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흔은 종합 병원.

2024년 병원 기록

by 김송윤

작년, 2024년 앞자리가 4로 바뀌었다. 나보다 먼저 앞자리가 4가 되었던 남편은 골골대며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주변 언니들이 앞자리가 바뀌니까 병원을 진짜 많이 간다던 말이 떠올랐다. 건강을 생각할 나이니까, 설 지나고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둘째 아이가 감기가 걸렸다. 소아과 진료를 아이를 안고 보고 일어나는데 허리에서 찌릿 전기가 왔다. 그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문제가 생겼구나 싶었다. 바로 정형외과로 갔다. x-ray까지 다 찍고 나니 척추 3,4,5번 사이에 공간이 좁아져 있고 근육이 이완되어 있다고 했다. 다행히 디스크가 터지진 않았지만, 허리를 아예 숙일 수 없어서 무언가 잡으려면 무릎을 굽혀서 잡아야 했다.


“아들! 이것 좀 주워줄 수 있어?”


나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못해 초등학생이 된 첫째 아들에게 부탁했다. 아들은 곧장 주어주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첫째 이름을 불렀다. 첫째는 이름만 부르면 나에게 와서 심부름을 해주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이름을 불렀던 걸까.


“아이고. 허리야. 엄마 나도 허리 아파.”


그 말에 허리가 아파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졌다.


“절대 무거운 거 들면 안 됩니다.”


병원에서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래서 둘째가 울어도 안아서 달래줄 수가 없었다. 통증 때문에 아이를 들어올 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한 남편이 아이를 안아서 달래야 했고, 난 토닥토닥여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허리 통증은 오래가고 불편했다. 봄이 오기 전까지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했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허리 통증은 괜찮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을 먹는데 이가 시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치과를 방문했다. 왼쪽 위에 어금니가 깨져서 신경치료를 해야 했다. 치료받는 동안 왼쪽으로 음식을 먹는 게 불편하니까 오른쪽으로 먹었다. 오른쪽 턱관절이 아파왔다.


점점 먹는 게 불편해지니까 아예 먹는 것조차 하기 싫어졌다.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끼니를 거르는 일도 많아졌다. 빨리 치료가 끝나면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고 싶었다. 두 달가량 치과를 다녔고, 크라운을 씌우며 치료가 끝났다. 치료는 완벽하게 끝났다고 했지만, 씹는 것이 불편했다.

병원을 다시 방문했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편함이 있는 건 당연한 거예요. 정상적인 이와 덮은 치아가 완전히 똑같아질 수는 없어요.”


이해가 되면서도 서러워졌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불편했던 이가 점차 점차 자리를 잡았다. 치료한 이에 적응을 할 때쯤이었다. 밤에 불면증이 생겼다.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월요일 아이를 등교시키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화장실이 급하게 가고 싶었다. 소변을 보러 갔더니 피가 흘러나왔다. 찌릿한 느낌이 이상했다. 바로 비뇨기과로 갔다. 역시나 방광염이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며 주사와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 거리며 며칠 피곤했다고 몸에서 바로 이상신호를 보내는구나 싶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무조건 밤에 늦게 자지 말고 무리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더운 여름 감기를 몇 달째 달고 있던 남편이 안 되겠다며 한약을 지으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그때쯤에 몸이 괜찮아졌던 터라 남편 것만 지으라고 말했고, 남편은 너도 같이 짓자고 말했다. 약방을 방문해서 선생님이 진맥을 보시더니 남편에게 기가 약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다음 내 손을 짚으시던 약사님은 남편보다 부인이 기가 더 떨어져 있다고 말하셨다. 결국 둘 다 약을 지었다.


챙겨 먹는 걸 잘 안 하던 남편은 시키지 않아도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나는 어쩌다 한 번씩 빠뜨리긴 했지만, 한약을 하루에 한 번은 먹었다. 한약의 효과인지 더운 여름은 병원을 다니지 않으며 잘 넘어갔다.


날씨가 서늘해지며 가을이 찾아왔다. 운동을 해보려고 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가를 다닌 지 몇 주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무릎과 발목이 아파왔다.


허리까지는 괜찮지만 무릎까지 아파오면 답도 없다던 한의사 선생님 말씀이 떠올라서 바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사진을 찍어 보기도 전에 아마도 허리 통증 때문에 무릎이 아플 거라고 말씀하셨다. x-ray 결과 무릎과 고관절 모두 이상이 없지만, 허리 신경통이었다. 가끔씩 무릎 통증이 있었는데 난 이게 노화 또는 살이 쪄서 인 줄 알았다. 하지만, 허리 신경통이었다니 다시 한번 허리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급적 무거운 걸 들지 않고 바른 자세로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었다. 그러자, 점점 무릎의 통증은 사라졌다.

‘이제 아프지 말자.’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날씨가 추워질 때쯤 어깨가 가려웠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 아들에게 한번 봐달라고 했더니 아들이 태블릿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빨간 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었다.


남편은 보자마자 대상포진 아니냐고 말했다. 설마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피부과를 방문했더니 대상포진이었다.


“아니, 진짜 아팠을 텐데 몰랐어?”


남편이 물어왔다. 사실 처음에 모기에 물렸거나 가벼운 뾰루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대상포진 일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콕콕콕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온다던데 며칠 후 정말 그런 고통이 찾아왔다. 내 몸의 면역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았다.


벅벅 긁고 싶어서 올라가는 손을 몇 번이나 참으며 내려야 했다. 1~2주 정도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거라고 말했다. 여름에 걸리지 않고 추운 날씨에 걸린 걸 다행으로 여기며 치료를 다니는데 속이 안 좋았다.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데 체한 것 같고 신물이 올라왔다. 화장실에 가서 바로 토를 했다. 입덧을 하는 것처럼 음식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한의원에 갔더니 장이 약하게 움직인다고 했다. 대상포진에 썼던 약의 부작용인 것 같았다.


이틀 동안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어서 체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보통 체하면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는데 자고 일어나도 통증이 계속되었다. 자주 아프고 아프기 시작하면 빨리 낫지 않고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드라마에서 ‘시간 앞에 에 다행인 외모는 없다’ 고 했다. 그리고 돈 없이 늙는 건 슬픈 일이라고 했는데 난 돈 없이 늙는 것보다는 몸이 아프고, 아프면 빨리 낫지 않는 게 서럽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