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슬로. #1
난 아직도 짙은의 ‘백야’를 들으며 걷던 칼 요한스 게이트와 공항에서 바라보던 새벽 3시의 분홍빛 하늘을 잊을 수 없다. 6개월의 짧으면 짧고 길면 긴 교환학생 생활에서 제일 영화 같던 순간 중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게 오슬로여서 얼마나 행운이고 행복했는지 몰라!
6월을 앞두고 말라가는 점점 더워졌다. 가디건이나 얇은 겉옷을 두고 다니는 날이 많아졌고 플랫에서 바로 보이는 우엘린 해변에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하던 지중해 태양의 제국 스페인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니들과의 포르투갈 여행을 앞두고, 왠지 혼자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혼자> 다니는 것에 좀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Malaga south experience의 국가 테마 파티를 가기 위해 자정에 우엘린을 나서서 Camden Lock까지 향하는 목화 언니와의 산책도 재밌었고, 새벽 3시 항상 같은 레퍼토리의 레게톤과 맘마미아가 흘러나오는 SalaGold에서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 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나름 즐거웠다. 가끔 방 창문의 블라인드를 반쯤 내리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면 들려오는 새벽 2시의 'Cumpleaños Feliz' 생일 축하노래도 좋았지만 늘 가슴 한편으로는 그런 꿈이 있었다.
혼자 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다. 뭔가 고독을 씹으며 내 인생에 큰 깨달음을 줄 그런 큰 울림을 느끼고 싶다.
여느 때처럼 주황빛 조명 아래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다 문득 실행에 옮겨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냥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가고 싶었다. 지금 있는 곳이 유럽의 거의 최남단이니 이번에는 북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많이 들었던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기 좋을까, 정도의 궁금증이었다. 그중 왜 오슬로였는지에 대한 이유는 없었다.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였고, 스카이스캐너 상의 가격이 합리적이었다. 사실 난 그때 노르웨이에 뭐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냥 내 상상 속 희미한 북유럽의 이미지가 필요했을 뿐이다. 혼자 걸어도 안전할 것 같은 훌륭한 치안과, 연어와 복지국가로 유명한, 북해 지역의 유전과 빅맥지수 세계 2위에 빛나는 물가,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무심결에 예매 버튼을 눌렀고 이미 환불이 불가한 상태였다.
사실 첫 여행은 시작부터 재밌었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호스텔 예매해야지! 하는 순간 잘못하는 바람에 2박 3일 짧은 일정에 하루는 호텔, 하루는 호스텔로 두 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가기 전날까지 크게 생각 안 하고 놀다가 그날 오전 날씨를 찾아보고 짐을 싸며 어김없이 에코백 하나 딸랑 들고 춥대.라는 생각으로 말라가의 30도 더위에 가죽자켓을 들고 마리아 잠브라노 역까지 걸어갔다.
