙여진다. 우연으로 일어난 사건에 따라서 붙여진 별명은 일상에서 생겨난 우리의 관계성을 연상케 한다. 이는 웃음을 자아낸 우발적 상황을 추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신서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명만 들어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매 시즌 마다 달라지는 별명은 출연진에게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서 주체의 가변성을 나타낸다. 예능 프로그램의 멀티 캐릭터는 하나의 역할극과 같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학생으로서의 나, 언니의 동생으로서의 나, 부모님의 딸로서의 나,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로서의 나.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역할극을 한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나영석 PD의 여행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과 차이점이 있다. 여행이란, 장소나 음식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 쌓은 사소하지만 우발적인 추억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최근의 여행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 자랑 혹은 과시하기 위한 피드를 올리는 것을 위한 것으로 변질됐다. 신서유기는 오늘날의 여행의 의미를 전복시킨다. 인스타그램을 위한 여행이 아닌,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도중 일어난 해프닝과 같이 여행의 과정이 의미있다는 것으로. 신서유기는 여행을 빙자한 추억 프로그램이다. 신서유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여행을 사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