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Mar 14. 2023

연고 없는 타지에서 하루 만에 집 구하기(1)계란 흰자

경남에서 경기까지, 계란 흰자에 진입한 사회초년생

타향 살이 어느덧 1달 차, 이곳까지 오게 된 여정을 기록해 본다.



01. 아빠는 안 갔으면 좋겠다


 울산에서 인천까지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한동안 말이 없던 아빠는 고민 끝에 말하듯 "인천은 너무 멀다.", "부모자식 간에는 너무 멀리 떨어지는 것 아니다."라고 했다. 이따금씩 아빠가 해왔던 말이었다.


  최종합격한 것도 아니고 아직 면접일뿐인데, 지금 걱정할 필요가 있냐며 부모님의 반응을 무마시켰다. 면접 당일, 긍정적인 느낌은 있었지만 '면까몰'이라고 하지 않는가. 면접은 까볼 때까지 모른다. 100% 확신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아빠는 인천은 너무 멀다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난 아직 결정 난 것도 없는데 지금 가고 안 가고를 이야기하는 건 이르다며 화제를 돌리기 바빴다. 가고 싶은 마음 반, 머물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인천에 있는 회사로 면접을 봤던 날이자, 울산에 있는 회사로의 출근 하루 전날이었다. 인턴으로 근무했던 전 직장에 계약직 일자리를 얻어 출근을 앞둔 상태였다.


 전 직장으로의 출근 첫날, 많은 것이 익숙했다. 익숙한 통근 버스, 익숙한 건물, 익숙한 구내식당까지. 4개월 여만에 돌아오니 그대로인 것도 있고, 바뀐 것들도 있었다. 교육실에서 교육을 듣고 있었는데 인천 회사로부터 합격 소식을 받게 되었다. 메일을 확인해 보니 입사 전까지 남은 기간은 단 5일이었다. 오늘은 출근으로 오후 시간까지는 다 가버렸으니 사실상 4일이 남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안에 집 구하기, 채용 검진, 짐 싸기, 이사까지 모든 걸 마쳐야 한다니.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선 이곳은 8개월 단기 계약직이고, 인천은 정규직이었다. 그리고 평소 근무해보고 싶은 환경이었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 오빠에게 짧은 상담을 요청했고,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오늘 출근한 회사에는 바로 말씀을 드리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 진행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빠, 오빠와 동네 국밥집을 찾았다. 이른 저녁을 먹으며 상의를 시작했다. 채용 검진도 그 지역 내에서 받아야 했기에, 하루 안에 검진과 집 구하기를 모두 마쳐야 했다. 




02.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해?


 우선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우리 중엔 아는 이가 없었다. 해당 지역 자취방 구하기를 주제로 하는 포스팅을 봤다. 그리고 TV 광고로만 봐 왔던 직방, 다방 앱을 다운로드하여 매물을 보기 시작했다. 막연히 생각했던 금액대를 입력해 봤다. 매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넘기고 넘겨봐도 볼 수 있는 집이 한정적이었다. 월세가 60만 원이나 하는 좋은 집들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방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관리비를 더하면 달에 38~40 정도였다. 이것도 내 월급에 비하면 과하지만 이 인근에선 가장 저렴한 월세였다.


 다행히 오빠가 집을 같이 보러 가준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날의 기차표를 예매했다. 회사에서 집에 오니 오후였고, 잠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벌써 밤이었다. 그리고 당장 내일 집을 구하러 가야 한다. 면접 때 일정이 빠듯하단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촉박하다니.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바로 몸으로 부딪혀야 했다.


 오빠는 "네가 살 곳, 원하는 곳을 몇 가지 추려놓아라. 그래야 내일 보러 가지."라고 말했다. 그래. 내가 살 집인데, 기준을 정확히 세운다는 게 어려웠다. 그 지역엔 가본 적도 없고,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방을 구하는 게 처음이라 내겐 기준이란 것이 잡혀있지 않았다. 우선 이 급선무에서 아는 것은 없지만, 호구당하고 싶진 않으니 남은 시간 내에 잠 대신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짧은 밤 사이 몇 시간 동안 수많은 번복이 있었다.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자니 월세가 비싸고, 조금 저렴한 안쪽 동네로 들어가자니 출근길에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야 했다. 아싸리 내륙이나 서울 쪽으로 들어가자니 매물이야 더 많아졌으나 출근시간이 그만큼 더 길어지고, 교통비가 하루에 5-6천 원은 나오는 것으로 계산이 되었다. 결국 그 돈이 그 돈이었다. 박봉에 집값과 관리비가 왕창 나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예비 거주지 후보를 바꾸고 바꾸다, 결국 아빠의 조언대로 역 근처를 택했다. 첫 번째 결정이었다. 막연히 집을 떠나고 싶고, 서울로 상경해보고 싶단 마음이 들었을 때, 일찍이 상경한 친한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네가 정말 올라올 생각이 있으면, 우선 살 곳을 정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제 집을 구할 때 확인해야 할 것들을 유튜브를 켜 둘러보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영상마다 핵심정리 댓글이 있어 그것들을 참고해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아득해져 조금이라도 자야 할 것 같았다. 한 시간 반 눈을 붙였다. 그리고 오빠와 새벽 3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를 마쳤다. 하루 종일 집을 볼 거라 답답한 메이크업도 안 하고, 편한 옷에 운동화를 신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깜깜한 밤이었다.




03. 쌀쌀한 서울 공기


 버스 정보 시스템이 어제부터 먹통이었다. 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오나, 안 오나 마음 졸이며 버스를 겨우 탔다. 그렇게 KTX 첫 차에 탑승해 서울로 향했다. 오빠가 네이버부동산 앱에도 매물이 있더라며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집을 볼 때 알아본 주의사항도 함께 말해주었다. 어제는 매정한 듯 말했어도 열심히 찾아봐줬나 보다. 오빠한테 고마웠다.


 잠이 부족했던 탓인지 기차 안에서 푹 잤다. 눈을 뜨니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마스크 안에 침을 흘리기까지 해서 내리자마자 마스크를 바꿔 착용했다. 뽀송했다. 서울역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가길 또 40여분. 오랜 시간 걸려 도착한 인천은 너무나도 추웠다. 날씨예보를 보고 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추웠고 옷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혹시 몰라 챙겼던 두 개의 핫팩 덕을 톡톡히 봤던 날이었다. 홀로 한라산 등정길에서 잃어버린 줄 알고 또 사버렸던 핫팩이었는데. 오늘 쓰라고 샀던 거였나 싶을 정도로 참 잘 썼다.


 채용 검진은 2년마다 받는 국가검진처럼 빠르게 끝이 났다. 처음 작성해 보는 설문지 검사도 있었다. 집을 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마치려 노력했다. 탈의실에서 옷도 훌렁훌렁 벗었다. 평소 같으면 '안 나오면 어떡하지?' 속으로 고민했던 소변검사도 일사천리로 해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네."라는 오빠의 말에 답했다. "국가건강검진 알제. 그거 같이 그냥 빨리 마무리하더라."



(다음 편)

04. "집 보러 왔는데요." / "여긴 잘 아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