렌페를 타고, 공항으로 홀로 나서는 길은 새로웠다. 이때부터 좀 설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는 길이 나의 일정이고, 내가 나서는 발걸음이 온전히 내 추억이 되고 내 일기가 될 것이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여행의 설렘을 나누던 곳이라서 싱숭생숭한 기분도 있었지만 같은 길이어도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 컸다. 늘 붐비는 말라가 공항에서 나만 혼자 동떨어진 섬이 된 기분. 사람들 사이에는 외딴섬이 있고, 내가 가고 싶던 그 섬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말라가 공항에서 체크인 카운터마다 서있는 줄을 둘러보면 그것 나름대로 재밌었다. 각 국가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금씩 달랐다. 그날따라 내 목적지인 오슬로를 향하는 Norwegian 항공의 승객 중 동양인은 나 하나인 게 유난히 눈에 띄었다. 보안검색대를 지나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주섬주섬 챙겼던 간식을 먹으면서, 노르웨이의 무시무시한 물가를 대비해 자판기에서 물을 사면서도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색해서 싫은 감정보다는 이 상황이 너무나 생소해서 앞으로 어떤 것이 펼쳐질지 궁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옷장 속을 열면 펼쳐지는 눈 오는 설원에 발을 디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큰 기대에는 실망도 큰 법이기에 애써 여행에 대한 설렘을 누르고 어떤 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너무 외로워도 그것마저 즐길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으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같은 유럽에서 비행기로 4시간을 이동하다니! 보통 2시간이면 다 닿는 곳에 있었는데 대륙을 횡단해서 가는 것조차 신기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에서 작업하고,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오기 전에 적었던 오슬로에서 먹어야 할 것, 가야 할 곳, 해야 할 것, 사야 할 것의 리스트를 계획으로 정리했다. 도착해서 숙소로 들어가면 5시가 넘은 시간일 테니 뭉크 미술관을 서둘러 보고, 바이킹 박물관에 갔다가 유명하다는 브라운 치즈를 곁들인 와플을 먹어야지. 먹는 길에 오페라 하우스 위에 올라가 노을을 봐야지. 아주 의미 있고 소중한 나의 <첫> 여행이니까 모든 순간이 기억에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볼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은 전부 내 안에 담아 오는 계획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거의 도착할 시간이 되어 무심코 창문으로 내려다보았을 때, 노르웨이의 광활한 숲이 보였다. 어느 소설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왜 그것이 제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빽빽하게 놓인 초록은 늘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를 동경하던 내게도 처음으로 말문이 막히고, 놀라워서 넋을 잃고 쳐다보게 되는 그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선물해주었다. 이 기분을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사진을 찍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메세지로 보냈던 기억이 난다. 푸른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 호수와 잔잔하고 차분한 숲. 그 안에서 크게 숨을 들이켜고 싶었다.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그게 내가 만난 노르웨이의 첫인상이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가며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은 참 평온했다. 참 노르웨이 답다는 생각을 했다. 대각선에 앉은 모녀는 차분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고, 목재로 이루어진 의자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공항 안을 걸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기차를 타러 가던 길에 있던 기념품 가게에서 만난 트롤과 순록을 보면서 은은하게 웃고 있는 인형들이 앞으로 내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는 것 같았다.
호텔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찾아가는 데 좀 애를 먹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버스를 오래 기다리고, 내려서도 호텔 바로 앞에 있는 대학교를 헤매다 도착했다. 프런트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아늑한 방에 들어서자마자 비행기에서 적은 빽빽한 스케줄은 잊어버렸다. 아무런 소음 없는 방 안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포근한 침대를 보자마자 꼭 누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나의 소중한 회복 시간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 다시 가볍게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서 시내로 향하는 트램을 탔다. 오늘 해야 할 긴 리스트는 지워버렸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시내에 나온 시간은 거의 7시 무렵이었고, 멋스럽게 킥보드를 타고 공원에서 일광욕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왠지 나도 그 여유로움을 조금이나마 따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슬로 그 자체를 즐겨보기로 했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근처를 돌아다니며 크고 작은 배가 정박되어 있는 오슬로의 바다를 걷고, 상쾌한 공기를 잔뜩 들이마셨다.
오슬로의 가장 큰 번화가는 오슬로 중앙역부터 노르웨이 왕궁까지 이어지는 칼 요한스 게이트다. 오페라 하우스를 등지고 키가 작은 건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 보면 Oslo Sentralstasjon, 오슬로 중앙 역이 눈앞에 바로 보인다.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 맛있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걸어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과 연결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곳이 칼 요한스 게이트의 시작이다. 오슬로에 왔다면 반드시 걸어봐야 할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약 1.8km의 길이라고 하는데, 주변에 기념품 점에서 트롤과 순록 동상을 보며 노르딕 니트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고 가는 젤라또를 먹을까 말까 생각하고 걷다 보면 금세 중간쯤 지난 노르웨이 국회의사당에 도착해있다. 잠시 뒤를 돌아보면 노르웨이의 유명한 초콜렛 회사인 Freia의 빨간색 간판이 눈을 사로잡는다. 다시 앞을 보면, 노르웨이 왕궁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내가 오슬로를 여행하며 가장 좋아했던 거리 중 하나였다.
