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Mar 14. 2023

연고 없는 타지에서 하루 만에 집 구하기(2)-빨간색

500/30으로 볼 수 있는 집, 단 3곳

04.
"집 보러 왔는데요."
"여긴 잘 아세요?"


 오빠와 다시 전철을 타고 살기로 정한 역에 도착했다. 어제 내가 봤던, 아니 볼 수 있었던 집은 단 4곳. 그리고 아침새벽에 오빠가 말해줬던 부동산 앱으로 같은 가격대의 오피스텔을 몇 군데 더 볼 수 있었다. 원룸과 오피스텔. 막연히 오피스텔이 훨씬 더 시설도 좋고 고급스러울 것 같았다. 대다수가 지은 지 20년이 지났다곤 하지만 '그 정도면 준수하지 않나? 50년 된 것도 아닌데.'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잘 풀릴 것만 같았다.


 앱 화면에 부동산 목록들이 쭉 나왔고 바로 전화 연결도 가능했다. 부동산에 전화해 보는 것 역시 처음이라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전화버튼을 누르기를 망설였다. 인턴 시절 반복했던 신입사원 전화공포증처럼. '걸어? 말아?'고민하다 언제나 그렇듯 "몰라 그냥 일단 해!" 하며 버튼을 눌렀다. 부동산 소장님은 밖에 나와 있다며 이따가 다시 전화를 준다고 했다. 덕분에 긴장이 풀려 다른 곳에 다시 전화를 했다. 오라고 했다. 그 길로 부동산 사무실로 향했다.


 아파트에 이사를 온 뒤로 매번 편의점에 갈 때, 집 근처를 다닐 때 수도 없이 봤던 부동산중개사무소. 바깥에 A4종이에 인쇄된 매매/전세가 금액대들. 살면서 직접적으로 닿아본 적 없는 영역이라 그 안에서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곳에 지금 내가 살 집을 구하러 들어왔다. 사무소 벽에는 벽 한 면을 덮을 만큼 커다란 지도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소장님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고선 그 지도를 구경했다. 건물마다 색깔들이 다양했으며 그중 '빨간색' 건물들이 밀집된 곳은 누가 봐도 비싸보였다. 괜한 반발심에 쳐다보지 않았다.


 곧 소장님이 와서 어떤 집을 보려고 하냐는 물음에 '500/30' 정도를 알아보고 왔다고 답했다. 그리고 즉시 입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급한 티는 최대한 내려하지 않으면서. 내게는 친구가 제공해 준 하나의 선택지가 남아 있으니까.(일하면서 집 구할 때까지 친구가 자기 집에서 같이 지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질문을 거치며 결국 티가 났을 것이다.


 이곳은 알아보고 왔냐는 질문과 함께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봤던 정보와 같았다. 여러 개의 출구를 기점으로 A출구는 지은 지 20년이 된 건물들, B출구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건물들이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금액대로는 3곳의 집이 있어 보여주시겠다고 했다. 3곳이나 볼 수 있다니 잘 됐다고 생각했다.


 사무소 직원들 간의 엇갈림에 따라 대기시간이 조금, 조금, 조금씩 더 길어졌다. 여기 말고 다른 부동산에도 가 봐야 하는데. 대기시간이 자꾸만 길어져 마음이 촉박해졌다. 하지만 초보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 여유 있는 척했다. 걸어가려면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지만, 강추위 덕에 차를 타고 출발했다. 곧 건물 근처에 도착했고, 몇 바퀴나 주위를 뱅뱅 돌아봤지만 차를 댈 곳을 찾지 못했다. 그 와중에 일적인 문제가 생겼는지 소장님은 여러 차례 통화를 하더니 결국 실장님이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다시 부동산 사무실에 돌아갔다가, 그대로 다시 나왔다. 실장님은 나와 같은 또래의 분이었다.


 실장님은 차로 이동하면서 간단히 집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가 지은 지 20여 년 정도 되어서 생각하는 것보다 좀 낙후될 수 있다고. 그리고 오피스텔에 금액대가 이러하다면, 그 말은 곧 지금까지 수리를 거의 안 했다는 뜻과 같다고. 실장님도 오늘 볼 집들 중에 보고 온 집이 있고, 안 보고 온 집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로 볼 집은 현재 세입자가 거주 중인 상황이었고, 곧 이사를 간다고 하여 짐은 바로 빼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입주 청소를 하고 나면 좀 더 괜찮을 수 있다고 했다. 서랍이 하나 고장 나서 사용이 안 되는 게 있는데, 그런 건 말해서 바로 수리해 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실장님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꼈다. 마치 웃음에 땀 삐질 이모티콘 같았달까.(^^;;;)


 다시 도착한 A번 출구 일대는 많은 상가들이 즐비해있었다. 보통 1-2층까지는 상가, 그 위로는 주거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이번에도 건물 주위를 몇 바퀴 돌았고, 운 좋게 주차 공간을 발견했다. 드디어 첫 번째 집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밝고 시끌시끌하고 활력이 넘치는 인근이었다.


(다음 편)

05. "죄송한데 여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혹시 나머지 두 집도 다 이런가요?"

작가의 이전글 연고 없는 타지에서 하루 만에 집 구하기(1)계란 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