첫날은 운이 정말 좋았다. 여름에 북유럽을 여행하는 특권같은 것이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때는 9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음에도 해가 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칼 요한스 게이트를 구경하며 걷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보이는 노르웨이 왕궁 위에 태양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햇빛이 여름 치고 선선했던 오슬로의 날씨와 맞물려 그렇게 따스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후덥지근한 우리나라의 여름이 익숙하던 내게 맑고 시원했던 오슬로의 여름 공기와 눈부신 태양은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해줬다. 가만히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길 때면 마음 깊은 곳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 빛을 따라 노르웨이 왕궁까지 걸어갔다. 왕궁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이나 영국의 버킹엄 궁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왕궁 앞을 지키는 녹색 장식이 달린 옷을 입은 근위병들, 깔끔한 건물 외부, 그 앞에 놓인 동상까지 현대적인 이미지의 왕궁이었다. 높은 철창으로 보호된 다른 유럽의 왕궁과는 다르게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보일 정도로 접근이 쉬웠고 사람들은 익숙한 듯 편안하게 산책하고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다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보면, 칼 요한스 게이트를 비롯해서 오슬로 번화가의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이때쯤부터 오슬로가 좋았던 것 같다. 크게 기대했던 여행도 아니고, 내가 애정하는 파리의 화려함이나, 런던의 고급스러움, 혹은 다른 유럽의 아기자기하고 역사적인 도시의 이미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케스트라 앞에 앉아 클래식을 들으면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감탄사를 날릴 수 있는 우아한 베네치아의 이미지도 아니었다. 오히려 직접 본 유럽 중 가장 현대적인 도시였다. 근데 마냥 조용하고 단조로운 6월의 어느 날 만난 오슬로는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한 번쯤, 여행해보라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곳, 나중에 좀 더 성숙한 생각을 가진 내가 누군가와 함께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도시였달까.
왕궁 건물 뒤편 정원에서 꽃과 동상을 구경하며 머물다가 첫날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던 브라운 치즈 와플 먹기를 실천하러 갔다. 첫날의 목표는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첫째, 네이버 블로그에 나와있던 와플집에 가서 브라운 치즈와 베리잼이 올려진 노르웨이식 와플을 먹는 것. 둘째, 오페라 하우스 옥상에 올라 밤 10시 40분경의 노을을 바라보는 것. 이 두 가지가 나의 성공적인 첫날을 만들어 줄 것이었다.
와플집으로 향하는 길에 담스트레드 (Damstredet)이라는 전통 주택들을 볼 수 있는 지구를 들렀다. 들어서자마자 스카이스캐너로 노르웨이를 검색할 때마다 봤던 그 상상하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것이 산타마을의 눈 녹은 여름 주택들 같았다. 후에 찾아보니 베르겐이나 노르웨이 북쪽에는 이런 주택들이 더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오슬로에서는 많이 못 봐서 아쉽다. 이걸로 다시 노르웨이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하튼 구글맵에서 봤을 때는 한국민속촌처럼 크고 관광명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주택인 것 같았다.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아주 작은 규모였고 조용한 곳이라서 오래 있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약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Haralds Vaffel>이라는 나의 인생 와플집이 나온다. 벨기에 와플과 우리나라의 사과잼 + 생크림 조합 와플과는 달리 클로버 모양으로 생긴 와플이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 보니, 나 스스로 여행하기 전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정하는 기준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딱 거기서 했을 때 특별한 것>이었다.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겠지만 반드시 그 장소에서 해야만 특별한 것이 있다. 물론 한국에서 브라운 치즈를 뒤늦게 알고 먹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노르웨이 현지에서 바로 맛봐야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웃긴 기준이지만 이건 오래 경험하면서 느낀 것들이다. 사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고, 언젠가 그 여행의 순간을 떠올렸을 때 생생하게 그때의 감정, 날씨, 감각이 떠오르려면 그만큼 소중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너무 많은 기억들을 급하게 먹어치우려 하지 말 것. 런던-파리를 돌아다니며 미친 듯이 미술관, 박물관을 도장깨기 하듯 구경하던 어리석은 자의 뉘우침 같은 것이다. 너무 급하게 돌아다녀서 다 거기서 거기처럼 똑같은 것으로 느낄 바에는, 정말 가고 싶고 의미 있는 곳 몇 군데를 정해서 올바른 정신과 체력으로 건강하게 음미하면서 마음에 새기는 게 더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돌아와서 <Haralds Vaffel>이 인생 와플집으로 등극한 이유는 단순히 브라운 치즈 와플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걸어서 어디서든 돌아다닐 수 있는 오슬로이다 보니 모든 곳을 걸어 다녔고, 첫날의 신기함과 어리바리함, 어디든 관심이 많아서 딴 길로 새길 좋아하는 내 성향으로 가는 길에 이곳저곳 멈춰 구경하며 사진 찍다 보니 와플집에 도착하니 때는 오후 9시 45분, 와플집 닫기 15분 전이었다. 들어가서 와플을 주문하려고 하자, 직원분께서 지금은 아이스크림 밖에 안된다고 하셨다. 낭패였다. 가만히 서서 아쉬운 눈빛으로 '아...' 하며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 하자, 누가 봐도 타지에서 온 여행객으로 보였는지 잠시 나를 바라보시더니 무슨 와플이 먹고 싶냐며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슬로 여행에서 Best Scene TOP 5를 꼽을 수 있다면 그중 TOP 3 정도는 될 것이다. 혼자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순간은 낯선 타지에서 타인의 온기를 느끼게 될 때인 것 같다. 몇 번을 보고 기억해 둔 메뉴를 가리키며 주문하곤 그제야 가게 안을 둘러봤다.
이 와플 가게에 와야 할 이유 세 번째,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다. 핫핑크 색과 Harald로 추정되는 왕의 캐리커처, 가게 안에 깔린 검은색 타일을 장식한 다양한 사람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은 이 독특한 와플가게에 소위 말하는 '힙'함을 더해준다. 너무 취향이어서 와플을 기다리면서 갖고 있던 모든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내 가게를 차린다면, 이런 기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가게가 아니더라도 내가 생활하는 곳의 인테리어가 이렇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게 영화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반 하이틴의 시작 같지 않을까, 하이틴 덕후의 생각은 언제나 하이틴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Haralds Vaffel>에 와야 할 가장 근본적인 마지막 이유. 와플이 특이하고 맛있다. 와플을 받자마자 접힌 와플이 아닌 손바닥보다 큰 접시를 꽉 채운 꽃 모양 와플을 보고 신이 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조금씩 베어물자 담백한 와플 반죽과 크림, 담백한 브라운 치즈와 새콤한 베리잼이 차례대로 느껴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맛있어서 금방 다 먹었다. 오슬로에서 먹었던 것들은 유난히 고심해서 골랐던 것들이라 모두 생생하고 특별하지만,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다. 오슬로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한번쯤 더 먹어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고 싶다.
가만히 공원에 앉아 천천히 먹고 싶었지만, 내게는 아직 첫날의 남은 중요한 목표가 있었다. 백야를 두 눈으로 내 몸으로 내 피부로 직접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 이를 위해서는 걸어서 약 30분정도 걸리는 오페라 하우스로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가는 길에서 오슬로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하늘색 트램 양 옆으로 벽 한 면을 꽉 채운 그라피티가 알록달록한 건물들에 매력을 더하고 있었고, 어딜 가든 모델 같은 멋진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미 오후 10시나 되었는데 해가 지지 않는 이곳은 내가 꿈꾸던 북유럽의 여름이었다.
완벽한 백야 느끼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첫 번째는 우선 오페라 하우스에 해 지는 시간인 10시 40분경 전에 가야 했고, 그건 아슬아슬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로 백야를 볼 때 적절하고도 딱 맞는 분위기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빌드업이 필요했고, 그 정답은 음악이었다. 나는 모든 순간을 음악과 연결하는 편이다. 365일 중 366일 음악을 듣고, 특정한 기분이나 상황을 떠올리기 위해 음악을 듣고, 음악을 통해 특정 순간을 기억하는 편이다. 가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가사를 주의 깊게 들어서, 특히 특정 도시와 노래가 연결될 때 희열을 느낀다. 영화 <맘마미아> 트랙 중에서도 연인과 보낸 파리의 여름을 추억하는 <Our Last Summer>를 좋아하고, 글래스고에서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Super Trouper>의 가사 첫 줄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꼭 그곳에서 그 노래를 듣는 것을 꿈꾼다. 내가 사랑했던 5월의 파리의 8할은 에펠탑에서 노트르담까지 세느강변을 따라 걸으며 들었던 The 1975, The Chainsmokers의 Paris와 ABBA의 Our Last Summer에 있다.
오슬로 여행의 배경음악은 짙은의 <백야>라는 곡이었다. 오기 일주일 전쯤 우연히 알게된 선물같은 곡이었는데, 여름의 노르웨이를 장식하기에 그것만큼 완벽한 곡이 없다. 서서히 해가 질 것 같은 기운이 몰려오고, 바다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질 때 <백야>를 재생했다. 잔잔하게 시작하는 멜로디에서 마법 같은 힘이 느껴졌다. 내 눈앞에 있는 모든 순간이 리틀 포레스트 같은 잔잔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소한 그림, 가게, 신호등 같은 것들이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친구들과 즐겁게 장난치며 걸어가는 내 또래의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정다운 가족들,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 모두 저마다의 영화를 찍는 중이었고 나는 오늘 각본, 감독을 맡은 내 영화의 유일한 주인공이었다. 오늘 찍을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백야의 노을일 것이고, 그것을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면서 우습게도 나는 나중에 이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할지를 생각해봤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는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있었다. 유리로 된 외벽과 내부의 인테리어로 이미 그 건축물 자체로도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오페라 하우스는 특히 그 옥상정원이 노을을 감상하기에 좋은 명소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곳 중 하나다. 그 위에 올라서면 뒤쪽으로는 노르웨이의 세계적인 화가 뭉크의 작품이 가득한 뭉크 미술관이, 앞쪽으로는 오슬로의 전경이 보이고, 옆쪽으로는 넓은 바다와, 유명한 조형물 <She Lies>가 보인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반쯤 지는 중이었고, 그 모습을 위해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살짝 쌀쌀해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슬로의 전경 뒤로 펼쳐진 노을을 바라보고, 귓가엔 <백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내 추억으로 다 담을수도 없어서 해가 천천히 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순간을 좀 더 천천히, 순수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서로 같이 온 가족, 친구들과 기댄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이 순간을 누군가랑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해가 지고 나서도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 겨우 내려왔다. 올라가기 전엔 몰랐는데 어두워지며 불이 켜진 오페라 하우스가 참 예뻤다. 난 이상하게 어느 도시든 야경이 좋다. 낮에 하는 여행도 좋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밤에 저마다의 이유로 불빛이 켜져 있는 건물이 좋고, 긴장이 좀 더 풀린 상태로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고 솔직한 모습으로 좋아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그리고 그 속에 가만히 멈춰있으면 어딘가 촉촉해지는 게 위로가 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길었던 오슬로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하며 호텔로 돌아가기 전, 나홀로여행을 기념하는 의미로 작은 간식거리를 샀다. 내일부터는 호스텔이니 작은 소리를 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니 오늘 작게 파티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한아름 안고 트램 타러 가는 길, 다들 나와 같은 계획이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류장을 향해 걷고, 또 걷다가 낮과는 다른 칼 요한스 게이트를 볼 수 있었다. 자정이 다된 시간, 아직 온전한 밤은 아니었고 어둠을 준비하며 반짝이는 조명이 하나둘씩 켜져 있던 거리는 위험할까 종종거리는 내 걸음도 멈추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고, 오늘 내 영화의 완벽한 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